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Diaspora)란 단어는 이스라엘을 떠나서 방황하며 전 세계를 떠도는 유대인의 역사적인 현상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이제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글로벌시대를 맞아 고국을 떠나서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다른 민족들도 사회 과학적으로는 ‘디아스포라’라고 불린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이 말은 호주에서 삶을 살아가는 한인 교민들을 부르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호주에 살고있는 당신은 “한국 사람입니까? 혹은 호주 사람입니까? 또는 한국계 호주인입니까? ( Are you Korean or Australian or Kor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맞으면 무언가를 떠나보낸다는 아쉬움이 마음 한구석에 스며들어온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일 년 동안의 기억들로 머릿속은 가득 채워져 있는데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크기만 하다. 하지만, 일 년의 마지막 순간들이 지나가면서 그동안의 경험이 미래를 향한 새로운 발걸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올 한해도 참으로 다양한 인연을 맺고 헤어지기도 하는 삶의 순리를 겪은 것 같다. 오래전에 읽었던 독일 작가 F. 밀러의 “독일인의 사랑”에서 참으로 멋진 말을 다시 찾았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별이 하늘에
거리에 어둠이 내리면 도시의 빌딩 숲에서 쏟아져 나오는 휘황한 불빛이 눈을 시리게 만든다. 오랜 시간 동안 이미 익숙해진 풍경이지만 매일 새롭게 느껴지는 우리 동네의 야경이다. 하루의 마무리를 확인하는 시간의 신호처럼 여겨진다. 나이가 들어감에 대한 두려움 탓인지 아니면 시간이 지날수록 막연함에 기대고 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느 여류시인은 “여자는 나이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 의식이 불행한 것이라고, 그래서 나이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고,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얼마만큼의 시간
꽃샘바람과 함께 찾아온 다양한 이벤트들이 태양의 도시를 더욱 눈부시고 활기차게 만들고 있다. 한낮에 서서히 뜨거워지는 열기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도시는 풍성한 에너지로 채워지는 듯하다. 그런 에너지를 품어내는 영향 탓인지 여러 행사가 이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최근에 브리즈번에서 있었던 몇 개의 다양한 행사에 참석하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사회 참여활동이란 느슨해지는 생활에 자극을 받게 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관점을 바꾸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진화하는 단계를 거친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접하는 시간 속에서 삶의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는 날이 참으로 소중하게 여겨진다. 예술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우리의 내면세계를 밝혀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문화센터에서 나무껍질을 사용해서 호주의 야생 자연풍경을 작은 판자 위에 그림처럼 만들어내는 예술의 멋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시간을 가지는 이유는 앞으로의 나의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우리가 예술을 만날 때는 자신과 세상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은퇴한 지 어느새 두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가버렸다. 인생의 여정은 한 시점에서 또 다른 시점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그 여정 중에서 은퇴는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은퇴는 단순히 일의 끝이 아닌, 더욱 풍요로운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두려움은 마음에 새겨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조금씩 실천하는 것으로 도전을 해본다. 은퇴 후의 시간은 그동안 묵혀두었던 책을 새롭게 꺼내보는 듯 느슨한 기분이 든다. 희미해졌던 흥미와 호기심이 서서히 나를 깨어나게 하고
내가 은퇴를 한 후에 첫 번째로 찾아온 귀한 손님이 있다. 뉴욕에 사는 오빠 부부가 처음으로 브리즈번을 방문한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의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 우리 남매의 만남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2023년 7월이 되어서야 오빠는 북반구 미국에서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서 남반구 호주에 사는 동생을 만나러 오는 특별한 순간을 만들었다. 공항에서의 기다림은 마치 연인을 기다리듯 긴장과 설렘으로 마음을 들뜨게 했다. 오빠가 호주를 방문하는 계획을 실행하는 데에는 참으로 긴 시간이 걸린 듯하다. 막내동생에 대한 유난한 사랑은
6월, 한해의 반 자락인 이달의 마지막 주, 그동안 마음에 담아놓았던 숙제를 과감하게 풀어버렸다. 지난 2월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부터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던 일을 학교 측에 통보하고 은퇴를 신청했었다. 십 대 청소년들과 이십여 년의 시간을 함께하면서 생각이나 외형적인 모양새까지 꽤 많이 젊게 살아온 날들이다. 나의 그런 모습에 익숙했던 학교 동료들이나 지인들은 하나같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왜, 왜 은퇴를 하는데, 말도 안 돼!” 교장은 나와의 이별이 믿기지 않는지 “벌써 은퇴할 나이가 되었나요? 아직 삼십 대가 아닌가요?” 하
베란다 창을 통해서 거실 안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너무 밝고 따뜻하게 느껴져서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창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하나 떠 있지 않은 완벽한 푸르름이 눈에 스며들 듯하다. 맑고 서늘한 기운이 밴 오월 하늘은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은근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 그런 기운을 받아서인지 태양의 도시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었다. 오월은 역시 축제의 달이다! 축제 하나브리즈번에는 매년 오월이 되면 국제 작가 축제( Brisbane International Writers Festival)가 열린다. ‘브리즈번 작가 축제’는 올
뜨거운 열기를 한껏 내뿜던 한여름의 햇살도 이젠 슬며시 꼬리를 사리며 자연의 법칙에 밀려나고 있다. 빛살이 스산하게 느껴지는 계절의 변화가 민감하게 피부에 와 닿는 4월의 끝날이다. 참으로 무더웠던 날들에 많이 지치기도 했지만, 유난히 파란 하늘과 뭉실하게 떠 있는 하얀 구름 뭉치를 보며 위로를 받기도 했다.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라는 어느 시인의 글이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면의 아름다움보다 육신의 변화를 먼저 느끼게 된다. 몸의 여기저기에서 보내는 불편한 신호는 나이가 들어감을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 새로운 계절
옛날 아주 오랜 옛날, 눈먼 사람에게 기적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예수님이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눈먼 사람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니 태생 소경이 눈을 뜨게 되었다는 유명한 성경 구절이 있다. 눈을 떴을 때, 그 소경의 환희와 기쁨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은 온통 환한 빛으로 가득 찼음을 느꼈을 것이며 모든 사물이 아름답게 보였을 것이라는 지레 짐작을 할 수 있다. 그 시대의 지배층은 환자가 치유되는 현상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았기에 기적을 불신하는 교만을 부렸다.
지난 몇 주간의 날씨는 여름 햇살의 뜨거운 맛을 톡톡히 보여주려는 듯 지글거리며 땅 위에 쏟아져 내렸다. 호주 전체가 여름이 되면 산불이나 홍수로 한바탕 여름 치레를 하게 된다. 북반구의 한국에는 이례적으로 눈이 몇 십 센티나 쌓였다는 으스스한 기후 소식을 전하며 어깨를 움츠리게 만든다. 10시간 정도 하늘을 날아가면 온전히 다른 두 개의 세계가 이 지구상에 평행선을 이루며 존재하고 있다.그리고 현재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도 선조들의 예전 삶이 아직도 살아 숨 쉬며 현대인의 마음과 눈을 매료시킨다. 유난히 뜨거웠던 날 중
세 번째 밀레니엄이 시작한 이후로 어느새 23년을 더 보탠 새해를 맞이했다. 컴퓨터가 인식하지 못하는 00의 숫자 때문에 세상에 크나큰 변고가 일어날 것처럼 떠들썩했던 그 시간도 이제는 한편의 에피소드로 남겨졌다. 나는 이제 더는 새해의 특별한 소망이나 계획을 세우지 않고 담담한 마음으로 새해맞이를 하고 있다. 나이 듦과 더불어 코로나 역병이 활개 치고 다닌 지난 3년의 후유증 탓으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듯하다. 쉼 속에서 불안의 심리를 벗어내고 정신적인 휴식과 내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한 시기에 이른 것 같다.
달력을 넘기면서 12월이라는 숫자를 보면 올 한 해가 저무는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허전해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남은 시간을 정리해서 마무리를 잘 해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게 된다. 그리고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설레며 기다리는 나이는 지났지만 조금 들뜨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아기 예수의 탄생과 세 명의 동방박사들이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동방박사들은 하늘에 뜬 새 별 하나를 나침반으로 삼아서 기나긴 여정을 떠났다. 구세주가 탄생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막연하게 별 하나에 의지해서 낙타를 타고 사막의 밤길
가톨릭교회에서는 11월을 위령성월(慰靈聖月)로 정해서 세상을 떠난 분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기간으로 정하고 있다. 나이 들면서 주위의 아는 분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지켜보며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를 생각하게 된다. 대구 교구청 성직자묘지 입구 문의 양쪽 기둥에는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HODIE MIHI, CRAS TIBI)라는 뜻의 라틴어가 붙어있다. 글의 의미는 시간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서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으니 그 중간인 현재, 오늘을 소
가냘픈 코스모스가 바람에 살랑거리는 시골길, 불꽃처럼 붉게 타오르는 단풍나무를 그리워하며 한국으로 오 년 만의 나들이를 떠났다. 코로나로 인해서 한국으로 가는 직행 항공편이 사라진 지 어느새 3년이다. 싱가포르를 거쳐서 한국으로 가는 긴 비행시간이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했지만 설레는 마음이 더 앞서는 듯했다. 자정이 다된 시간에 땅을 박차고 오른 비행기 안에서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야식을 먹으며, 영화를 몇 편 보니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세 시간 정도를 대기한 후에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내가 태어나고
언제부턴가 지인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화제의 인물이 자연스레 손녀 이야기로 흘러간다. 이 변화는 세월이 흐르면서 팔불출 엄마가 어느새 곱빼기 팔불출 할머니가 되었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사람 꽃(人花: 아기)은 보고 또 보아도 지겹지 않으며 사랑이 더 깊어만 간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외손녀가 예정일보다 조금 일찍 세상 속에 들어와서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았는데 어느새 첫 돌을 맞게 되었다. 첫 돌잔치는 아이의 평생을 통해서 부모에게는 잊지 못할 가장 아름다운 추억거리로 남는다. 서투른 부모 노릇을 하는 딸과 사위
어느새 훌쩍 지나버린 시간을 생각하면 은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은 아직도 일하고 있느냐고 묻기도 하고, 이제는 편히 쉴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던져온다. 나는 “내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라고 여유 있게 들릴 수 있는 응답을 한다. 젊은 시절에는 내 나이 쉰 살이 되면 일을 하지 않고 우아하고 멋진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훨씬 더 많은 숫자의 나이가 되었지만, 내년, 또 내년을 기약하며 직장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은퇴 후의 생활을
오랜만에 내린 빗줄기는 마른 땅을 적시고 나무들의 갈증을 풀어주며 촉촉한 물기를 머금게 한다. 자연의 이치란 이처럼 하늘과 땅이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호주사회도 참으로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서 두루뭉술하게 엮이면서 살아간다. 호주에서 살아온 긴 시간은 나의 삶에 변화를 주며 생활 습관이나 사고방식을 퓨전 음식처럼 변화시키기도 한다. 사람은 역시 부딪히고 생존 터에서 적응하는 인지력을 본능적으로 타고난 모양이다. 간혹 이런 생각이 드는 경우는 운동경기를 보면서 퀸스랜드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 한국의 mbc FM 라디오에 채널을 고정시켜놓고 하루를 시작하는 요즘이다. 코로나 역병이 발생한 이후로 생긴 습관이며 호주보다 한 시간 이른 덕분에 하나의 생활 패턴이 되어 버렸다. 첫 프로그램으로는 건강 상식으로 시작하는 ‘건강한 아침’ 방송을 애청하는데 각 분야의 전문의들이 전해주는 정보와 치료법을 유익하게 듣고 있다. 한의학, 서양의학, 가정 의학, 정신질환 등 다양한 건강정보를 매일 접하다보니 상식이 제법 늘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수많은 질병들의 증상을 계속 듣다보면 귀가 솔깃해져서 그중 의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