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두 시인의 모습. 사진 오른쪽이 이시영 시인, 왼쪽이 신용목 시인)“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는 것” “글의 영향력은 깊고 영원하다” 본 기자가 처음 이시영, 신용목 시인의 사진을 보도자료를 통해 봤을 때 느낌은 ‘순수’였다.
30대 후반의 신용목 시인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세상의 풍파를 겪을 만큼 겪은 60대 남성에게서 ‘소년 같은 순수함’을 느낀다는 것은 그리 흔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사진에서 풍기는 느낌과 실제 만나 대화했을 때의 느낌은 다를 수도 있기에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지난 8월 29일 두 시인을 만났다.
이태백은 술 한 동이에 시 한 수를 썼다고 전한다.
역시 시와 술은 불가분의 관계일까? 어제 도착했다고 밝힌 두 시인은 여독도 풀리기 전부터 ‘한 잔’ 했다며 피곤한 기색을 내비쳤다.
주로 현실 문제에 깊숙이 참여하는 작가들을 위주로 초대하는 멜번 작가 페스티벌(Melbourne Writers’ Festival) 참가 차 방호한 이들이기에 문학 이야기 외에도 현 시국에 대한 그들만의 날카로운 비판도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본 기자는 일반 독자로서 궁금해할 만한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질문을, 동석한 김석원 목사는 문학 및 시국에 대한 다소 전문적인 질문을 하기로 역할분담했다.
다음은 두 시인과의 인터뷰 전문.▶ 호주 방문 목적은?“한국문학번역원 주선으로 멜번 작가 페스티벌에 참여차 온 것이다.
작년에도 한호수교 50주년을 맞아 4명의 작가가 방호한 바 있다.
”(이시영 시인, 이하 이)▶멜번 작가 페스티벌이 주로 참여시인 위주로 초대한다던데?“꼭 그렇지는 않다.
멜번대학의 아시아링크라는 문학 전문기관에 니콜라스 로우 박사가 3년 전 호주 문학이 한국문학과 교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와서 성사된 것이다.
로우 박사가 나름대로 조사를 많이 해서 초청하는 것 같다.
그러나 꼭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인사를 위주로 초청하기보다는 황동규, 박나연, 김기택 등 중립 지대 문인들도 초청한 바 있다.
”(이)“작가 페스티벌에서 질문지가 왔는데, 단순한 문학에 대한 질문과 더불어 정치적 사안에 대한 질문이 많이 포함돼 있었다.
”(신용목 시인, 이하 신)정치적인 질문은 다소 예민할 수 있어 편안한 질문으로 돌렸다.
고 이청준 작가가 본인이 시골 출신인 것이 평생 창작에 도움이 됐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두 분 다 시골 출신인데(이 시인은 전남 구례, 신 시인은 경남 거창 출신) 문인으로서 시골출신이라는 점이 도움이 됐는지?


(사진 설명: 옆 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이시영 시인의 모습에서 독재에 저항하다 실형까지 산 그의 전력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도움이 됐다.
이청준 님의 말씀에 공감이 간다.
특히 나는 산업화 전 농촌생활의 경험이 내 문학의 90%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나는 산업화 전 세대를 살았지만 신 시인은 한참 후 세대이니까 다를 것 같은데…”(이)“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어디서 성장하느냐가 문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는 것이다.
나 또한 시골에서 성장하면서 산업화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게 됐다.
” (신) ▶ 글로서 생각, 느낌, 감정을 표현하는 이른바 ‘글쟁이’로서 글이라는 매체가 갖는 한계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이와 관련, 다른 매체를 사용하는 예술가들이 부럽게 느껴진 적은 없었는가?“어떤 장르든 표현의 욕구가 있기 때문에 그 장르를 이용하는 것이다.
어떤 매체든 정확하게 내 욕구 표현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딱히 다른 장르를 부러워해 본 적은 없다.
다만 요즘은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시대이고 젊은이들은 신문 사설도 안 읽는 시대이다 보니 약간 아쉬운 면이 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말이 많다 보니까 그만큼 한계도 많이 느끼는 것 아닌가 싶다.
어떨때는 아무 말 없이 그림으로 보여주는 무언의 형식이 더 많은 것을 얘기하기도 하는 것 같다.
” (신)“글은 직관으로 얻어지는 순간적인 느낌을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순간의 예술이다.
글쎄…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조금 부럽기도 하다.
사진도 순간 포착의 예술 아닌가? 가령 2차 대전 직후 파리에서 한 소년이 포도주를 사 들고 힘든 표정으로 골목길로 들어가는 르포르타주 작품이 있다.
이 사진 한 장에 역사가 담겨있고 소설 한 편이 담겨있다.
이 사진 한 장은 ‘전후’, ‘가난’, ‘골목길’, ‘저녁’, ‘아버지 심부름’ 등 많은 것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순간 포착을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이런 순간 포착을 참 잘하는 분이 바로 고은 시인이다.
”(이)이 시인은 ‘시인은 어느 정도 타고난다’, ‘학습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순간적인 느낌을 포착해서 표현해 내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여러 번 비쳤다.
▶ 현재 출판업계가 어렵다.
우리나라는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너무 센 나라이다.
글이라는 매체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프로그램 개발 노력을 하고 있는지?
“다른 매체의 발달로 글이라는 매체의 영향력이 예전만은 못하지만 전통적으로 문자를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여전히 파괴력이 있는 것 같다.
다른 매체를 이용해서 홍보하기 보다는 글 자체의 힘을 믿고 북콘서트, 독자와의 만남과 같은 형식을 통해 독자와의 접촉을 늘리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홍보하고 있다.
글의 영향력은 깊고 영원하다.
” (이)“한국작가회의에서 시장적인 접근하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는다.
이는 출판사에서 해야 할 일이다.
한국작가회의는 대표적인 작가 단체로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신)

(사진 설명: 곱상한 외모에 가냘픈 목소리의 신 시인이었지만 말 속에는 그만의 강단과 철학이 숨어 있었다.
)▶ 신 시인의 시는 진지하고 무겁다.
요즘엔 가볍고 감각적이고 피상적인 시가 많다.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입장에서 요즘의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
“전통적인 방식은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방식이다.
새로움에 대한 것도 예술이 촉각을 세워야 하지만 근본적이고 영원적인 것도 예술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근본에 대한 고민을 예술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단지 이에 접근하는 방법론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신)▶ 그럼 현재의 이런 추세에 대해 우려하고 있지는 않은지?“아니다.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가령, 산이 있으면 등산로, 계곡이 있는데, 요즘의 추세는 입산금지구역을 없애버린 측면이 있다.
다만 그렇게 해서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안타깝게도 대다수 젊은 시인들이 산에 도달하지 못한다.
”(신)현재 한류 열풍과 관련해 양질의 한국 문화 수출의 필요성에 대해 질문했다.
▶ 80년대 홍콩이 지금의 한류의 위치를 점했지만 일부 스타에 의존해 어느새 사그라졌다.
지금 한류도 그런 측면이 있다.
영어의 힘에서 셰익스피어를 빼놓을 수 없듯이 양질의 한국문화 전파라는 측면에서 문인들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노벨 문학상이 없는 이유 중 하나도 번역의 문제가 아닌가?
“동감한다.
한국 문학의 번역은 일본과 비교해 볼 때 너무 안 돼 있다.
일본은 엄청난 번역량을 자랑한다.
이런 여러가지 요인에 힘입어 오엔겐자부로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배출한 바 있다.
또한 유럽과 미국에 일본학 자료가 어마어마하게 축적돼 있다.
이에 비해 한국학은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런 작업들은 하루 이틀에 해결될 사항은 아니다.
노벨문학상에 대해서는… 언어장벽의 문제도 있겠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고 본다.
가령 토지의 고 박경리 작가라던가 몇 차례 후보에 오른 고은 시인의 경우 수상 자격이 충분하지만, 국가의 위력, 지원, 유럽의 텃세 등으로 수상하지 못했다.
물론 여기에는 번역상의 문제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한국어의 어떠한 특성 때문에 시인으로서 행복함을 느낀 적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점인지?“(서슴없이) 물론 있다.
10살 때까지의 환경이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라던가 이런 작품을 보면 우리 말의 천부적인 익살스러움, 가락이 잘 표현돼 있다.
이런 것들이 바로 한국어로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배우는 슬픈 일을 당했을 때에도 이때의 감정을 나중에 연기에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시인으로서 의식적으로 주변 상황을 글로 승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지?
“생활 속에 늘 글이 있다.
어떤 중요한 순간을 포착해 며칠 혹은 몇 달 동안 머릿속에 담았다가 나오기도 한다.
슬픈 일을 당했을 때도 이걸 글로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전에 교사로 재직 중 수업 들어가려는데 시상이 떠올랐다.
지금 수업에 들어가 버리면 떠오른 시상을 잊어버릴까 봐 교실에 안 들어간 적도 있다.
”(이)“ 글 쓰는 사람은 어떤 순간 속에 자기를 열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신)▶ 신 시인은 ‘모든 문학은 정치적이다’는 말을 했는데. 요즘 특별히 정치적인 상황을 보면서 시적 혹은 문학적 영감을 받는지? 신 시인에게 한 질문이었지만 이 부분에 대해 할 말이 많았던 이 시인이 대답했다.
“내가 본 정치가, 현실이 시적 소재다.
예를 들어 내가 요즘 낸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가 19금 도서가 됐다.
‘인간이 인간을 저렇게 할 수 있는가’라는 느낌으로 쓴 시인데 19금 도서가 됐다니 어처구니없다.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서정시도 있겠지만 이런 강력한 자극이 시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 (이)▶ (이 시인에게) 아무래도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할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지금은 안 잡아가지만 박정희 시대는 많이 잡아갔다.
나와 황석영 작가를 포함해 실형을 산 문인들이 많다.
이때는 시 한 구절이 문제가 되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문학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강력했기 때문이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자유롭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패러디한 ‘엠비 스타일도’ 나오지 않았나.”(이)▶ 지금은 정치보다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시대라고 본다.
문학적 자유라는 측면에서 전에 비해 요즘 얼마나 진보됐다고 보나? 문학도 경제 권력이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가?
“최근 CJ가 문화사업을 한다는 광고를 하지만 사실 문화사업이 아니다.
영화 배급을 통해 시장을 확대하고 있을 뿐이다.
예술의 영역에서 공유하고 있던 것들을 오히려 자본이 가져가 버렸다는 생각에 소외감도 느낀다.
이 시인이 예전에 독재와 투쟁을 했다면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경제 권력, 자본)과의 싸움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젊은이들이 각성하고 있다.
용산참사와 같은 사건을 통해 공권력이 직접적으로 자본의 경찰 노릇을 하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됐기 때문이다.
소외받고 버림받고 다친 사람들은 인간의 향기를 많이 가지고 있다.
나는 문학을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 (신)▶ 지금의 시대정신과 바람직한 대통령상은 무엇이라고 보는가?“대통령 한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런 현상은)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시작됐다.
어떤 인물이 될지는 모르지만 소외된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귀가 열린 사람, 다시 말해 불통하지 않고 소통하는 민주적인 지도자였으면 좋겠다.
” (이)“가장 적합한 인물은 한국작가회의 이사장님같은 분이 아닌가 싶다(웃음). 가장 적합한 분은 안 나오거나 낙선하니까, 이제는 최악인 사람만 아니었음 좋겠다.
몇 번의 선거를 해 보니 투표라는 것이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 최악인 사람을 피해 가기 위한 과정인 것 같다.
” (신)정치 얘기에 분위기가 조금 무거워지는 것 같아 조금 가벼운 질문으로 돌렸다▶ 일반인이 보기에 시인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적은 없었는지?
“나의 경우 대학교수도 겸하고 있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 (이)“그동안 와이프 등쳐먹고(웃음) 살았다.
지금은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겸하고 있다.
소설가들은 전업을 하지 않으면 소설을 써내기가 쉽지 않지만 시인은 조금 다르다.
전업 소설가란 말은 있어도 전업 시인이라는 말은 없다.
보통 시인들은 다른 직업을 겸하는 것 같다.
”(신)▶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호주 문학 애호가에게 한마디.“이국에 와서 한국어를 버리지 않고 우리말을 지키고 갈고 닦는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신 시인에게….(웃음)” (이)“‘시인이나 소설가에게 조국은 영토가 아니라 모국어다’라는 말이 있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말의 세계에서 가장 첨단의 언어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말의 끝머리까지 가는 느낌이 든다.
그게 삶의 끝머리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기에 내가 시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로부터 내가 많은 것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 (신)“괴테도 그런 말을 했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가 시인을 쓴다’”(이)▶ 인터넷으로 인해 한국어 오염 현상이 심하다.
시인으로서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공지영 작가가 트위터에 ㅠㅠ(이 작가는 ‘유유’라고 발음했다)라는 표시를 한 것을 보고 야유하는 것인가 한참 생각했다(웃음). 나는 인터넷 용어를 그냥 익살로 본다.
이것이 문화 전체에 영향을 미치거나 한국어를 크게 왜곡시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령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한국 가요에서 하나의 형식일 뿐이지 전통을 깎아내리고 그런 것은 아니지 않나.” (이)“언어는 사회적 산물인데 그것을 억지로 단속하면 ‘파쇼’가 된다.
이러한 은어 같은 것은 세대 간의 현상으로 본다.
우리가 어려서 썼던 말도 어른들이 우려했지만 지금 사라지고 없지 않나. 인터넷 용어도 그런 현상의 일부라고 본다.
” (신)▶ 에필로그평소 시를 많이 읽은 편이 아니어서 상당히 고민을 하고 두 시인을 만났다.
그러나 두 시인은 동네 형, 이웃집 아저씨처럼 따뜻하고 편안하게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인터뷰 후 본 행사인 낭독회에서 기자로서가 아닌 문학 애호가로서 “본인이 써 놓고도 낯이 뜨거울 정도로 부끄러운 시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봤다.
두 시인 모두 출판한 시보다 찢어 없앤 시가 훨씬 많다고 답했다.
두 시인의 이런 솔직한 답변에 아직도 컴퓨터 하드에 저장해 놓고 버리지도 못하면서 누구도 보여주지 못하는 본 기자의 자작시를 생각하며 약간의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그들에게서 나오는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인 에너지가 독자들에게도 전달되기 바란다.
서기운 기자freedom@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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