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서너 명씩 아무렇게나 모여 앉아 아이들은 무언가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
무슨 재미난 일이라도 있나 싶어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아이의 손에는 어김없이 최신형 휴대전화기가 들려있다.
조막만한 손으로 화면을 두드리며 게임을 하는 아이와 구경하는 아이들의 입에선 자연스레 유창한 영어가 튀어나온다.
일요일 아침 교회에서 운영중인 한글학교에 가면 흔히 보게 되는 풍경이다.
부모님이 한국사람이지만 호주에서 나고 자라 영어가 훨씬 편한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눈을 돌려, 한국에서 호주에 온 지 얼마 안 된 아이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얼마 전 굉장히 오랜만에, 우연히 한국 텔레비전 광고를 보게 되었다.
무심코 흘려보다가 문득 참 많은 광고 속에 우리말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상품명이나 회사명이 대부분 외래어로 이루어져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자주 접하는 대중가요나 인터넷 상에도 영어의 비중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한국사회의 영어교육 열풍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매우 높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다가 호주로 온 아이들은 당연히 호주 학교에 적응하기 위해 한글보다는 영어에 더 치중하게 된다.
이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실에서 과연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한글학교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임을 우리 교회 한글학교 교사들 모두 매주마다 체험하고 있다.
비록 제한된 시간에 이루어지는 수업이지만, 서툰 한글로 선생님들께 써내려 간 스승의 날 편지는 교사들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보람과 행복을 안겨주었던 일이 기억난다.
그렇다면, 한글은 얼마나 소중한 것일까?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한글이 매우 소중한 우리 고유의 언어이며 반드시 지켜야 할 유산임을 알고 있다.
이유는 셀 수 없이 다양할 것이다.
필자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아름다움과 행복에 관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한글로 만들어진 수많은 아름다운 시와 노래, 문학 작품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아름다운 예술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뿐 온전한 아름다움 자체를 완벽하게 번역할 수는 없다.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 그 피를 물려받은 우리의 아이들이 함께 이 아름다움을 누렸으면 한다.
한글에 대한 무관심과 영어에 대한 맹신이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한글을 점점 더 좁은 곳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지 않아 부모와 동일한 문화적 체험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다.
학문적 필요에 의해 강요되는 한글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문화로써 한글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그 속에 아름답고 행복한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이상우(시드니주안교회 한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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