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부모와 호주식 자녀 간의 문화 갈등“어른들도 순수하게 세상과 자녀를 보고 믿어줘야”“자녀와 충분히 대화하고 끝까지 인내해줘야 한다”호주에 이민온 대부분의 한인들은 자녀들의 밝은 장래를 위해 힘든 이민생활을 참고 견딘다.
하지만 낯설고 외로운 해외에서 자녀를 성공적으로 양육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부모와의 갈등이나 부모의 부족한 보살핌으로 자녀가 엇나가면 ‘이민의 꿈’이 무너질 수 있다.
한국식인 부모와 호주식인 자녀와의 갈등은 이민자 가정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교육을 받은 기성세대와 차세대가 같은 지붕 아래서 울고 웃으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한인 부모들은 자녀와 원만하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비결을 지속적인 상호 대화와 이해, 믿고 기다려주는 인내력, 성실하고 모범적인 부모의 생활 등이라고 밝혔다.
▶ 합리적인 아들, 감정적인 아빠 = 한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순수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의 부모들이 ‘빨리빨리 문화’를 앞세워 이성보다 감정을 먼저 드러내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민 25년차로 1남 2녀를 둔 K씨는 “우리는 어떤 문제 발생시 모든 것을 내 위주로 생각하고 우격다짐하려고 하는데, 아이들은 매우 합리적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자녀를 윽박지르고 부담을 주지만, 아이들은 인간 관계가 잘 안되면 다시 점검하고 문제점을 발견해서 수용하려는 자세가 돼 있다”고 비교했다.
그는 “아이들은 남자와 여자에 대한 차별이나 고정관념도 없는 것 같다.
남녀는 동등한 존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성세대가 남존여비 사상이나 성차별 의식이 강하지만 자녀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민 30년차로 3명의 아들을 둔 S씨는 “둘째 아들은 한국인이라면 부담을 갖는다.
한국인들이 인정에 얽매이고 약속 잘 안지키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면서 “우리는 아는 사람끼리 어지간한 것은 이해해주지만 아이들은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 한국식의 결과지향, 호주식의 과정중시 =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경향인 한국식 사고는 느리지만 과정에 충실하고 정정당당하게 성취하려는 호주식과 큰 차이가 있다.
K씨는 “우리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간과정을 무시하려는 경우가 상당히 많지만 아이들은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도 상당히 중요시 한다”고 밝혔다.
그는 “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해 매우 느긋하다.
어떤 일을 시켜놓고 다그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며 “어른들이 흔히 갖는 ‘세상에 안되는 일이 어디있어’ 하는 식의 전투적인 자세에 아이들은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인의 오랜 악습인 ‘잘되면 내 덕, 잘못되면 남 탓’과 인간의 내면보다 외형에 집착하는 버릇도 바꿔야 한다는 주문이 있다.
▶ ‘예스’와 ‘노’에 대한 해석차 = 특히 어떤 질문에 대한 답변인 ‘예스’(yes)와 ‘노’(no)에 대한 인식차가 크다.
무슨 부탁을 할 때 기성세대들은 ‘노’하면 적대감을 표시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호주에서 자란 아이들은 ‘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어른들은 인정에 얽매여 싫더라도 ‘노’라고 대답을 못하고 ‘예스’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싫으면 분명하게 ‘노’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노’라고 하는 상대방의 의사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수용해준다.
반면에 어른들은 ‘예스’를 ‘노’로 해석하거나, ‘노’를 ‘예스’로 해석하는 비뚤어진 사고가 존재한다.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 맘대로 곡해하는 비정상적인 의식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다.
K씨는 “여기서 자란 아이들은 매우 순수하다.
복잡하지 않다.
예스, 노가 분명하다”면서 “어른들도 순수하게 세상과 자녀를 보고 믿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불완전한 한국어 구사, 오해와 불편 = 호주에서 자란 아이들은 한국어 구사가 서투르다.
한국어를 구사하긴 하는데 잘 못하니까 부모와 완전한 의사전달을 못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오해가 발생할 소지도 있다.
이민 24년차로 2남 1녀를 둔 G모씨의 아들 2명은 한국어 구사가 많이 서툴다.
G씨는 “아이들이 부모 앞에서는 한국어로 말하지만 다른 한인들이 있으면 실수할까봐 부끄러워서 영어로만 말한다”면서 “내가 한글로 휴대폰 메시지를 보내도 영어로 답변을 보내온다.
한국어가 서툴러서 오는 불편함이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드라마를 같이 보다가 아이들이 주인공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한국인만이 아는 공통적인 행동이지만 아이들은 문화적 차이로 이해를 못한다”고 전했다.
K씨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었을 때 성의있고 진지하게 답변해주길 원하는데 지나치게 단답형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속깊은 얘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2명의 아들이 외국인 며느리와 결혼한 S씨는 “외국인 며느리에 대해 아내가 반대했다.
아내가 며느리와의 언어 소통 때문에 애를 많이 먹는 것 같다”고 밝혔다.
▶ 창의적인 호주, 암기식의 한국 = 부모들은 “호주 교육과정이 매우 합리적으로 잘 짜여져 있다”면서 창의적이고 전인적인 호주식 교육제도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K씨는 “호주 교육은 자녀들의 능력을 다양하게 평가하고 창의성을 장려한다”며 “사립학교에 의무적인 주말 스포츠 활동도 균형잡힌 성장에 아주 좋은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학생들의 현재보다 미래를 중시하는 교육이다.
기존에 있는 것을 이용해서 새로운 것을 자꾸 찾아가도록 하는데 중점을 둔다”고 밝혔다.
그는 또 “호주는 토론을 중시하는 것 같다.
학교 수업 중에 학생들이 질문을 정말 많이 한다.
질문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찾아낸다”면서도 “한국은 반대다.
암기식이다.
질문을 잘 안한다.
심지어 교수들도 질문을 싫어하는 것 같다”고 비교했다.
S씨도 “호주는 창의성을 매우 중시한다.
대부분의 시험도 단답형이 아닌 논술형”이라고 밝혔다.
S씨는 “고등학교에서도 과제가 주어지면 학생들 스스로 자료를 찾아 과제물을 작성하고 제출한다”며 “사립학교는 럭비, 조정, 군사훈련(cadet) 등을 의무적으로 시킨다.
전인교육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호주에서 한인 자녀들이 학원을 찾는 횟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학원으로 내몰리는 한국과는 차이가 많다.
K씨는 “아시안은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반면, 호주인들은 개인 그룹과외를 많이 시킨다”며 “호주인들은 공부나 스포츠 관련해서 알게 모르게 개인과외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 “결혼, 내 인생은 나의 것” = 호주에선 파티문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성에 눈뜨게 된다.
17세가 되면 부모들의 허락하게 저알코올 음료(soft alcohol)를 마실 수 있고 18세가 되면 공식적으로 음주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맏사위와 둘째 딸의 남자친구가 서양인인 K씨는 “한국에선 부모가 노하면 결혼이 안되는 경향이 강하고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면서도 “호주에선 이성친구를 사귈 경우 부모가 자녀의 시각에서 이성친구를 보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대비시켰다.
K씨는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 보다는 딸의 남자친구란 생각으로 대하니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였다.
딸을 보냈다기 보다는 사위를 데려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딸과 사위가 서로 사귀는 과정을 봐오며 대화를 많이 나누고 결과를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 없었다”면서 “차라리 외국 생활을 모르는 한국인 사위나 며느리 만나는 것이 탐탁치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들도 본인이 좋아하면 외국인 며느리를 수용할 것”이라면서도 “딸 둘은 외국인과 결혼하더라도 막내 아들은 한인과 결혼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 개인적 독립적인 자녀들 의견존중해야 = G씨는 “호주에서 태어난 아들들은 개인적이고 독립성이 강하다.
자기만 편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어디 가자고 아이들을 무조건 강제적으로 끌고갈 수 없다.
미리 의사를 물어보고 설득하며 의견을 존중해줘야 한다.
함께 살지만 서로 의견을 모아서 행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초등학교 땐 부모를 잘 따라다니는데 고등학교 들어가면 안 따라가려고 한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고 놀기에 너무 바쁘다”면서 “7-8학년이 되니까 평일이든 주말이든 저녁을 같이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회나 사찰도 초등학교 때는 잘 따라가는데 7-8학년이 되면 안따라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G씨는 “개인주의가 편한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처리하는 것이다.
먹은 것 설거지 하고 먹고 싶은 것 스스로 차려서 먹는다”고 말했다.
이어 “냉장고에 먹을 음식을 사 넣어 놓으면 반드시 먹어도 되는지 물어보고 먹는다.
우리가 없으면 손도 안된다”며 “상당히 개인적이고 독립적”이라고 밝혔다.
S씨는 “아들에게 며느리를 찾아준다니까 아들이 ‘아버지가 왜 내 아내 걱정을 하느냐’고. 자존심을 상해했다”며 “너무나 독립적이다.
외국인 며느리도 시어머니에게 애교가 없다”고 말했다.
S씨는 “한국에선 결혼한 30대에도 부모에게 의존하지만, 호주인들은 20대가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생활한다”며 “호주 부모들은 가능하면 자식들을 독립시키려고 한다.
부모 집에 얹혀사는 자식에게 임차료를 내라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둘째 아들은 남에게 부담주거나, 도움받는 것은 물론 형제간 서로 의지하는 것도 싫어한다.
자기가 자기 인생을 산다.
상당히 독립적”이라고 전했다.
G씨의 딸은 대학수능시험도 안보고 사회로 뛰어들었다.
G씨는 “대입시험에 응시하도록 설득을 많이 했지만 본인이 싫다고 했다.
딸의 설득에 내가 도리어 넘어갔다.
호주의 많은 사람들이 고등학교 학력만으로 최고경영자로 성공한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의 딸은 결혼관도 독립적이다.
남자친구와 함께 장래 계획을 다 세워놓고 있다.
당연히 자신들의 결혼식을 위한 돈도 벌고 있다.
때이른 독립심은 한인가정에 충격을 주기도 한다.
16-18세 가량의 딸이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부모와 가정불화가 발생해 급기야 딸이 부모를 상대로 경찰서에 접근금지명령(AVO)을 신청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G씨는 “호주에서 16세 이상되면 사실상 함부로 건들지 못하게 돼 있다.
누구를 사귀어 집에 데리고 오더라도 강요하면 개인 사생활 침해가 된다”고 말했다.
▶ “그래도 한민족의 자손이더라” = 호주에서 성장한 자녀들은 한국이나 한인사회에 별로 관심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한국의 정치나 문화가 아닌, 호주의 정치나 문화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가는 경우가 많다.
K씨는 “고등학생 아들에게 우리의 조상에 대해 설명하니까 큰 관심을 가졌다.
마음 한구석에 한국에 대한 뿌리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면서도 “시드니 한인사회엔 별로 관심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S씨는 “아들이 고등학생 때 한국인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라고 하니까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면서도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한국인 학생들과 친하게 지낸다.
나이가 들면서 핏줄이 나오는 것 같더라. 대학교 강의실에서 같은 인종끼리 무리지어 앉는다고 한다”고 전했다.
S씨는 “아이들에게 한국인 정체성 유지시키기 위해 한국 역사 교과서로 한글을 가르쳤다”며 “큰 아들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더라. 한국 역사 교과서로 한글 가르치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G씨는 “아들은 한국에 대한 정체성이나 자부심이 10학년까진 없었다.
11학년부터 관심을 갖더니 대학생이 되면서 한국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들이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한인 여자 친구를 사귀면 더 좋겠다’고 말한다.
민족 정체성에 대한 회귀본능이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대학생 맏아들은 외국인 친구들을 한국 식당에 꼭 데리고 간다.
또 12학년 때 학교 파티에 갈 때 반드시 한국 과자를 사가지고 갔다.
자신이 한국인임을 인정한다.
한국인 피가 흐른다는 것을 자신있게 말하더라”고 말했다.
그의 맏아들은 9학년 때 한국의 정부기관이 주최하는 약 2주일 간의 연수프로그램에 참가하고 나서 친한파가 됐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의 나라가 해외에 있는 차세대들에게 신경쓴다는데 자부심 갖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 대화와 인내가 답이다 = 기성세대들의 사고방식은 한국식으로 고정된지 오래된 반면, 자녀세대들은 계속해서 호주식을 배워나간다.
이로인해 양자간 사고방식의 차이는 갈수록 벌어진다.
결국 자녀들과 원만한 관계를 만들어가야할 책임은 부모들의 과제로 남는다.
K씨는 “부모세대도 자녀를 이해하기 위해 주류사회에 적극 동참하고 배우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모가 주류사회에 많이 참여해야만 자녀들과 차이를 좁힐 수 있다”며 “자녀를 키울 경우 학교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
학교에 보내놓으면 다가 아니고, 학교 행사나 티 타임 하면 적극 참여하고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대화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K씨는 “교민 가정의 가장 큰 문제는 세대간 대화단절인 것 같다.
이로 인한 신뢰 상실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저도 아이들과 갈등은 있었지만 대화를 통해 모두 해소한 것 같다”며 “대체로 모든 것을 자녀들에게 맞추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줬다.
아이들이 많은 의견을 내놓길 원했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받은 교육과 아이들이 받은 교육은 다르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S씨는 부모들의 솔선수범을 강조했다.
그는 “한인 자녀들이 대부분 올바르게 성장하는 것 같다.
부모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차세대 자녀들이 다 잘되는 것 같다”며 “한인 이민사회는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것 같다”고 호평했다.
G씨는 자녀를 무조건 이해하고 기다려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제일 중요한 건 자녀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인내하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그게 안되면 영원한 평행선을 그을 것”이라며 “그리고 빨리 화해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상진 기자 jin@hanhodaily.com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