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일찍 어머니를 여읜 어린아이였다. 새어머니로 오신 분이 한복 집을 운영하신 덕에 자연스럽게 어깨너머로 한복 만드는 것을 배웠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할머니의 구멍 난 버선을 꿰매주던 소녀로 성장했다. 그리고 26살에 홀 시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넉넉하지 않은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다. 시어머니를 집에서 봉양하며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본인이 좋아하는 한복을 정식으로 배워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한복 디자이너로 입지를 잡았지만, 청각장애를 지닌 아들을 위해 호주 이민을 결정했다. 
 
처음엔 이국땅에서 한복으로 먹고 살 엄두를 못 내었다. 마켓을 운영했었지만, 몇 년 안 되어 운명처럼 한복을 다시 손에 쥐게 되었다. 물질적으로 큰 보탬은 안돼도, 결혼식 때 한복보다는 양장을 더 즐겨 찾는 세상이 되었어도, 알아주는 이가 드물어도, 여전히 그는 전통 방식으로 한복을 완벽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한복과 함께 한 인생이 어느덧 40년이 넘었다. 흐르는 눈물은 한복 고름을 매듯 질끈 동여매고, 부딪치는 역경은 한복 치마폭처럼 넓게 감싸 안으며 살아온 그를 만나보았다.
 
 
외롭지만 아름다운 장인
얼마 전 그는 스트라스필드에서 이스트우드로 한복 집을 이전했다.
“스트라스필드에서는 위치는 좋은데, 가게 렌트비가 부담이 되어서 이곳으로 옮겼어요. 바깥에서 보면 작은 간판만 하나 있고, 다른 상가를 거쳐 올라가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렌트비가 저렴해서요”
 
비록 외관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막상 그의 숍에 들어서자 오색 창연한 한복이 빼곡하게 걸려있고, 손때 묻은 고풍스러운 재봉틀과 갖가지 한복 액세서리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국도 아닌, 호주에서 한복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힘든 부분이 더 많아요. 아무래도 요즘 젊은 세대는 한복에 대해 잘 모르고, 전통에 대한 특별한 신념이 부족한 게 사실이거든요. 결혼식만 예를 들어도 인터넷으로 저렴하게 구입하거나, 한번 입는 걸로 가볍게 대여하는 형태로만 한복을 여기는 부분이 안타까워요. 우리 조상의 얼이 그대로 담긴 한복이 점점 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거나, 기억 속에서 멀어지는 세태가 애통하죠. 그래도 간혹 드물지만, 한복으로 격식을 제대로 갖추려 하는 마인드를 지닌 고객을 만나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제가 하는 일에 뿌듯함을 느끼죠".
 
▲ 한복 디자이너 이혜숙씨의 패션 아이템은(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그가 지닌 한복 액세서리는 장인이 직접 핸드메이드로 만든 귀한 물품들이다. 실제 머릿결처럼 광태가 나는 쪽, 수백만 원에 상당하는 족두리, 화려한 색상과 섬세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장신구와 비녀, 골무로 만들어진 독특한 노리개는 그의 보물 1호다.
그는 오히려 호주 현지인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는 유명인사다. 한복의 미를 알리려 꾸준히 노력한 결과다. 푸드 페스티벌에 자청해서 한복을 가지고 참여했고, 각종 호주 축제에 무료로 한복을 대여했다. 빅터 도미넬로 NSW 시민커뮤니티부 장관 같은 유명인사에게 직접 만든 한복을 선물로 전달하기도 했다. 빅터 장관은 추후 그의 숍을 재방문해 감사패를 전하고, 본인이 원하는 색상의 한복을 따로 부탁하기도 했다.
한국인과 결혼하는 호주 현지인이나 외국인의 경우 하나같이 한복을 너무 좋아하고, 한복의 아름다움에 큰 찬사를 보낸다고 한다.
 
한복 디자이너 후계자를 찾는 게 목표
“한번 입고 말 옷인데, 사는 가격을 비싸다고 여겨요. 사실 한복에 들어가는 원단과 하나하나 손바느질로 마무리되는 걸 따지면 결코 비싼 게 아니거든요. 그렇게 한국에서 한복 장사가 안 되다 보니,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원단도 저렴하고, 디자인도 기성복 뽑듯이 박음질 하고, 인터넷에서 저가로 판매 되고 있어요. 자국에서 그러니, 호주에서도 그 분위기를 타고 한복이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죠. 다른 나라 브랜드는 명품이란 이유로 수백만 원짜리도 사잖아요. 정작 우리에게 있어서 명품은 한복인데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제 의지를 가지고, 죽을 때까지 한복을 알리며 살 거예요. 그래서 폐백도 몸은 힘들지만 맡아서 진행하고 있답니다.”
 

① 그가 한복을 만드는 역사에 동행한 오래된 재봉틀. 호주에 올 때도 가지고 온 골동품이다.

② 다리미가 나오기 전에는 인두로 한복을 다렸다. 전통적인 인두 모양을 본 딴 소형 다리미도 그가 오랜 세월 함께 한 애장품이다.

③ 빅터 도미넬로 NSW 시민커뮤니티부 장관으로부터, 호주 내 한복을 전파하는 노력을 인정받아 감사패도 전달받았다.

그의 앞으로 소망은 자신의 대를 이을 후계자를 만나는 것이다. 젊은이들 중에서 한복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노하우와 실력을 모두 전수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는 한복과 함께 살았던 인생에 후회가 없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한복을 만드는 사람이 꿈이었기에, 꿈을 이룬 사람이라 행복하다 말한다. 고사리 손으로 할머니의 구멍 난 버선을 꿰매던 어린 소녀가, 호주라는 이국땅에서 돋보기안경을 쓰고 굳은살이 박힌 손으로 바늘과 실을 들고 한복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그와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그의 이름 앞에 붙인 타이틀을 잘못 쓴 거 같다. 그는 한복 디자이너가 아니라 한복 장인이기 때문이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한복의 선처럼 정직하고 곱게 살아온 인생 장인이다. 
 
이혜숙 한복 98 Rowe Street Eastwood  0414 293 088
 
김서희 기자 sophie@hanhodaily.com / 사진 남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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