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외동포재단이 지난해 주최한 ‘제14회 재외동포문학상’ 공모에서 호주 한인 수필가 장석재 씨의 ‘둥근달 속의 캥거루’가 수필 부문 대상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에 장석재 수필가의 대상 작품과 수상소감 및 심사위원 심사평을 게재합니다.
많은 애독과 성원 바랍니다 - 편집자 주-캥거루들이 관람객들과 함께 어울려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아이들이 뒤를따라 다닌다.
엄마들이 어린 캥거루와 자신의 아이들을 사진틀 속으로 모으고 있다.
호주 원주민 말로‘나는 몰라요’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캥거루. 구석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캥거루들의 은신처가 보인다.
그 곳엔 비교적 연륜이 쌓여 보이는 어미 캥거루들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떡 버티고 앉아 있다.
한 어미 캥거루 주머니에는 조그마한, 내 주먹덩이 만한 새끼 캥거루의 머리통이 보인다.
사람들이 뜸해지니 새끼가 어미 주머니 속에서 머리를 쏘옥 내밀고 이리 저리 둘러본다.
두리번거리던 새끼는 살짝 밖으로 나온다.
조금 가까이 가려고 한발을 뛰는 순간, 눈 깜짝할 사이 다시 어미 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간다.
아마도 새끼들은 저 어미의 주머니 속에 들어가면 평안해 지나보다.
아픈 새끼도 어미의 주머니 속에 들어가 어미 배에 새끼 배만 맞대면 모든 아픔이 치료된다는 캥거루 요법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얼마 전, 이곳 시드니에서 쌍둥이를 조산한‘케이크 오크’라는 이름의 산모가 두 아기 중 한 명이 숨을 쉬지 않자 자신의 알몸위에 올려놓고 서로의 배꼽을 맞춘 후, 심장 소리를 들려주는 캥거루 요법을 사용해 두 시간 만에 아이를 기적적으로 살려냈다는 신문기사의‘캥거루 요법’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십 여분 걸어 안으로 들어서니 야생 캥거루들이 모여 사는 넓고 넓은 야산이다.
사람이 옆에 다가서도 별 반응 없이 저들끼리 어울려 지낸다.
복싱 선수 같은 포즈로 서로 주먹질을 하기도 한다.
큰 캥거루의 암, 수는 쉽게 구분이 간다.
수컷은 생식기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암컷은 수컷의 생식기 부위에 커다란 주머니가 달려있다.
어미 주위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던 새끼들 중 한마리가 앞의 두발을 먼저 어미 캥거루 주머니에 넣더니 순식간에 주머니 속으로 사라진다.
한참 후 살며시 나온다.
잠시 후 또 다른 새끼도 두발을 주머니에 먼저 넣고 캥거루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
같은 새끼들인지 모르지만 ……. 날이 저물어 오기에 돌아오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안의 손님은 반도 안찼다.
나는 운전석 바로 뒤에 앉았다.
버스 출발 십 여분이 지났지만 아직도 캥거루 랜드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두워지는 모퉁이를 돌고 있는 순간, 버스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내 머리는 운전석 뒷부분을 받았다.
머리가 얼얼했다.
뒤의 승객 중에도 짧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정신 차리고 앞을 보니 차에 무언가 받혔다.
육중한 체격의 운전기사가 안전벨트를 풀고 내려가며 핸드폰으로 통화를 한다.
버스의 헤드라이트는 그대로 켜져 있다.
자세히 보니 버스에 받혀 나가 떨어져 있는 것은 커다란 캥거루이다.
캥거루가 어두워지는 순간 밝은 헤드라이트를 보고 달려들었는지 아니면 길을 건너는 캥거루를 운전기사가 발견 못하고 받아쳤는지는 알 수 없다.
운전기사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커다란 캥거루를 질 질 끌고 길가 숲으로 옮겨 놓는다.
아스팔트 위에는 검붉은 캥거루의 피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돌아온 기사는 다시 핸드폰을 통해 상황을 설명한다.
설명 중에 베이비 캥거루가 있는 것 같다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갑자기 궁금증이 발동되어 무작정 내렸다.
버스 기사는 두 손을 위로 들었다 놓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다음 버스는 한 시간 후에 온다며 그냥 출발한다.
나는 캥거루가 있는 숲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허~크(hear~k), 허~크(hear~k) 아주 낮은 소리가 들린다.
무슨 소린가? 어디서? 귀를 기울이니 저 소리는 쓰러져 있는 캥거루에서 나오는 소리다.
신음 소리같이 들려온다.
한 발 더 다가서려다 순간 멈추고 쪼그려 앉았다.
움직임이 없던 캥거루가 조금 움찔한다.
하늘을 향한 두 다리 사이의 캥거루 주머니에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보인다.
허~크, 허~크 소리가 가깝게 들린다.
새끼 캥거루가 주먹만 한 머리를 쏘옥 내밀고 여기 저기 살펴보며 허~크, 허~크 계속 울음소리를 낸다.
정면의 숲속이 살며시 움직인다.
곧이어 큰 캥거루가 나타났다.
새끼 캥거루의 소리를 들었는가? 아니면 냄새를 맡았는가? 죽어 자빠져있는 캥거루 옆을 스쳐 지난다.
순간, 누워있는 캥거루 주머니속의 새끼가 지나치는 큰 캥거루 주머니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번개같이 사라졌다.
그리곤 큰 캥거루도 유유히 사라졌다.
어미 캥거루! 자신의 새끼가 아님에도 거둬가는 저 어미 캥거루가 신비로워 보인다.
조금 지나니 동물 보호 (RSPCA) 구급차가 도착하여 섬광을 터트리며 세장의 사진을 찍고는 누워있는 캥거루를 싣고 갔다.
지난 구정 때, 나는 시드니 공항에 나가 출국 수속을 마치고 서울 가는 비행기가 출발하는 탑승구에서 앞창을 통하여 시드니의 상공을 바라보며 잠깐 앉아 있었다.
그 때,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혼자서 놀고 있기에 귀여워서 말을 걸었다.
그 아이의 외모는 분명 한국 아이인데 내 말을 못 알아듣고 나를 쳐다 만 보고 있었다.
조금 후 니콜라스 ! 니콜라스 ! 부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한국 아이를 부르는 것이었다.
아이를 부른 사람은 호주 여자였다.
“ 서울 가십니까? 서울은 지금 매우 춥습니다.
눈도 많이 왔답니다.
”서울의 기후를 알려주며 말을 붙였더니 그 호주 여자는 한국의 추운 날씨에 맞추어 준비를 다 했다고 자신의 가방을 열어 어린 아이들의 겨울옷을 보여 주며 활짝 웃었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내 말을 못 알아들은 아이는 지금 세 살인데 두 해 전에 입양왔다고 했다.
아이의 한국 이름은 욱진이라고 알려 주면서 “욱~진아! 욱~진아!” 라고 불렀다.
호주 여자가 웃으면서 어색하게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 순간, 한국 사람인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지금 서울에는 왜 가느냐고 물었더니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 주었다.
아주 어린 한국 여자 아이의 사진이었다.
여자는 옆에 서있는 자기 남편을 소개하면서 자기네 부부는 욱진이가 혼자 지내는 것 보다는 동생과 함께 자라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되어 여동생을 입양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입양할 여자 아이는 현재 8개월이 되었으며 한국의 이름은 경자라고 했다.
욱진이와 양부모, 그리고 나는 서울 가는 기내에서도 서로의 자리를 오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귀국 후에도 서로 연락하기로 하고 전화번호와 집 주소를 교환했다.
서울을 다녀온 후, 욱진이네 가족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욱진이, 그리고 양부모는 나와 두 번째의 만남 이었으나 경자와는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나의 아내와 아이들은 모두 처음 만나는 것 이었지만 어색함이 없었다.
특별히 세 살짜리 욱진이는 우리 아이들과 금방 친해져 잘 놀았다.
오후 세시쯤 와서는 잠깐 차만 마시고 가겠노라 했었는데 이런 저런 대화 속에 한국식으로 마련된 저녁을 먹고 밤 9시가 넘어서야 돌아갔다.
욱진이의 양부모는 이곳의 평범한 부부인데 자신들의 아이가 없기 때문이긴 하지만, 한국의 아이를 둘씩이나 입양하여 키우는, 참으로 우리네 사고방식과는 다른 사람들 임을 느끼게 되었다.
마침 그 부부가 우리 부부보다는 나이가 아래이므로 우리는 형님, 언니가 되기로 하고 우리 아이들은 엉클 그리고 안티로 부르기로 했다.
물론 욱진이와 경자도 우리를 큰아버지, 큰엄마라고 부르도록 했다.
그날 밤, 나는 밤새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루었었다.
욱진이와 경자는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 가운데서 이곳 시드니의 좋은 양부모를 만난 아이들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두 아이 모두 바다가 가까운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생모들은 겨우 20대 초반이라고 하니, 나의 마음은 한없이 슬펐다.
욱진이와 경자의 얼굴이 양부모와 전혀 다른데도 천진난만하게 그들을 정말 엄마 아빠로 잘 따르는 것을 볼 때 고맙고 감사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아려왔다.
욱진이와 경자의 얼굴에 엄마를 찾는 듯 조그마한 머리를 이리 저리 돌리던 새끼 캥거루의 모습이 겹쳐진다.
둥근 달이 가깝게 다가온다.
가깝게 다가오는 시드니의 둥근 달 속에 캥거루가 들어가 있는 것만 같다.
달빛속의 텅 빈 길가에 조금 전 살아졌던 어미 캥거루가 언제 다시 나타났는지 우뚝 서있다.
주머니 속의 새끼 캥거루가 고개를 쏘옥 내밀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욱진이와 경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장석재(2012 재외동포 문학상 수필 대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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