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4년전 이야기다.
운전면허를 딴지 얼마되지 않아 빨간 초보면허증 P1을 받고 신이 났었지만, 도로교통국(RTA)은 우리집에 한 대밖에 없는 8기통의 V8 차량을 P1면허 취득자는 몰 수 없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경찰서 3곳에 문의한 결과 집에 차가 한대인 가정은 V8을 몰아도 된다고 답변했다.
난 그런줄만 알고 P1표지판을 부착하고 마음껏 차를 몰았다.
어느날 집에서 나오자마자 큰길로 진입하는데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뒤에 달라 붙었다.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 한 사이에 경찰은 면허증을 확인한 후, ‘왜 이 차를 타느냐’고 물었다.
나는 당당히 경찰서 세 군데 전화했다며 경위를 설명했다.
하지만 고속도로 경찰인 자신은 법규를 잘 모른다며 그 자리에서 700달러가 넘는 벌금과 벌점 7점 고지서를 발부했다.
P1은 벌점 4점이 상한선인데 난 그걸 한 번에 다 잃었다.
그 얄미운 경찰의 이름을 잊을 수가 없었다.
너무 분하고 이해가 안 됐지만 맏이인 나는 집안 형편상 차로 계속 일을 나갔다.
딱 일주일 후, 같은 길 반대 쪽에서 경찰들이 음주 단속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경찰이 도로 한복판으로 나와 경찰 표지판을 들고 나만 옆으로 나오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다가오자마자 ‘내가 이 차 타지 말랬지’라고 말했다.
깜짝 놀라 명찰을 보니 일주일 전 그 경찰이었다.
운전해야만 하는 이유를 말했지만 듣지도 않고 또 한번 700달러가 넘는 벌금과 벌점 7점을 받았다.
경찰은 이 차를 타려면 면제 양식(exemption form)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는 가버렸다.
난 일주일에 1400달러가 넘는 벌금과 벌점 14점을 받아 버렸다.
너무 억울한 나머지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세상이 너무 불공평 하다고 느껴졌다.
그 경찰은 내가 집 근처에 일하는지도, 같은 동네에 사는지도 알고 있었다.
병원에 가서 알아보니, 그 경찰은 꽤 악명이 높았다.
주특기는 ‘일단 세워놓고 흠을 잡는 것’이라고 했다.
일부 간호사들도 그 경찰 때문에 지각하거나 결근한 적이 있었다.
가슴아픈 사연을 들은 한 의사는, 날 위로하면서 나중에 그 경찰이 우리 병원에 오면 큰 주사 한방 주자고 농담했다.
그 후 1년 가까이 나는 도로교통국과 주정부채권회수국(SDRO)에 민원 편지를 썼다.
양 기관은 서로 떠넘기기에 바빴다.
그러는 사이 채권회수국에서 벌금이 두 배 가산된 최종 통지서가 집에 도착했다.
아무런 경고장도 없이 말이다.
심신이 너무 지친 상태에, 법원에 출입할 시간조차 없어 벌금을 할부로 갚아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어느덧 2주일마다 우체국에 가서 벌금내는 게 일상이 됐다.
마음도 비우기로 했다.
이 후 3년이 지난 어느날, 긴급 연락을 받고 병원에 들어갔다.
한 환자가 나에게 배정됐다.
그 환자를 보기 전에 파일의 이름을 먼저 봤다.
너무 낯익은 이름이라 한번 더 읽어봤다.
분명 이름을 아는데 하면서 환자를 한 번 쳐다봤다.
아는 얼굴이 아니었다.
주소를 봤다.
우리집 근처였다.
직업란을 보니 경찰이었다.
그것도 고속도로 순찰 경찰!!3년 전 그 경찰이었다.
너무 신기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 날 난, 그 교대 시간에, 그 환자 담당이 된 것이었다.
너무나 기막힌 우연이었다.
3년 전 고속도로에서 과속차량을 단속하던 중 뒤에서 또 다른 과속 차량에 치여 공중으로 10미터를 튕겨올라가는 사고를 당해 허리뼈가 심하게 부서졌고 그 후유증이 심해져 다시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것이었다.
사고 후 주로 사무직 근무를 하면서 살이 많이 쪄서 잘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등과 허리에 통증이 심해 끙끙앓고 있었고, 옆에는 부인과 어린 아기가 있었다.
난 의사에게 급히 달려가 이 상황을 말했다.
의사도 놀란 듯 눈이 둥그래지며 빨리 큰 주사를 준비하라고 농담했다.
나는 그저 웃으며, 복수라는 건 없다고 말했다.
3년 전의 일에 악을 품고 복수할 날만 기다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까웠다.
나는 그 환자를 남들보다 더 친절하게 더 간절하게 돌봐주었다.
그가 혹시나 옛날 일이 생각나서 자기가 잘못한게 있으면 회개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진심으로 간호했다.
수술실 들어가기 전까지 그는 감사와 칭찬을 그치지 않았다.
그를 수술실로 보낸 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진동했다.
그리고 살짝 미소를 지었고 마음 한구석에서 움츠리고 있던 응어리가 녹아버린 것 같았다.
인내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인내한만큼 보답받는다는 것도 실감했다.
인내라는 고요하고 파워풀한 힘의 가치를 알게된 것이다.
인내, 누구나 한번 꼭 도전해보길 권한다.
김아름 간호사한인사회가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면서 차세대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식인 기성세대는 호주식인 차세대와의 소통과 교류에 세대차를 느끼고 있습니다.
신구 세대가 한인사회를 함께 이끌어가기 위해선 이런 세대차 극복이 과제입니다.
김아름 간호사가 월 1회씩 게재할 ‘차세대가 달린다’는 주류사회 병원에 근무하는 차세대 한인 젊은이가 호주 생활을 통해 체험한 특이하고 재미있는 일화를 독자들께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한인 신구 세대간은 물론 호주사회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폭이 넓어지길 기대합니다.
노웨스트사립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김아름 씨는 시드니한인회 운영위원, 한인유권자특별위원회 위원,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임원, 장관급자문위원회 한인 위원 등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차세대가 달린다’에 대한 기성세대와 차세대 독자들의 많은 격려와 성원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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