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완성은 헤어
요즘 중국에선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선풍적인 인기로, 남성들이 너도나도 도민준처럼 머리를 해 달라며 미용실을 찾는다고 한다. 이처럼 헤어는 한 시대의 유행을 주도하는 코드이다. 오드리 햅번의 업스타일과 미란다 커의 러블리 웨이브 파마. 그리고 국내에서는 전지현의 긴 생머리, 김남주의 물결 파마, 고준희의 단발머리 등 잘 나가는 패셔니스타들을 상징하는 아이콘이기도 하다. 고로, 헤어 아티스트는 단순히 머리를 만지는 직업이 아닌, 패션을 헤어로 완성시키는 이들이다. 시드니에서 트렌디한 헤어 아티스트로 입소문 난 조앤 장(Joanne Chang)을 만나 좌절은 가위로 싹둑 자르고, 꿈은 매일 빗질하듯 윤기를 더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온 동네 아주머니 업 머리해주던 꼬마
올해 서른 살이 된 1985년생인 조앤 장은 타고난 헤어 아티스트다. 7살 때 혼자 앞머리를 자르고,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없는데 혼자 힘으로 동네 모든 아주머니들의 업 머리를 야무지게 해내어,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아이였다. 다른 또래 아이들이 인형의 공주 드레스에 눈이 갈 때, 인형의 머리로 미용실 놀이를 했던 그의 꿈은 당연히 헤어 아티스트였다.
 
하지만, 당시 고등학교를 직업전문학교로 진학해 미용을 배우겠다는 의지는 부모님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그냥 남들처럼 인문고등학교를 거쳐 세상 살기 편한 무난한 직업인이 되길 바라셨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치 않고 대학은 헤어 드레싱 전공으로 진학하게 되었고, 이후 먼저 호주에 와 유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던 친언니의 권유로 호주로 오게 된다.
 
“호주는 여러 나라 인종이 모여 있는 나라잖아요. 그건 온 세계 사람들의 헤어를 접할 수 있다는 의미였어요. 웨스턴과 아시안 등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다양한 인모를 만질 수 있고, 그에 따른 미용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인 셈이었죠. 마치 신대륙을 접한 기분처럼, 가슴 뛰는 기회의 나라로 여겨졌지요.”
 
금발 머리, 검은 머리, 레게머리 등 시드니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다채로운 헤어스타일은 그렇게 조앤 장을 호주에 정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 친언니 라일리 장(Laily Chang)도 헤어 아티스트다. 호피 헤어를 함께 운영하는 든든한 동업자이자, 함께 헤어스타일을 연구하는 동역자다.
마늘 냄새로 놀림받던 오지 숍 말단 스텝
호주에서 미용 드레싱을 학교에서 공부했다. 무엇보다 악착같이 영어를 배워나갔다. 외국인 친구들 위주로 만났고, 일자리도 오지 숍에서만 구했다. 한인 숍에서 일하면,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도 덜하고, 편하지만 호주에서 헤어 아티스트로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실력은 뛰어났지만, 처음엔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손님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는 이유로 가장 말단 스텝으로 허드렛일만 했다. 하루 12시간을 일해도, 100불도 못 받는 경제적 어려움은 둘째치더라도 홀로 아시안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인종 차별은 견디기 힘든 외로움으로 다가왔다.
 
“마늘 냄새난다며 저한테 대 놓고 인상 찡그리는 동료들도 많았죠. 오죽하면 함께 일하던 다른 아시안 스텝들이 저를 제외하고 모두 그만두고 나갈 정도로 아시안이 일하기 힘든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전 마늘 냄새난다고 하면 더 먹고 기운 내서 굴하지 않고 열심히 출근했어요. 하하”
 
눈물 흘리며 좌절하지 않고 그는 오히려 큰 웃음으로 스스로를 응원하며, 디자이너로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정진해 나갔다. 그런 노력으로 마침내 바닥 비질만 하던 스텝에서, VIP 고객들의 머리를 빗질하는 최고 디자이너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그의 실력으로 단골 고객들이 늘어나자, 오너가 그에게 다른 디자이너들의 튜터링을 맡길 정도였고, 나중에 그만둘 때는 제발 더 일해달라는 만류를 받았을 정도다.
 
▲ 그에게 이번 시즌 유행하는 스타일을 물어보았다. 단발이 작년에 이어서도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을 거라 추천해주었다. 그래서 본 기자도 그를 통해 변신해보았다. 대책 없던 어중간한 길이의 헤어에서, 산뜻한 단발 세팅 파마가 되었다.
최신 유행을 주도하는 호피 헤어숍 원장 
이제 오픈한 지 7개월이 되어가는 혼스비에 위치한 [호피 헤어]는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본인만의 헤어 숍을 가지고 싶은 소망을 이룬 장소다. 친 언니 라일리 장(Laily Chang)이 디자이너로 함께 운영하는 이곳은, 도발적이고 끼 많은 본인을 닮은 호피를 주제로 모든 인테리어에도 직접 다 참여해서 만들었다. 벽에 걸린 호피 문양 페인팅도 손수 했고, 호피 패턴의 티슈케이스까지 어디 가나 손이 안 간 곳이 없는 세련되고 쾌적한 숍이다.
 
그는 매거진이나 TV같은 최신 유행이 나오는 매체를 매일 모니터링하고, 컬러에 민감한 현지인들을 위해 로레알과 같은 유명 컴퍼니에서 컬러 클래스만 따로 수료하면서, 말 그대로 항상 트렌드에 깨어 있는 아티스트다.
 
▲ 헤어 아티스트 조앤 장(Joanne Chang)씨의 패션 아이템은,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의 얼마 전 생일에 남편으로부터 받은 팔찌와 반지.팔찌에 달린 헤어 아티스트를 상징하는 가위 모양 펜던트가 인상적이다. 판도라(Pandora)제품.
유창한 영어실력도 겸하고 있어, 현재 그의 숍을 찾는 절반 가까운 고객이 현지인들이다. 그는 호주에서 헤어 아티스트로 성공하고픈 꿈을 지닌 후배들에게 미용 실력 이전에 반드시 영어를 공부하라고 전한다. 아무리 머리를 잘 해도 고객과의 소통에 무리가 있다면 이곳에선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호피 헤어라는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려는 비전을 지니고 있다는, 그에게 있어 패션의 정의는 무엇인지 물었다.
 
“헤어스타일만 바꿔도 사람의 인상이 바뀌고, 전체적인 스타일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기분전환을 위해 미용실을 찾는 것이죠.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농담처럼 많은 이들이 말하는데, 저는 패션의 완성은 헤어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비싼 명품을 입어도, 다듬지 않은 부스스한 헤어로는 빛이 나지 않듯이 말입니다.”
 
김서희 기자 sophie@hanhodaily.com / 사진 최경하(Kei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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