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은 오늘처럼 쌀쌀한 날씨에 몸을 녹이는 데는 뭐니뭐니해도 럼주가 최고라며 한잔 따라 마시고 나서 키를 잡고 있는 버트 씨에게도 권했어요. 하지만 버트 씨는 음주운전은 절대 안된다며 거절하시네요. 홑이불 같은 안개가 스르르 걷히면서 이제 배는 맹그로브 숲을 헤치고 동백나무 가득한 밀슨 섬으로 다가가네요. 밀슨 섬에 배가 닿자 이번에는 꽁지머리 청년이 배에서 내려 부교를 건너 언덕을 향해 오릅니다. 동백나무 숲 사이로 파란 대문이 보이고 그 너머로 하얗게 칠을 한 집이 한 채 더 보이네요. 다른 곳에서는 섬 주민이 부두까지 나와
카페를 자주 찾는 손님 중에 일흔을 조금 넘긴 버트 할아버지라는 분이 계세요. 사고로 한 쪽 손목을 잃은 버트 씨는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손자를 데리고 헉스베리 강을 오르내리며 강변마을과 섬에 편지를 전달해주는 우편배달부입니다. 이제는 사라져 가는 마지막 우편선의 주인공인데 요즘 벌이가 시원치 않아 카페에 오시면 늘 한 잔의 럼주로 그날의 노고를 풀어놓습니다. 이런 모습이 안돼 보이셨는지 사장님은 이따금 럼주 한 잔 더 갖다 드리라고 제게 눈으로 신호를 보내오세요. 카페, 쿠링가이는 한 달에 두 번 문을 닫아요. 그런데 오늘이
저 청이, 배 사장님이 사 오신 이라고도 하는 이스터 빵을 포도주에 적셔 한 입 베물어 봤어요. 향긋한 계피향이 입 안에 부드럽게 퍼지네요. 이스터 빵은 밀가루에 계피가루를 넣고 둥글게 반죽해서 럼주에 불린 건포도를 얹어 오븐에 구워낸 빵이에요. 특이한 것은 빵 위에 십자 모양으로 장식을 해준다는 것입니다. 매년 이맘때면 시드니 대부분의 빵집은 바빠집니다. 팔을 걷어붙인 제빵사가 땀을 뻘뻘 흘려가며 따끈따끈하게 잘 구워진 빵을 식힘 망에 얹어 들고 나오면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손님들은 아직
매년 부활절만 되면 시드니 올림픽 공원에서는 라는 큰 잔치를 2주간에 걸쳐 펼친답니다. 100년 전부터 시작된 이 전통 깊은 행사는 처음에는 농산물과 축산물의 생산을 장려하고 품종개량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자 만들었다고 하네요. 부활절만 되면 농민들은 한 해 동안 키운 가축과 수확한 농산물을 트럭에 싣고 시드니로 몰려와 경연대회를 열었어요. 지금은 먹거리 시장과 롤러코스트 같은 놀이시설도 한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점점 놀이문화로 굳어지는 느낌이 든답니다. 그럼에도 그날이 그날 같아 몹시 심심해하는 시드니 사람들에게는
가을이 깊어가는 탓도 있겠지만 부활절이 다가오면서 동네사람들이 여기저기로 떠난 쿠링가이는 한층 쓸쓸해졌네요. 그런데 이 부활절이 크리스마스나 양력설처럼 날짜가 고정된 것이 아니랍니다. 올 추석이 언제이지 알아보기 위해 달력을 들춰봐야 하듯이 부활절 역시 다소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하거든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절은 ‘춘분 다음 보름달이 뜨고 그에 이어지는 첫 번째 일요일이 됩니다. 물론 계절이 거꾸로 흘러가는 호주에서는 추분과 보름이 지나고 첫 번째로 찾아오는 일요일이 되겠지요. 호주에서 부활절은 크리스마스와 함께 큰 명절이랍니다.
저희 가게 옆에 바짝 붙어 있는 꽃집과 캔디가게는 이맘때면 하루 장사를 끝내고 슬슬 문을 닫기 시작하지만 카페, 쿠링가이는 이제부터 저녁장사를 한바탕 치러내야 하기 때문에 모두들 마음을 다잡는 시간입니다. 저 청이, 에이프런을 고쳐 매며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가로등이 켜진 사탕단풍나뭇길로 토마스 목사가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시네요. 카페 앞마당 너도밤나무에 자전거를 기대 세운 후 안으로 들어오신 토마스 목사는 셰프가 다니는 트리니티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세요. 트리니티 교회는 쿠링가이역 마을묘지 근처에 있는데 세워진 지는 100년도
카페, 쿠링가이에 들르면 롱블랙 Long Black 커피만 찾는 봅 리건은 맥콰리대학 도서관에 근무하는 30대 후반의 미혼남입니다. 봅은 쿠링가이에서도 후미진 그러니까 헉스베리 강을 따라 한참 올라간 산골에서 골든리트리버 한 마리 데리고 느긋하게 살고 있어요. 그런 그가 최근에 4년 동안 월급을 모아 호주에서도 4천 킬로나 떨어진 남극대륙을 돌아보고 왔다고 합니다. 일상을 훌훌 털어버린 27일간의 기나긴 휴가였지요. 그가 탔던 남극 유람선은 러시아 국적의 캐피탄 클레브니코프 호(號)였다네요. 남극대륙 여행만을 전문으로 하는 선박으로
아까보다 날씨가 더 나빠졌어요. 블루마운틴은 햇빛 한 줄기 들어올 틈 없이 구름이 두텁게 온 숲을 덮고 있네요. 게다가 비까지 와서 몹시 춥습니다. 가슴에 반짝반짝 빛나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젊은 승무원인 니콜라스는 언 손을 입김으로 녹여가며 기관차와 객차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새미르는 합장한 채 연신 “나마스테”를 외칩니다. 쉬익쉬익 흰 연기를 내뿜으며 클레어렌스 역을 출발한 지그재그 기차는 아치형 나무다리를 건너고 빽빽한 자작나무 숲 사이를 스치듯 지납니다. 기차가 안개로 둘러싸인 산모퉁이를 돌아 나가자 고
카페, 쿠링가이가 쉬는 날을 맞아 저 청이는 새미르(Samir)하고 지그재그 기관차를 타러 블루마운틴에 있는 클레어렌스에 와 있어요. 블루마운틴은 시드니에서 서쪽으로 100킬로미터쯤 떨어져 남북으로 길게 뻗어나간 산으로 오랜 침식작용을 거쳐 형성되었습니다. 지금은 관광용으로 운행되고 있지만 블루마운틴에 지그재그 기차가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대요. 시드니에서 블루마운틴 너머로 인부와 석탄, 농산물 같은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가파른 산을 넘자니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지그재그로 오를 필요가 있었던 거지요. 네
양 마담과 치폴로니 셰프는 하루 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피곤하신지 주방 쪽 소파에 몸을 푹 담고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네요. 사장님은 많이 피곤해서 일찍 집에 들어가 쉬고 싶다며 뒷정리를 부탁하고 나가십니다. 사장님을 배웅하고 들어온 저 청이, 데이빗과 샤론에게 다시 다가가 처음 어떻게 만났는지가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샤론은 홍콩에서 17살 때 부모와 함께 호주로 이민 왔어요. 내가 샤론을 만난 것은 6년 전 그녀가 물리치료사로 일하던 세인트 빈센트 재활병원에서 였지요.” 데이빗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기가 사고 당하던 순간을
오늘은 점심시간에 단체 손님이 몰려와 혼을 다 빼놓고 갔어요. 헉스베리 강 건너에 있는 쿠링가이 에콜로지 센터가 창립기념일이라고 해서 파티를 저희 카페에서 했거든요. 3시 쯤 행사가 끝났을 때는 저희 카페 직원들은 지쳐 나가떨어지기 일보직전이었어요. 하지만 장사가 잘돼서 다들 기분만은 좋네요. 근데 참 이상해요. 이런 날은 저녁장사가 시원치 않아요. 컴퓨터를 들여다보니 예약 손님도 없네요. 날이 어둑어둑해서 밖에 나가 가스등을 켰어요. 매일 저녁만 되면 노즐을 열어 가스등을 켜고 장사를 마친 다음에는 그걸 다시 잠가 불을 끈다는 것
낡고 오랜 된 것을 고쳐 쓰기를 좋아하는 셰프는 몇 년 전에 다 허물어져 가는 단층짜리 집을 사서 틈나는 대로 혼자서 고쳐오고 있어요. 마룻바닥에 구멍이 휑하게 뚫리고 문짝과 계단은 삐걱거리지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몸소 증명이라도 하려는지 살아가면서 천천히 손볼 거라고 하네요. “카타리나는 불만이 아주 많아. 수도꼭지에서 녹물이 나오지 않나 비만 오면 지붕이 새고 화장실 타일도 여기저기 깨져있으니 여자로서 무척 난감할 거야. 카페가 쉬는 날이면 건재상에 가서 재료 사다 이것저것 고치다보니 귀찮고 짜증도 나
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치폴로니 셰프는 어젯밤 늦게까지 축구경기를 보다 오늘 아침 지각을 하셨어요. 과음까지 하셨는지 출근하시자마자 홍차에 밀크를 잔뜩 넣어 마시면서 그게 자신의 해장법이라고 하시네요. 셰프는 9살 때 부모님을 따라 이태리에서 이민 오셨어요. 당시 치폴로니가(家)는 총 밑천이었던 당나귀 한 마리와 소 두 마리를 팔아 가까스로 여섯 식구의 배삯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옴짝달싹하기 힘들 정도로 좁은 맨 밑바닥 선실에서 다른 가족과 함께 한 달 넘게 보냈는데 바로 뒤가 기관실이라 엄청 시끄러웠다고 그때를
사장님도 친구분인 배사장님이 들어오시자 금방 환한 표정으로 바뀌어 일레인 아줌마 근처에 자리를 잡으시네요. 아웃백 이야기가 궁금하시던 차에 배 사장이 오시니까 잘 됐다며 다가오신 거 같아요. “초기에는 참 힘들었지. GPS가 없는 연습기를 탔기 때문이야. 오른손으로 조종간을 잡고 왼손으로 지도를 든 채 아래 지형을 내려다보며 비행기를 몰았으니. 아이반호를 찾아 갈 때였어. 지도상에 나와 있는 길이 분명 오른쪽 날개 아래로 보여야 하는데 아무리 가도 그 길이 안 나타나는 거야. 바람의 방향은 수시로 변하고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연료도
오늘은 온종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네요. 카페, 쿠링가이 이런 날은 일부 단골 고객이 찾아주는 거 외에는 손님이 뚝 떨어져 한산해요. 치폴로니 셰프가 날씨가 한층 쌀쌀해졌다며 벽난로에 불을 지피는데 일레인 아줌마가 몸을 움츠리며 들어오십니다.“청이야, 오늘은 으슬으슬 하니 차보다는 칵테일이나 한 잔 했으면 좋겠구나. 모히토가 되는지 모르겠다.”그 소리를 듣고 벽난로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유칼리 가지를 꺾어 넣던 셰프가 가능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시네요. 셰프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가니 모히토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시며 술에 얽힌
라임나무가 늘어선 펜티코스트 에비뉴를 따라가다 꺾어지면 지대가 조금 높은 곳에 패랭이꽃이 잔뜩 피어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곳이 나타납니다. 거기에 저희 카페 단골이신 히긴스 씨가 사세요. 더위가 한풀 꺾인 저녁 무렵 그 앞을 지나다 보면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풀을 뽑고 있는 히긴스 씨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히긴스 씨는 쿠링가이 부시(bush)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계시다 얼마 전에 퇴직하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다방면으로 아시는 게 참 많은 분이세요. 지난 일요일 저녁이었어요. 사장님이 빌린 책을 갖다드리라고 해
싱그러웠던 여름도 막바지에 들어섰습니다. 어제 성당서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데이지 아줌마를 본게 언제쯤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돼서 호도파이를 하나 사들고 헉스베리 강 건너 '데이지목장'을 찾아갔습니다. 빨간 함석지붕을 이고 있는, 동네사람들 말로는 200년은 충분히 넘었을거라는 목조다리를 건너자 건초더미가 군데군데 쌓여있는 목장지대가 나타납니다. 하워드 씨 허브농장 앞을 지날 때였어요.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풍차 옆으로 캥거루 두 마리가 나와 죽자사자 권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몇 차례 비가 와서인지 잠
카페 쿠링가이에 가스등이 켜질 무렵이면 치폴로니 셰프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피자를 굽기 위해 진흙화덕에 참나무를 넣고 불을 지핍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은 나폴리 피자가 나오는 날이거든요. 오늘은 제일 먼저 일레인 아줌마가 연기로 자욱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피자가 나왔냐고 물으시네요. 일레인 아줌마는 전나무와 리키타 소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쿠링가이 국립공원 입구에 아담하게 지어진 이층집에 혼자 살고 계십니다. 일레인은 얼마 전에 쉰아홉 생일을 맞이하셨으니 아줌마라고 불러드리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늘 양모 가디건에 플레어스
솔향기 짙은 골세발솥에 차 끓는 소리언덕배기에 나그네 스님 갈 길은 먼데저 하늘에 구름은 왜 그리 골이 깊은가한가로운 학은 어느새 깜빡 잠이 들었고그 아래 성외산장(城外山莊)늙은 양주는 어이 그리 다정한지고저 청이, 지금 위 글에 나오는 ‘성외산장’에 놀러와 차를 마시며 벽에 걸린 족자에 씌인 한시를 보고 있어요. 한시를 읽지 않고 보고 있다고 표현한 것은 저 청이, 한문을 읽을 줄 모르거든요. 때문에 그 번역본을 머리에 떠올리며 보고 있어요. 이 시는 여기 ‘성외산장’의 주인이신 할아버지의 친구 양명(楊明)이라는 분이 여기 사시는
저희 카페에서 비교적 한가한 때는 아침나절이에요. 이 시간이며 대체로 레인보우 롤리킷이나 잿빛 크레스트 피죤 같은 동내 새들이 카페 앞마당으로 우르르 몰려와 셰프가 뿌려놓은 모이를 쪼거나 수도꼭지에 거꾸로 매달려 부리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아 마십니다. 또 쿠링가이 국립공원 쪽에서 물안개를 제치고 떠오른 해는 너도밤나무 위에서 초록빛 그물망을 베란다 데크 위에 펼쳐 놓습니다. 사장님이 컴퓨터 앞에 앉아 친구들과 페이스북에 연결되어 잡답을 하는 사이 셰프는 텔레비전으로 폭스 스포츠뉴스를 시청하고 양마담은 카운터에 앉아 잡지를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