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쪽 턱이 빠진 채잠이 든 가방힘 없는 두팔 방 바닥에 내던지고늘어진 가방 속가을 바람이 지나간다아침 저녁 집에서 가게로집어 넣고 눌러 넣어도비명 소리 한번 없이받아만 주던 가방단풍잎이 떨어지는 커피 숍새로운 주인에게 비워주며낡은 가방 까지 버리려 했지듬성 듬성 빠진 지퍼 사이벌어진 입 가늘어진 가방 끈꼭 내 모습 같아 슬그머니 밀어 놓은검은색 가방 박경(호주한인문인협회 회원)
아마득한 지평 한가운데 큰 바위 하나 우람하게 박혀있지신의 창고에서 잠자던 울루루옛날 욕심 많은 마귀가훔치려다 떨어뜨렸다는 거대한 보석바라보고, 만져보고, 올라가도, 곰곰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어검은 하늘을 찢는 번개 맞으면 울루루 울루루 쿵...쾅...온몸으로 천둥소리가 되어 울지두려운 신비로 휩싸인 그곳에보리진들은 경배를 한다네태양의 이글거림 속에붉은 바위는 화려한 빛의 오팔이 되어 부활하고붉은 땅 위에 혼자 아름답네가슴 두근대는 인간의 눈동자 속에 시간은 장엄히 지나 붉은 루비가 되어 박히네밤...어둠을 가득 머금은 바위사람의
미열...손끝에 더듬어 지는 너를...넋이 갇혀 있는 사각의 집무당의 발바닥처럼 감각 잃은 귀가 세상 언어들을 토사하고 있다물감의 혀가 백짓장 같은 캔버스를 핥아 갈 때면풀어헤친 가슴 속으로는 아픈 별들을 추락 시킨다긁어 낸 나이프 자국 만큼 고통이 된다숨통이 된다자화상 속에서 걸어나온 영혼이 내 앞에 선다 장정윤(호주한인문인협회)
여름이 막 시작하려는 주일, 울란바타르에서 30여 킬로미터 떨어진 지방 교회에 가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리더니 점점 더 빗줄기는 굵어지고 있었다.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비포장 도로 인데다가 시골길은 이정표나 정해진 도로가 없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곧 주행 도로가 되는 셈이다. 비가 오는 이유로 교인들은 절반 정도밖에 오지 않았다고 담당 전도사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끝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몇 명이라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은 해야 하니까 인원이 그다지 문제 되지 않았다. 예배를 마치면 환자들이 다가와 각종 질병, 마음의
등록부에서 지워진 지 오래, 방치의 비명을 삼키며 작은 섬으로 자라는 중싸늘한 눈총을 삭이며 무시로 부는 모래바람을 한밤중에도 맞아드린다 해빙기가 지나자 리아스식 해안의 침수가 시작되고, 푸른 풀밭들이 사라진다 핏발서는 두려움을 모래무덤에 묻는다 삭은 갈비뼈 사이에 좀보리사초 갯완두꽃을 들여놓고 후미엔 편마암 대문도 세워 육지와 한통속이 되어간다 이 타향과 좀 더 멋지게 어우러지려면 도드라졌던 그의 처음을 다 없애야 한다 물길을 달리던 기억은 모래무덤에 밀어 넣고추억의 촉수를 건드리는 잔물결 황금 빛 편린들에게도 마음을 빼앗겨서는
담주렁주렁 꽃매단 가지하나너머를 탐한다 가시로 치장한 비장함이 청상 과부된 옆집순이의 속내 같다 오랫동안 핏속에 간직했던 절개 덩이푸른 보따리에 싸서부엌 시렁에 얹어두고 초승달의 실눈 웃음에살포시 마음을 연다 한창 부풀어 터질것 같은나그네 풀씨의 고환을 가득 채워 놓고는 여름밤벙글 벙글 꽃잎 깨워세상을 마냥 젖게 한다 손영선(호주한인문인협회)현대수필 2003년 여름호 수필등단문학시대 2011년 여름호 시등단
땟국물 흐르는 머리들이 땅 아래로 간다일그러진 양푼의 이력이납작 엎드려 찌든 동전들을 세고 있다로봇의 영혼도 DNA로 해체 된다고 믿는 세상에서도행인의 발목을 잡으려면 가슴을 땅바닥에 붙여야만 한다예수처럼 낮아져야만 한다벌벌 흔들리는 형광등 불빛이 과거를 핥아가고감겨진 망막에 걸려 있는 빈집이 아득하다몸뚱이들이 활자 가득한 신문지를 켜켜로 덮느라 바쁘다천천히 목숨 한줄 한줄 잠 재우는 통로들숨과 날숨이 아직 살아 있음을 알려준다제 몸을 찌르기 위해 가시를 키우는 선인장들아들노릇 , 애비노릇 , 남편노릇 못한 죄로화석 같은 심장 하나
세븐 마일 비치(Seven miles beach) 숲 헤진 구멍으로 날아드는 보랏빛 햇살한가로이 풀을 뜯는 게으른 캥거루 오색 빛깔 보다 진한 패롯(parrot)의 사랑 노래검츄리(gum tree) 가지 위 소란치 않디? 지금은? 유칼립투스(eucalyptus) 나무 부여잡고 잠자는 코알라나뭇잎 먹고 대신 뿌리에 먹이를 준다지 눈길 가는 끝까지 깔려 있는 실크로드소근 소근 들려오는 은빛 살고운 모래결 하얀 파도 타고 달려 오는 사내들하얀 면사포 휘날리며 달리는 신부들 맨발로 물톱 따라 걷다 보면멀리서 풍겨오는 인어공주의 비릿한 살내
기차에서 내린 시간은 오전 11시 30분이 막 지날 때였다. 오던 곳이어서 낯설지 않았는데 오늘은 좀 엇갈린 기분이 들었다. 생소하기도 하고 익숙한 것 같기도 한, 그 애매함이 싫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편한 것도 아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낮고 짙은 회색이 온통 불만이다. 철길에 늘어선 나목들 밑에는 갈색과 노랑 단풍이 가을과 겨울을 섞으며 계절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오른쪽에서 상가를 따라 올라가 볼까? 아님 상가가 아닌 왼쪽 길로 차도를 따라가다 바로 동네 공원을 지나 단풍과 상록수와 나목들이 어울린 산 밑을
무우청 무우 한 단 사면무우는 두 개 무우청은 비닐 줄에 꼬인채 여럿 손 잡고 온다 어설픈 솜씨로 엮어 서늘한 곳에 걸고 보니방학 맞아 찾아 갔던 큰이모 내 곁에 와 있다 청상에다 자식 마저 없어휴가철 조카들이 자식먹을 것 변변찮은 어촌새파란 사과 마루에 앉혀 놓고바닷가로 달려간다 된장 양념 뒤집어 쓰고팔딱거리던 생선 밑자리 깔고 누워있는 빛 바랜 젊은 날들 초가집 처마 밑에서 늙어 가던 무우청과짠 내음 바닷 바람에시들어 가던 이모 김복례(호주한인문인협회)
사랑니 없어도 되었다날 때에야 아프지만 잇바디는 곱게 메워준다지만썩기도 먼저 썩느니잇몸 제일 시린 곳 몸살 내느니그냥 나지 말 걸 그랬다 알 수는 없었다그 놈, 언젠가 마구 던져 만든 타제석기 되어연한 볼 안쪽 헐어내다가입 안에서 잘근자근 핏덩이 씹히울 줄은… 그만 뽑아야지 했다오래여서 시절이 되고 시대가 되어버린 뿌리부터 밤마다 밤마다 사랑니 뽑는 꿈나는 곧 죽을 것 같다. 1997년경 임옥희
팔팔한 자식 잃은 에미, 아이를 찾느라 헤맨다, 밤에 간신히 눈 붙이면 같은 꿈을 반복하여 이젠 꿈에서도 꿈이라는 것을 안다. 어제 밤에도 일 하다가 앞치마를 두른 채로 뛰쳐 나갔다. 사거리에서 이거리 저거리 찾다가 큰길 따라 가다가다 인적도 없는 오솔길에 들어섰는데 밤색 단층집이 있어서 들어갔다. 안경을 낀 선생님은 학생에게 책을 넘겨주며 다정히 말씀하고 계셨다. 학생들은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데, 광선이 어두워 얼굴은 보여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몇 번이나 꿈에서 만나 다시 잃을까봐 두려워 꼭 붙잡고 애 이름 부르며 울다
이야기 구조는 흔히 스토리텔링(storytelling)과 동일한 개념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큰 범위를 내포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는 오직 문자 언어로만 이루어지는 서사 구조가 예술세계에서는 영화의 배경이나 대사, 미술의 이미지, 음악의 효과 그리고 과학, 의학, 법학 등 모든 일상생활 속 깊숙이 까지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에서 발생하는 모든 인과 관계로 엮어진 실제 혹은 허구적인 사건들의 연결이 곧 서사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학적인 측면에서 이야기 효과란 성향적으로 접근이 어려운 각종
콜로 리버(Colo River) 박 경 잘름거리는 강물심장이 식은 말 몇마리비상을 꿈꾼다 유칼립투스 이파리가슴 속에 떨어지면남십자성 별 빛 속시인들이 쓰러진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들처럼두고 온 하늘을 오래도록 쏘아보다돌아가야 한다고밤이 새도록 말똥을 태우며쉬지 않고 서성인다 만삭의 연어처럼얕은 강바닥을 거슬러 올 배를 기다리며풀어보지도 못한 무거운 가방을 들고나뭇잎처럼 뒹구는시드니의 시인들 주: 콜로 리버(Colo River)는 시드니 서부 윈저 근처에 있는 강으로 수심이 얕고 폭도 좁은 강이다.근처에 승마를 할 수 있는 시설이
가야 하나 더 머물러야 하나 고개를 갸웃거리다모가지 툭 잘린 나뭇잎들, 고런 나뭇잎 소복이 내려앉은 자리에 세수도 하지 않고 저들끼리 촐랑거리다 놀라 주저 앉은 새들, 거기에 발그레한 낯빛의 아침햇살까지마당에 모였네요 하늘에서 내려 온 것들과 땅이 서로 만나여러 번의 퇴고를 마치고 흐뭇해진 한 편의 시(詩)처럼풍경은 아름답고 흐뭇하네요 시(詩)가, 모여 앉은 마당을어머니는 기역자로 허리를 절도 있게 구부리고 젖은 빨래바구니를 밀며 가네요 시의 행간을 하나씩 짚어 읽듯이 건너가네요 어머니의 허약한 하반신이 지나가면 나뭇잎들도 새들도
나도 아지 못하는 사이에수북이 쌓인 사랑을 밟고 가면서흔하디흔한 것이 갓길 은행나무잎 같고그 사랑 노랗다 못해 누렇게변해간다 해도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합시다당신도 아지 못하는 사이에누군가 눈물 떨궈 계절은을씨년스럽다 해도천만 년을 되돌려도 끼워 넣지못할오늘 하루도 특별히 사랑합시다우리 아지 못하는 사이에슬픈 사랑 발에 밟혀 몸살 앓는다해도천지간을 채워도 아직 아쉬운 빈틈눈물로 봉하도록 사랑합시다사랑합시다가을날 뚝뚝 떨어져 모든 발걸음사라진 뒤에우리사랑 쓸모없이 뒹굴어도누군가 정성으로 쓸어 담는새벽이 오면사랑은 남모르게 벅찬 노동
이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힌다. 옆집 울타리 나무인 차이니스 쟈스민 향기를 맡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일은 마치 큰 선물을 받은 듯 호사스럽다. 푸른 나무에 자잘하게 달린 순백의 꽃. 촘촘한 가지 뒤에 숨어서 향기를 뿜어내는데 그 모양새가 바라보는 이들에게 방긋방긋 웃는 듯하다.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에 실려 싱그러우면서 달콤한 향기가 담장을 넘어서 마실 오듯 들어 와, 향기를 내 집에 잔뜩 흘려놓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향기가 방안에 가득 차면 그 향기가 내 몸에 배여 들기도 하여 하루 종일 향기 나는 사람인
늘어진 하늘 밑 툭 베어져밑둥만 남은 유도화연초록 이파리로 태어나기둥도 세우고 지붕도 얹어지은 나이테해마다 그려 놓은 길이 수십 개불혹의 강 건너분수처럼 터지는 푸른 이파리 분홍 꽃 머리에 가득인 채하늘을 두 손으로 바치고산처럼 웃고 서있던 나무이파리에 독이 있다며오는 이 마다 아우성잘라 버려라애가 끓던 노모 곁에 토막 토막 떨어진 나무봄이 오고잘려나간 밑둥 사이푸르른 새순쥐어뜯고 움켜쥔 손그만해라 고함소리에 섬뜩 멈추어 선 나울고 서있는 푸른 잎새들등 뒤에는 늙은 어머니박경(호주한인문인협회)
마음이 통하는 소중한 사람들과 떠나는 여행은 즐겁고 행복하다.지난해 연말, 문인회 회원들과 농장에 다녀왔다. 일박이일의 짧은 여정 이었지만 그 기억은 오래 갈 것 같다.시드니 근교 윈저를 지나 콜로리버에 있는 농장은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분지를 지나 큰 나무들이 즐비한 계곡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스트라를 떠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와 농장 입구에 도착한 회원들은 수려한 경관에 기분이 한껏 부풀어 보였다. 그런데 우리를 반겨야할 농장의 정문이 쇠사슬에 감긴 채 굳게 잠겨 있었다. 미리 와서 우리를 안내하기로 한 농장 관리
오랜 전 쓴 글에서 산을 나의 애인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에서 산을 자주 찾는 내 지인들도 그런 표현을 한다. 애인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만,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그것을 애인처럼 여길 수도 있으니 꼭 틀린 말은 아니다. 산을 애인이라고 했다고 해서 표현법이 틀렸다고 한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겠지만, 그래도 애인처럼 여기고 산을 오르는 일은 누적된 일상의 건조함을 촉촉히 적셔주는 묘미가 있다.산 걷기를 즐기는 나는, 언젠가의 글에서 이미 썼지만 내 유년의 기억(원형의 기억)속에 있는 무엇이 작용해서 이다. 세상이 미성숙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