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우리 가족에겐 제2의 고향”이 세 아이들을 처음 본 것은 토요일마다 열리는 한글학교에서였다.
이 아이들이 서로 형제라고 누가 말하기 전까지 나는 전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제각각 성격이 다르고 생김새도 달랐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장 자주 본 아이는 3형제 중 가운데인 ‘형준’이었다.
형준이는 말수가 적고 무척 얌전한 아이였다.
같은 반 아이들이 서로 장난치고 떠들고 소리지를 때 형준이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나는 그런 형준이에게 관심이 가고 이끌렸다.
아빠 팀 오랄리(Timothy O'Reilly)는 아이들과 같은 학교 성인반에서 한글을 배운다.
아이들의 이름을 한글로 쓰는 것은 물론이고 나를 보고 먼저 “안녕하세요?”하고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했다.
음식점에서 주문을 하거나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는 것 정도는 한국어로 문제 없다고 말한다.
첫째 아들 규환이가 이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규환이를 잘 맞아들이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엄마 케이트(Kate)는 “나도 한국어를 배우지만 팀이 나보다 한국어 구사를 더 잘해요. 기초 수준인 나의 한국어 실력을 좀 늘리려고 일부러 캠시나 스트라스필드 한국 식품점에 가면 한국어로 대화하는데 한인들이 ‘어떻게 당신이 한국말을 하느냐’며 눈이 동그래진다”며 웃었다.
엄마는 “한국에 갔을 때 사람들하고 한국어로 의사소통 하는 수준까지 됐으면 좋겠는데 실력은 참 천천히 는다”고 말했다.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세 아들을 위해 배움의 뜻을 세운 부부의 노력이 아름다워 보였다.
아빠는 한국어로 중계되는 축구나 야구 경기를 시청하는 것을 좋아하며 비교적 많은 부분을 알아듣는다.
또한 곧 다가올 시드니한국문화학교 축제에서 ‘보리밭’을 한국어로 부를 예정이다.
허스톤파크(Hurlstone Park)에 소재한 규환이네를 방문했다.
고만고만한 3명의 사내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엄마에게 벅차 보인다.
돌아서면 어지른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것 같다.
현관문을 열고 미리 준비한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과자 봉지를 내밀자 가장 먼저 막내 ‘영훈’이가 반응한다.
언제 봤다고 나에게 다가와 척 안기며 조그만 손으로 내 등을 다독거린다.
엄마는 “우리 영훈이는 정말 활달하고 사람들을 좋아해요”라고 말한다.
쑥스러움이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서 있는 두 형들과는 달리 영훈이는 입양되던 날 사진들, 학교에서 그린 그림, 한국에서 사 온 용의 액자 등을 계속해서 가져와 보여주며 설명한다.
아빠는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부터 각자가 너무나 뚜렷한 개성을 보였다고 말한다.
장남인 규환(Liam)이는 올해 11살로 예술과 운동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편으로 궁금한 것을 알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형준(Joe)이는 올해 8살로 예민한 성격을 가졌지만 테니스, 크리켓, 축구 등 운동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무엇을 만들고 고치는 것에 관심이 많아 예를 들면 수리공이 집에 오면 옆에 딱 붙어 그가 하는 일을 매우 주의 깊게 본다고 한다.
막내 5살 난 영훈(Henry)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하루 종일 싱글벙글 거리는 아이이다.
사교성이 뛰어나고 음악을 좋아하며 학교에서 합창단 활동도 한다.
영훈이를 보니 왠지 ‘행복한 부처’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는 “규환이를 데리러 갔을 때 한국은 매우 무더운 7월이었고 태풍이 얼마나 몰아치던지 호텔 창문이 휙 날라가 버렸어요. 반대로 형준이는 추운 겨울인 2월에 규환이랑 한국에서 데려왔어요. 막내 영훈이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도착했으니 두 형들과 우리 가족에게 큰 크리스마스 선물인 셈이었죠”라고 회상했다.
이 아이들이 서로 친해질 수 있도록 목욕도 같이 시키고 음식도 같이 나누고 한 방에서 같이 재우고 항상 꼭 껴안아줬다.
물론 입양하는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아들 셋을 얻고 엄마는 뒷바라지는 힘들지만 마음은 행복하다고 한다.
케이트의 가족사랑법은 뭐든지 가족이 함께 움직이며 추억을 만드는 것.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금방 가버리쟎아요? 아이들과 뭐든지 함께 하고 싶어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누고 여행가고 먹고 마시고 사랑을 주고…”라고 말했다.
팀은 연방재향군인부(Federal Government in the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에서 근무하고 케이트는 암협회 같은 건강관련단체와 정부를 위해 리서치 일을 한다.
팀은 “시드니가 우리의 고향이라면 한국은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한글과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한국문화에 낯설지 않도록 해주고 싶어서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자신들의 뿌리를 놓지 않게 해주고 싶어서이다.
따라서 아빠 마음으로는 한국에 2-3년에 한번씩은 가고 싶고 아이들이 엄청나게 좋아하는 롯데월드도 데리고 가고 싶다.
팀의 가족과 작별인사를 하고 뒤돌아나오면서,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운명적으로 이 가정으로 모여 평생 서로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든든한 나무가 되어 줄 것이라는 생각에 흐뭇했다.
이은형 기자 catherine@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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