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의 한국인들은 해외거주 한인(재외국민과 재외동포)들의 한국 정치상황에 관한 언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사람의 의미없는 메아리 또는 떠난 사람의 불필요한 간섭 정도로 생각한다고나 할까. 이러한 국민적 감정을 이해하기에 사실 그동안 신문기고를 하며 한국의 정책에 대해서는 언급을 했지만 한국의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일 한국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한국 정치의 현실을 보며 한번쯤 호주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의 정치는 호주에 비해 상당히 극단적이다.
아직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상황 때문인지 아니면 전쟁과 투쟁으로 얼룩진 정치사적인 이유인지, 좌파는 빨갱이로 우파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전혀 쿨하지 않은 수구꼴통보수라는 양단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좌파와 우파의 갈등에 더하여 지난 4월 총선 이후 벌어지고 있는 통합진보당 내의 갈등은 좌파가 그렇게도 경멸하고 갈아 치워야 한다고 주장한 우파의 현실이 오히려 깨끗해 보이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일 새롭게 폭로되고 있다.
한국적 좌파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이유는 좌파의 존재 목적이 진정 그들을 필요로 하는 소외되고 어려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정치적인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기회가 그동안 한국의 좌파가 떨쳐 버리지 못한 정치적 부담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좋은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논리로 좌파와 우파를 해석한다면 두 이데올로기(이념)의 공존은 좀 어렵다.
적이기에 승리의 대상이지 대화의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논리로 접근한다면 ‘모든 국민이 잘 사는 나라’라는 공동의 목적 달성을 위해 우리는 좌파와 우파 모두의 이념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와 사 모두가 필요한 것과 같이 말이다.
한국은 점점 잘 사는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소득이 오르고 소비는 풍족해지는, 또 무엇보다 개인의 의견과 의사가 존중되는 선진국형 국가의 모습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정치적 논리와 이념이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나라로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호주의 좌파 정권인 노동당 정부의 가장 큰 업적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Medicare)과 전국민 의무연금(Super Guarantee) 제도의 도입이다.
의료와 노후보장은 호주국민이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한다는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적 정책들이었다.
특히 국민에게 기본권을 보장하며 이룬 80년대 이후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호주의 좌파 정권으로 하여금 경제성장과 소외계층 혹은 노동자의 복지가 반드시 반비례 하지만은 않는다라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믿게 하였다.
국민 의료보험을 시장논리로만 접근한 미국보다 호주는 높은 경제성장과 국민 복지를 함께 이뤄냈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적 상황이 다른 두 나라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미국보다 이념적으로 조금 더 왼쪽에 위치한 호주가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면, 그동안 호주 좌파 정권이 이룬 성공을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조건적인 복지를 추구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최저임금을 올리고 현금을 국민에게 나눠준다 해도 실패한 경제 정책으로 인플레가 생기고 일자리가 없어진다면 복지는 혜택이 아닌 무의미한 덫이 되어 버린다.
현 길라드 정부가 돈 주고 욕먹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정책의 부재와 정권 연장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적 무리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안정된 경제와 일자리를 원한다.
검은 고양이든지 흰 고양이든지 쥐만 잡을 수 있는 고양이를 원하고 있다는 말이다.
‘좌파’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그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가 세계적으로 팔리고 있는 ‘체 게바라’이다.
쿠바 사람들은 그를 이름인 ‘어네스토’ 대신 ‘체’라고 불렀다.
체는 아르헨티나에서만 쓰이는 스페인어로 친한 친구를 부를 때 쓰는 애칭이라고 한다.
아르헨티나 출신 게바라가 그 단어를 자주 썼기에 그를 그렇게 불렀다고 하지만 쿠바인들이 그 의미를 몰랐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일반 대중은 이미 실패로 검증된 정치 논리를 떠나 동의할 수 있는 이념과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한국 좌파의 현실을 보면서 국회의원이 목적이 아닌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를 찾는 일은 너무 큰 꿈으로 멀게만 느껴진다.
최성호 (유지회계 회계사) s.choi@ugac.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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