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탕! 두발의 총성이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배터스트에 눈덮인 아침의 정적을 깼다. 그날은 아주 특별했다. 겨울에도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 이곳에 함박눈이 쌓일 만큼 많이 내려 모든 사람들이 흥분과 기쁨으로 아침을 맞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눈을 실제로 처음 본다는 많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어우러져 그날 아침의 우리 학교는 축제 분위기였다. 너나 할 것 없이 행복했고 기뻐했다. 하얀 눈이 배터스트에 가져온 위력은 대단했다. 강렬한 태양빛에 아름답던 눈이 스르르 녹아 내릴 때 쯤 사고 소식을 들었다. 바로 우리 동네였고
매달 첫 번째 목요일에 갖는 Local client meeting이 있는 날이다. 여느 날처럼 수영을 하고 기차를 타고 버우드 역에서 내려 약 20분간을 걸어서 갔다. 매번 그곳을 갈 때마다 걸으며 생각 중에 귀중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전에는 그런 것을 못 느끼고 그저 무의미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요즈음은 단순히 숨 쉬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생물적인 삶 만을 산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과 함께 지금 내가 왜 이곳에 있으며 거리를 지나는 많은 사람들은 왜 저곳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들인, 각자의 삶이 어
인간은 누구도 완전할 수 없다. 양심에 비추어 마음을 바르게 저울질 하며 사는 것이 제일 안전한 방법이다. 마음 폭이 넓고 생각이 깊은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코너에 몰아넣고 채찍질 하지는 않는다. 20대, 나의 꽃 같이 젊었던 나이에는 가난이라는 무기가 내 가슴을 조이며 시계추처럼 흔들어 댔다. 무너지면 끝이기에 병이 나를 엄습해 왔어도, 짓밟혀도 일어서야만 했다.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 온 우리 가족의 삶은 평탄할 수가 없었다. 오빠는 군 입대를 피해 도망자의 삶이었고, 아버지는 사업이 실패하여 병으로 누우시는 바람에
울긋불긋, 왁자지껄! 대강당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학생들과 교사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뒤섞이며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독일 전통 의상을 입은 동료 선생, 한복을 입은 나 그리고 인도 전통의상인 사리(Sari)를 입은 리타를 선두로 우리는 흥분과 에너지가 넘치는 도가니 속에 빨려가듯이 강당으로 들어섰다. 개량한복이어서 그런지 옷을 입는데 단 몇 분 걸렸던 나에 비해 인도 수학선생 리타는 오늘 아침 사리를 입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고 남편 타박을 했다. 보통 인도에서는 엄마가 도와주는데 호주에서는 하는 수 없이 남편의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땡땡이를 치고 싶을 때가 있다. 성실하게 잘 해오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지만 그 달콤한 맛을 일찍 경험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과외 공부를 했었는데 비가 억수처럼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길을 잘 찾아 가다가 공부할 장소 가까이 오자 갑자기 가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갈 곳도 없었다. 그 때 유일한 오락이라는 것이 만화방에 가서 만화를 보는 것이었다. TV도 흔치 않았던 시절이라 만화책을 몇 권 보면 TV를 볼 수 있는 표를 주었다. 한창 만화 삼
시드니의 겨울은 춥긴 하지만 한국에서의 그것과 비교하면 대체로 온화한 편이다. 나는 겨울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제는 한 계절 한 계절이 다 소중하게 여겨지는 나이가 되어서인지 지나가는 계절이 아쉽게 느껴질 때가 많다. 겨울의 끝자락 봄의 입구에서 수, 제니, 미와 우리 부부는 이 겨울을 조금이라도 만끽해 보자고 블랙히스에서 8월의 주말을 함께 하기로 했다. 모두가 바쁜 일상 속에서 채 준비도 잘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며 길을 나섰다. 금요일의 바쁜 일과들을 마치고 떠나다 보니 어두워져서
인생의 여정은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이다. 오늘 만난 사람을 내일 또 만나기도 하지만 영영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다. 내 어린 시절은 인천에서 많은 발걸음이 옮겨졌다.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뒤라 모든 것이 부족하고 가난했지만 힘든지를 모르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이 화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특히 어머니의 헌신적인 희생과 사랑이 온 가족에게 항상 햇살처럼 따뜻했다. 여고시절 외사촌 언니는 인천 송도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옆에는 2층으로 된 큰 중국집이 있었다. 그 중국집에는 하인천 화교학교를 다니는 예쁜 얼굴에 눈빛
설레고 설레던 만남이여잃어버린 탕자를맞이해준 아버지처럼 당신은 어머니의따뜻한 마음을보여 주었지요. 반세기의 세월을낯설어 하지 않고보듬어준 천사 날렵하고 청초한 자태에서 로즈마리 향이 났던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지금은 듬직하고 포근한 모습으로 모든 이를 사랑하는아 ! 그대 뉴욕에서 마드리드시드니까지고운 말의 씨앗이보이지 않는 날개를 달고 모든 이의 가슴속에 흰 눈처럼 녹아서 마음이 따뜻하답니다 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청아하고 고운 소리듣게 해 주소서 서 엘리사벳(글무늬 문학사랑회)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다.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늙음은 나를 찾아온다. 늙고 싶어서 늙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프다.주름진 얼굴, 젊은 날의 패기가 사라져 자신이 초라하다는 자격지심이들 때, 젊은이가 폄하하고 무시하는 듯 한 태도를 보일 때면 더욱 위축되고 서글퍼진다.‘나는 젊어 봤다. 너는 늙어봤냐?’세간에 떠도는 말을 뇌까려 보아도 위로가 안 된다.그렇다고 해서 늙음을 체념 한다면 오히려 발전 없는 늙은이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체통이라도 지켜야 될 텐데 체통이란 그냥 갖
나는 가끔씩 고즈넉한 깊은 밤에 일을 하곤 한다. 낮 동안의 소요와 소음들이 잦아들고 모두가 잠든, 오롯한 나만의 시간으로 자신과 마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때 살며시 찾아와 내 무릎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편안해 하는 존재가 있었다. 고요한 그 시간에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였다. 아무 말도 필요 없이 그냥 그렇게 조용히 서로를 쓰다듬고 기대면 되었다. 쮸쮸가 우리 집으로 들어 온지도 벌써 6년이다. 어느 날 남편이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들고 들어왔다. “웬 고양이야?” 라며 펄쩍 뛰는 나에게 어느 고객의 집에서
피지 (Fiji)에서 집으로 오면서 머리속을 떠나지 않은 화두가 은퇴였다. 일정한 금액을 은행에 예치하면 피지에서는 합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비자를 받아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피지는 물가가 싸고 자연이 깨끗하며 치안상태가 양호할 뿐 아니라 연중 날씨가 좋아 한국에서 은퇴를 한 후 남은여생을 보내기에 좋은 나라라는 것이다. 우리가 겨울인 6월 말에 도착하여 약 2주를 피지에서 지내보니 날씨와 기온은 아주 쾌적했다. 요즘 한국에서 자주 은퇴가 거론되는 이유는 올해인 2015년부터 소위 베이비붐 세대 (baby bo
태양이 부풀어 뿌옇게 변하더니 마침내 시원하게 소나기가 쏟아진다.창문을 통하여 줄기차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옛 일을 생각해 보았다.온 집안 식구들이 야외로 물놀이를 갔던 날이었다. 쨍 하던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오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 “용 세 마리가 한꺼번에 움직이니 비가 안 올 수 있나!” 아버님의 푸념 섞인 말씀이었다.외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내가 모두 용띠다.그런데 외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용은 매우 강하고 훌륭했는데 나는 미처 용이 되지 못한 뱀 꼬리 새끼 같다.이 못난 용은 밴댕이 소갈딱지를 타고나서
1088년 이맘때였나 보다. 친구 4명과 한 팀이 되어 멜본을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민박을 했는데 호주인 노부부가 사는 집이었다. 뒤뜰이 유난히 넓고 과일나무(귤, 감, 배)가 보기 좋게 서 있는, 주인집 안채와 분리된 게스트하우스로서 방, 욕실, 부엌 등 불편함이 없는 구조였다. 노부부는 칠십 세가 넘어 보였고 밝고 환한 미소로 우리 일행을 환영해 주었다. 2박 3일 일정으로 미리 예약한 탓인지 한국인이었던 우리를 배려해 김치, 된장, 고추장까지 준비해 놓아 적잖이 놀랐다. 다정한 분들이었다. 특히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낙천적인 성격을 타고난 나는 스트레스라는 것은 나와 거리가 먼 남의 이야기로만 여기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덧 내 생활이 스트레스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부쩍 느꼈고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생활환경을 당분간 바꿀 수 없으니 아마도 이것은 주어진 환경에서 행복하고자 하는 내 욕망의 몸부림인지도 모른다.어느 날 퇴근 후 피곤한 몸을 햇빛에 맡기며 명상음악을 들었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음악을 배경으로 물소리가 들렸는데 그 맑고 청아한 물소리가 내 심장 위를 흐르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어릴 적 자주 불
눈이 안보이면 감각이 손끝이 발달하여 점자책을 손끝으로 읽는다. 영화 서편제에서는 딸이 판소리를 하는데 한이 서리라고 딸아이의 눈을 멀게 하였다. 나도 처음에 시력을 잃고서 몇 년간 괴로워했다. 그 괴로움은 한으로 쌓여갔다. 맑은 정신으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술을 마시고 술이 깨면 또다시 술을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러다간 내가 노모보다 먼저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에게 효도는 못하여도 불효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 술을 그 날로 딱 끊었다. 그리고 나서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씻을 길이 없어 무작정 산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아이가 천재이기를 바랬다. 아니 천재일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꽃다운 이십을 갓 넘긴 나이에 시집을 온 내 아내만은 그 고운 얼굴과 몸매를 평생 간직할 거라 장담을 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책을 볼 때 글씨가 잘 안 보인다고 하면서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겉으로 덤덤하게 받아드렸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제는 갱년기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하면서 건강관리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다. 아내가 웃으면 그냥 좋아 얼굴만 바라보았던 것이 엊그제
퀸스타운에서 시작된 와카타푸(Wakatipu)호수는 뉴질랜드 남섬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평균 수심은 300m정도이고 길이는 84km에 달한다고 한다. 찰랑찰랑 고향 냇가가 생각나는 얕은 호숫가에는 하얀 조약돌이 반짝이고, 투명하게 맑은 물은 한 움큼 손에 쥐고 마시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그레노키 마을은 와카티푸 호수의 서쪽 맨 끝자락에 위치한 아름답고 작은 마을이었다.이 마을에서 바라본 마운트 은슬로(Enslow)라 불리는 높은 산 위에는 1년 내내 눈이 내려 은빛 가득한 산봉우리가 우리를 압도한다. 날씨변화가 심한 곳인데
항아리 - 남시온 (5세) 한국 할머니 집 옥상에 항아리가 있어요.항아리색은 갈색이고 반짝반짝해요.항아리 안에는 김치가 들어 있어요.항아리에 김치를 넣으면 김치가 맛있어요.항아리에는 고추장과 된장도 있어요 . 항아리는 정말 꼭 필요해요. --------------------------------- 항아리 - 류준현(year 7) 배 불뚝이 항아리할머니 생각나네 옹기종기 나란히 항아리누런 된장 한가득 살아있는 항아리된장이 맛있어지네 요술 항아리구수한 된장찌게 뚝딱 배 불뚝이 항아리그리운 한국 생각나네 옹기종기 나란히 항아리무엇이 들었
가을 바람이 살랑거리고 청량한 햇살이 내려앉은 체스우드거리에는 쇼핑 나온 사람. 그리운 이를 만나려는 사람 그리고 점심식사를 위해 인근 사무실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인파를 이룬다. 그 출렁거림과 상가가 즐비한 거리에서 삶의 생동감이 전해진다. 사람들의 행렬에 묻혀 레스토랑에서 문우들과 식사를 끝낸 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원래 수다라는 것이 그렇듯 이야기는 정해진 주제도 방향도 없이 그저 물 흐르듯, 바람 불 듯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다. 환갑이 넘은 권여사에게 가수 이효리를 닮았다라든가, 고희를 넘긴 박여
하늘이 맑고 푸르다. 산들 바람이 나뭇잎사이로 숨바꼭질 하듯 장난스럽게 분다. 아침 햇살에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여름 막바지 초록을 맘껏 발산하고 있다. 오늘은 학교로 출근하는 일상이 아닌 법원으로 향한다. 작년부터 배심원 의무를 하라는 편지가 주 법원에서 여러번 배달되었다. 번번히 취소를 하였으나 편지를 받을 때마다 직접 전화나 온라인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고 학교에 알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배심원으로 참석하지 않으면 이 천불 이상의 벌금을 물어야 하니 이것은 선거 때의 투표처럼 호주시민으로서의 다소 무거운 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