필자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안에 코로나 감염으로 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주민들이 있다. 관리위원회는 방역지침에 따라, 식료품 등 필요한 물건을 격리자들의 문앞까지 배달해 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쓰레기며 재활용품을 개인적으로 버리는 바퀴달린 통을 제공해 준다. 각층의 복도나 승강기는 소독과 청소를 더 자주하고 있다. 이는 모든 주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염자들의 수는 더 많아 질 것 같다고 한다.오미크론 변이가 쓰나미처럼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2월까지 절정에 이르다 3월쯤에는 수그러질 것이라는 긍정적
연합교회 NSW 주총회에 이젠 ‘한인노회’가 없어졌다. 지난 10월 31일부로 그렇게 된 것을 뒤늦게 들었다. 착잡한 심경이다. 아니 어떤 허전한 아픔을 느낀다. 2011년 뉴카슬에서 열렸던 주총회에서 한인노회 설립안이 통과되어 크게 기뻐했었다. 그것은 1990년 초부터 20여년에 걸쳐 한인노회 설립을 위한 오랜 바램과 애씀의 결과였다. 그 과정에 여러 문제와 논쟁, 반대도 있었지만 더불어 함께 선교하자는 공동의 비젼으로 출발하였다. 또한 이를 다시 번복케 된 이유도, 지난 10년동안 한인노회가 호주교회와 더불어 함께 동역하지 못했
자카란다 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 꽃의 화려한 보랏빛은 봄의 절정과 여름의 시작을 내게 알려 준다. 이번주 월요일부터 록다운 규제완화 2단계가 시작되었다. 각종 모임의 허용인원도 크게 확대 되었다. 11월부터 외국여행도 가능할듯 싶다. 참 반가운 일이다. 어떤 분은 이번 주에 각기 다른 네번의 모임을 약속했다고 들었다.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10월 첫주에 세 친구 부부와 공원에서 커피와 센드위치를 먹으며 담소했다. 그 때는 네 명까지만 동석할 수 있어 세 명씩 두 테이블로 나누어서 말이다. 며칠만 기다리면 다 함께 앉을 수 있
한 친구가 실뱅 테송의 책 ‘희망의 발견’을 읽고 몇 인용구절들을 보내왔다. 2010년에 바이칼 호수 옆 시베리아 숲속의 한 통나무집에서, 6개월 혼자 살면서 쓴 글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 네가지를 소개한다. 고독해 질 때 하나님과 우정을 맺을 수 있다. 목표와 목적이 줄어 들거나 없어져야 삶에 더 많은 의미가 생겨난다. 자연은 그 자체대로 사랑해야 한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하루 한번은 정장 차림으로 식사한다이다. 도심속 사람들 가운데서 강요된 격리생활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적용해 볼 수 있는 실제적인 지혜와 방법을 발견한다.
8월 첫 주간이다. 날씨가 한결 포근해졌다. 봄 소식을 알리는 목련꽃들이 한창이다. 보랏빛 , 흰빛 꽃송이들이 소담스럽다. 그러나 아직 내 마음은 저만치 뒤에서 머뭇거리며 서성이고 있다. 새 봄의 정취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서다. 코로나로 인한 록다운이 8월 말까지 다시 연장 되었다. 필요한 치과 치료도 그냥 기다리는 중이다. 금년 생일이며 결혼기념일을 아내와 둘이서만 보내야 했다. 매년 그런 날을 구실 삼아 가족들과 또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해 오던 터여서 조금 적적했다. 그럴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을 알면서도 씁쓰레한 앙금을 떨
삶은 소중하다. 모든 나이층의 삶에 각기 다른 의미와 재미가 있다. 은퇴자로써 나의 삶 또한 그렇다. 은퇴후에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줄어든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론 이것이 외로움이나 상실감을 주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난 이것을 하나의 자유로 만끽하며 즐기고 있다. 기분 좋은 쉼 혹은 어떤 재미를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연락한다.여왕 생일 3일간의 연휴가 있었다. 건너편 스타디움에서는 많은 관중들이 참석한 축구 경기가 열렸다. 헤비 메탈 음악 컨서트가 열렸다. 난 친구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혼스비에 있는 한 일식점으로
한 교회에서 창립 28주년 감사 및 임직예배 설교를 부탁받고 그렇게 약속했다. 그런데 지난 주중에 성경 본문과 설교제목을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고 난처했다. 그때까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아서다. 그 교회의 현재 사역이며 교우들의 형편을 알지 못해 어떤 메시지도 정할 수 없었다. 얼마간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아무런 영감도 받지 못했다. 아니 주님께서는 침묵가운데 답해 주셨지만 내가 들을 수 없는, 귀가 먼 상태인 것일까? 최소한 어떤 한 말씀이나 감동이라도 주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때 가까운 이웃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날씨가
공사장 주변 도로에는 정지(Stop) 와 서행(Slow)이라고 쓰인 표지판을 들고 차량 운행을 통제하는 교통 정리원(Lollipop Worker)이 있다. 아파트 건축 현장앞 도로를 지나려는데 두 청년이 그 표지판을 들고 한 라인만을 통해 양쪽의 차량들이 안전하게 오갈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반대편 차량들이 천천이 통과 할 동안에 나는 정지 표지앞에 멈춰 기다려야만 했다. 그 표지판을 든 젊은이를 보며 문득 한 교우와 그 아들 사이에 오갔다던 대화가 생각나 혼자 미소를 지었다.그 분은 당시 10학년 이었던 아들 때문에 걱정이라고 푸
몇 개월 동안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 코비드 펜데믹으로 집에서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 처음엔 예배 드림 같지 않은 어설픈 느낌이었다. 그런데 얼마간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거부감이 덜해졌다. 나도 모르게 적응이 된 것일까? 아직 미흡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이런 형태의 낯선 예배가 새로운 하나의 정상이 된 것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게 된다. 이번 주일부터 시작되는 은목회 예배가 기다려진다.줌(zoom)을 통한 원격 강의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작년에는 교실에서 대면 강의를 하다가 학기 중에 비대면 강의로
대학 입학은 수험생이나 가족에게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시험 공부의 결과이다. 한국이나 호주도 마찬가지다. 시험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청소년들도 많다. 그래도 참고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런 공부도 필요하다. 의사며, 회계사 등 자격고사를 위해 혹은 석.박사 학위 논문을 쓰는 공부도 중요하다. 나는 학교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다. 아내에 비교해서 그렇다. 그런 아내는 가끔 내가 ‘엉터리 박사’라고 한다. 그건 사실이다. 책을 더 많이 읽고, 대학에서 10여년 가르치기도 했지만 가사일이며 생활
시드니 시티에 있는 한 프랑스 식당에서 몇 사람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후에는 잠시 걸어서 카페로 옮겨 커피, 차 등을 마시며 담소했다. 바로 앞에서 보는 바다와 도심의 야경이 참 아름다웠다. 그런데 낯익은 그 거리와 밤 풍경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너무 오랜만에 온 때문일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식당안은 여러 고객들이 있어서 괜찮았다. 하지만 그 좋은 경관의 넓은 카페에도 우리 일행 일곱명과 또 다른 테이블의 서너명이 전부였다. 그런 분위기가 을씨년스럽고 썰렁해서 미안했다. 무엇보다 밤낮없이 사람들의 물결로 가득했던
시드니 사찰인 정법사의 기후 스님을 만났다. 불교의 세계관에 대한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였다. 내가 먼저 이것을 배워야 할 필요가 생겨서다. 9월 학기부터 ‘세계관과 상담’이라는 강좌를 새로 가르치고 있다. 교재를 읽다보니 주로 서양인의 관점에서 씌워진 것이었다. 기독교 세계관은 좋았지만 이슬람교는 빠져있고, 동양의 것은 미흡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불교는 소홀히 취급됐다. 그것도 불경에 근거한 내용이 아니라 헤르만 헷세의 소설 ‘싯다르타’에 묘사된 표현 등으로 대신했다. 한호일보에 금요단상 필자 중 한 분인 기후 스님께 전화로
멜번시는 8월5일(수) 자정부터 재난사태 4단계에 들어갔다. 코로나 감염 확산을 막겠다는 비상조치다. 이날 하루 최다인 15명이 사망했다. 저녁 8시부터 통행금지가 시행된다. 대부분의 숍들도 문을 닫아야 한다. 뉴스에 나오는 멜번의 도심이, 죽은 도시처럼 썰렁하고 적막했다. 그 도심에 있는 유나이팅교회 총회 사무실에서 5년여 사역해서 낯익은 거리다. 자유분방하고 활기 넘치던 모습과 비교되어 마음이 아프다. 고스포드(Gosford)는 비교적 자유롭지만, 자원해서 집콕 격리를 하고 있다. 그런 어수선한 날에, 창밖의 전경을 바라보다 우
센트럴 코스트는 파통가(Patonga)에서 시작하여 디 엔터런스(The Entrance)까지의 지역이다. 고스포드로 이사 온 후 새로 알게 되었다. 파통가는 시드니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말한다. 지도를 보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파통가 해변에서 손에 잡힐듯한 곳에 시드니의 웨스트 헤드(West Head)가 있다. 바로 그 옆에 있는 팜 비치(Palm Beach)도 볼 수 있다. 실제로 페리를 타면 피트워터(Pittwater)까지 짧은 시간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로는 고스포드를 거쳐 돌아가야 한다. 교통이 혼잡할 때는 2
코로나 팬데믹으로 멈추고 닫힌 것들이 많았다. 건강한 사람도 여러 형태의 격리와 정지를 강요받았다. 서로에게 의존했던 삶에서 홀로서기를 배워야 했다. 두어달이 지났지만 내게는 아직 낯설고 불편하다. 이 기간이 도박 중독의 치료기회가 되었고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작한 사람도 있다. 부부 혹은 자녀들과의 관계를 회복한 사람들도 있다. 다행한 일이다. 반면에ABC공영방송에 따르면 호주인 2,297명의 설문조사 결과, 우울과 절망을 느끼는 횟수가 3배 이상, 혼란을 느끼는 사람수는 5배 이상이라고 한다. 학생과 젊은이, 장년이나 노년
학기 중에 정부 지침에 따라 준비도 없이 원격 수업으로 바꿔야 했다. 익숙한 교실 강의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크다. 어설프고 낯선 경험이었다. 토론중심의 강의를 중요시하는 내게는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가끔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해질 때는 학생들의 말을 놓치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해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어수선한 때에 모두에게 더 안전하고, 학교를 오가는 번거로움이 없는 것은 좋았다. 아내 친구분의 딸과 사위, 어린 손녀가 미국에서 시드니를 방문했다. 호주의 코로나 대책에 따라 2주간의 격리 생활을
센트럴 코스트에는 선착장(wharf)들이 많이 있다. 이들을 보수하고 신축하는데 큰 예산이 필요하다. 금년 3월부터 시작되는 워이워이(Woy Woy) 선착장 재개발공사를 위해 532만 달러가 투자된다. 집 건너편에 보이는 고스포드 선착장에는 정박된 빈 배들이 많다. 그 모습은 아름답고 평화스럽다. 선착장은 빈배들의 정박을 위한 것처럼 생각 할 수 있다. 그것은 맞는 말이다. 자동차의 주차장처럼, 운행하지 않는 빈 배들이 정박하는 곳이다. 때로는 폭풍우가 올 때 배들을 안전하게 피신시키기 위해 선착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사실에
어수선한 가운데 새해 첫 달을 보냈다. 아니 그렇게 떠밀려 온 기분이다. 감기 몸살에다 잦은 기침으로 며칠동안 밤잠을 설치곤 했다. 수년만에 겪는 일이라 몸과 마음이 무거웠다. 산불과 가뭄, 메케한 연기 등에 너무 신경을 쓴 때문일까? 아직 여름은 끝나지 않았고 산불의 위협은 여전하다. 얼마 전에도 폭염 중에 거센 바람이 불어 NSW남해안 지역에서 큰 산불이 일어났다. 거기서 산불 진화를 하던 소방 항공기의 추락사고로 대원 세명이 사망했다. 미국에서 지원 파견된 베테랑 팀이어서 안타까움이 크다. 세 영웅들의 삶과 죽음에 옷깃을 여미
지난 주말까지12일 동안 남태평양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 90세 되신 장모님 중심으로 편한 것을 찾다 보니, 우리에게는 조금 단조로운 여정이 된 것 같다. 어쨌든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바다와 그 수평선에 맞닿은 하늘 만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간 산불로 인해 볼 수 없었던 탁 트인 하늘과 바다의 정경이 시원했다. 마침 발코니가 있는 8층 캐빈이어서, 때로는 새벽이나 밤 시간에도 그곳에 앉아 하늘과 바다를 쳐다보기도 했다. 내게는 그런 시간이 좋았다. 모든 일을 멈추고, 시간 모드를 ‘아주 천천이’
수년 간 센트럴 코스트에서 살아온 한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 해변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집이라, 발코니에 서면, 탁 트인 바다가 시야에 들어 온다. 바로 앞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나무들이 어우러진 자연림 같은 정원이 보인다. 또 다른 편 작은 발코니에서는 멀리 계곡 아래까지 이어지는 숲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깨끗하고 시원한 바람으로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상쾌하였다. 집 전체가 계절에 상관없이 밝은 햇살로 가득하다고 했다. 주변의 집들 가운데 가장 괜찮은 집이라고 하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된다.차를 나누며 그간의 얘기를 나누는 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