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이 가득한 어느 날, 봄이라 그런지 기분도 싱숭생숭.교통정체로 꽉 막혀버린 도로에서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됐다. 요즘 무엇을 하며 사는지 너무나도 할 일이 많아졌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나는 나의 바쁜 일상을 되돌아 보다가 문득 마요네즈 병 이야기가 떠올랐다.한 교수가 그의 철학 수업 시작 전에 몇 가지 물건을 가지고 앞에 서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말없이 그는 매우 크고 속이 빈 마요네즈 병을 들어올렸고 그 안을 골프공으로 채우기 시작했다.그리고 그는 학생들에게 이 병이 꽉 찼는지 물어보았다. 학생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교수는 조약돌 한 상자를 들어 그 병 안에 쏟았다. 교수는 가볍게 그 병을 흔들었다. 조약
지난 5월 21일, 시드니 한인 회장님, 한인회 위원님, 새순교회 권사님, 구세군(Salvation Army) 전도사님과 함께 빌라우드이민수용소(VDC)에 있는 한인들을 방문하였다.평소에 빌라우드에 머물고 있는 불법체류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제공되는 식사는 어떠한지, 어떠한 환경속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항상 궁금해 했었는데 직접 방문할 기회가 내게 주어지게 되었다. 빌라우드에 들어가는 절차는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일단 방문하려는 사람의 정확한 이름을 요구하며 본인 신분증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공항에 있을 법한 엑스레이 스케너와 금속 탐지기를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이러한 엄격한 검사를 거친후 이중 출입문(double gate)을 지나야만 우리 한인 동포들을 만날 수
이제 나도 어느덧 이십 대 후반이 되는 해를 맞았다. 항상 어릴 줄만 알았던 나는 세상이 나에게 어떤 도전을 해와도 다 이길 자신감과 패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 어른들이 사는 세상에 발을 디딘 느낌이 들어 마음 한구석에 더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마음과 동시에 두렵다. ‘평생을 살 것처럼 꿈을 꾸어라! 그리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제임스 딘의 명언이다. 마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나의 삶을 정확히 전달해주고 있다. 5년전만 해도 지금 쯤이면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법원에서 약자의 편에서 사람들을 위해 당당히 싸워 이기는 변호사, 아픈 환자들을 위해 항상 헌신하고 봉사하는 유익한 의사, 혹은 나라를 대표하는 위대한 대통령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꿈
어느 한국행 항공기를 처음 타게 되었다. 한국을 처음으로 혼자 나가는지라 들뜬 마음에 괜히 바빴다. 항공기가 아름다운 시드니 상공을 비행하면서 난 사진 찍기에 정신없었다. 정말 그림 같은 시드니!기내 음식이 제공되고 나서 한국에서 보낼 일정을 계획하고 있는데, 옆 복도에서 두명의 승무원이 어느 할머니의 팔장을 끼고 뒤쪽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할머니의 안색이 매우 좋지않아 보였지만 승무원이 데려가니 별 신경쓰지 않고 음악을 들으며 계획표 짜는 일에 몰두했다.한 5분쯤 지나 음악이 꺼지고 기내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혹시 의료인이 탑승했으면 승무원에게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순간 조금 전 그 할머니가 생각났다. 내 좌석이 항공기 뒤쪽이라서 뒤돌아보니 커텐 사이로 할머니가 보였다. 의자에 똑바로 앉아
한 4년전 이야기다. 운전면허를 딴지 얼마되지 않아 빨간 초보면허증 P1을 받고 신이 났었지만, 도로교통국(RTA)은 우리집에 한 대밖에 없는 8기통의 V8 차량을 P1면허 취득자는 몰 수 없다고 통보했다.하지만 경찰서 3곳에 문의한 결과 집에 차가 한대인 가정은 V8을 몰아도 된다고 답변했다. 난 그런줄만 알고 P1표지판을 부착하고 마음껏 차를 몰았다. 어느날 집에서 나오자마자 큰길로 진입하는데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뒤에 달라 붙었다.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 한 사이에 경찰은 면허증을 확인한 후, ‘왜 이 차를 타느냐’고 물었다. 나는 당당히 경찰서 세 군데 전화했다며 경위를 설명했다. 하지만 고속도로 경찰인 자신은 법규를 잘 모른다며 그 자리에서 700달러가 넘는 벌금과 벌점 7점 고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