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와 같은 백인 주류의 사회에서 사람을 구분하는 큰 기준 중 하나는 피부색, 즉 백인인지 여부다.
백인이 아닌 사람은 유색인종이라는 이름으로 묶고 법으로 보호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정책들도 만들었다.
역설적이지만 정말 차별이 없다면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차별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차별만을 탓할수는 없다.
‘백인은 차별하고 유색인종은 차별 당한다’의 논리는 맞지 않는다.
차별은 누구에게 무엇인가의 기득권이 있다면 인종을 떠나 어디서나 발생하기 때문이다.

산업혁명과 근대화의 새로운 문명을 주도한 유럽과 미국의 백인중심 문화는 아직까지 백인 사회에 많은 기득권을 제공하고 있다.
자동차, 전화기, 기차, 냉장고 등 상당수 문명의 이기들은 백인사회의 수고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이 이와같은 제품을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해도 이미 백인 사회가 정한 기준(standard) 안에서 움직이는 사례에 해당된다.
즉,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아무리 세계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더라도 백인 사회가 정한 지리적 기준으로 보면, 중국은 한국과 같은 극동지역(Far East)에 있는 나라다.
우리는 이미 정해진 이름의 공간에서 살며 그렇게 불리워지고 있다.

이민자로 기존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로운 사회에 적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 문화, 언어, 인종 등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이 촘촘히 정해놓은 기준의 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호주인이 우리와 반대로 한국에 가서 정착한다면 제대로 한국인 처럼 살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우리가 호주에 적응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려울 것이다.
오랜 시간 단일 민족, 단일 언어, 단일 문화권에 있던 한국에서는 더 큰 차별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민자들은 이러한 이유로 일반적으로 백인과 같은 일을 해도 같은 돈을 벌어도 더 힘들고 어렵게 버는 듯하다.
한국에서 방문한 많은 분들의 질문 중 하나는 ‘대체 호주 사람들은 뭐 해먹고 사는가’이다.
밤낮으로 일하는 이민자들과는 달리 별 생각없이 쉽게 즐기며 사는 것 같은데 삶속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닌가 한다.
하지만 주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실제로 많은 백인들은 시간과 노동이 소요되는 소매 업종과 노동 집약 사업에서 발을 빼고 있다.
물론 이민자에 대한 경쟁력 저하 등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민자들은 주로 돈을 쓸수 있는 백인 고객들의 식사와 용역을 싼 값에 제공하여주는 힘은 두 배들지만 경쟁으로 돈은 두배 적게 버는 그런 업종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담이지만 호주 정부는 이민자가 호주의 물가 안정 정책에 얼마나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호주의 모든 소매업이 모두 백인들로만 움직인다면 호주인의 점심값 10달러 가지고는 매일 똑같은 햄버거만 먹을 수 있지 지금과 같은 다양한 음식을 경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호주 주류 사회의 백인들과 만나며 느끼는 점 하나는 물론 나름대로 어렵고 힘든 부분은 있겠지만 그래도 쉽게 보이는데, 급여가 상당히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리에서 유색인종을 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반대로 이민자들의 경우 영어를 잘하는 2세라하더라도 백인과 동일한 직급, 직위를 얻기 위해 그들 보다 높은 점수나 자격이 요구된다.

이민자는 백인이라면 학사학위가 필요한 자리에 석사로 응시하고 고졸이 필요한 위치에 대졸로서 가야하는 최소 하나씩은 접고 들어가야하는 학력 인플레, 자격 인플레의 상황을 더 겪고 있다.
좀 치사하기는 하지만 호주도 사람사는 사회이고 법적으로 완전한 평등을 보장한다고 하여도 사람의 일을 고용 평등법과 같은 문서로 해결 할 수는 없는 한, 이해하고 넘어가야하지 않을까 한다.

누구든지 가진 기득권은 쉽게 내어 주지 않는다.
오죽하면 20세기 초반 혁명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려 했을까. 호주와 한국의 현실에서 비즈니스 먹이 사슬의 위험성과 압력은 항상 아래로 전달되는 동시에 증가된다.
사업자에게는 노동과 스트레스의 증가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이민자인 한인들은 아직까지 이 먹이사슬의 낮은 곳에서 위에서 흘려보내는 모든 부담을 떠 안고 사업체를 운영하기에 기득권을 가진 호주인들 보다는 더 힘들게 삶이 느껴질수 있다.

비즈니스의 기득권은 이 먹이사슬을 거슬러 올라가며 시간이 흐르면서 얻어질 수 있다.
소매업에서 도매로 또 수출입이나 생산 제조업으로 발전하고 세입자에서 주인으로 부동산 시장으로 진출할 때 시간은 기득권을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생산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한 호주의 울워스, 콜스, 하비노만, 굿가이, 웨스트필드, 자동차 딜러 등은 구조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받고 움직이는 철저한 기득권 유통사업을 하고 있다.
안정된 유통의 길목에서 사업을 하기에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큰소리 치며 장사를 하고 있다.
부의 이동을 고착화하며 새로운 세력의 접근을 차단하기에 용이한 폐쇄적 구도다.
외국자본 유입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호주 나름대로의 보호 수단이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민자들도 호주인이다.
호주의 유통 회사들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같이 이제는 이민자들도 호주가 가진 큰 그림의 기득권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하지 않을까?
최성호 유지회계 회계사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