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CC로고는 전 세계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문양이다. 그렇다면 그 로고는 어떻게 탄생된 것일까? 샤넬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 후 장돌뱅이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아, 수녀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외롭고 불우한 아이였던 샤넬은 홀로 창밖을 바라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때 달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둥근 창문틀 모양이 마치 CC가 엇갈려 겹쳐있는 듯 보이는데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코코샤넬의 약자를 로고화한 것이다.
 
이렇듯 예술가는 평범해 보이는 찰나에서도, 자신만의 영감을 얻어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법이다. 중학교 때 한국을 떠나 호주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 공부를 마치고, 현재는 호주에서 주목받는 ‘핫’한 신인 디자이너로 꼽히는 이세리씨도 마찬가지다. 모노파라는 화풍을 지닌 이우백 화가의 그림에서 영향을 받아, 고국을 방문했을 때 접하게 된 울산의 희디 흰 방파제를 소재로 삼아 옷을 디자인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8월1일 아트아크 스페이스 소속작가로 호주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RAW Festival에, 한인 패션 디자이너로서는 유일하게 초대를 받아 준비로 한창 분주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선 간략하게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뉴질랜드에 갔다. 더 넓은 분야에서 공부하고 싶고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 고등학교는 호주로 왔고, 패션 디자인으로 대학(Whitehouse institute of design college Australia)을 졸업했다.
 
▲ 그의 의상은 호주의 많은 매거진과 쇼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 부모님 없이 혼자 온 것인가? 당찬 면이 있는 듯 하다
워낙 사교성이 좋고 활발한 성격이다. 미술로 부모님이 밀어주는 것도 어릴 적 마냥 산만하고 선머슴처럼 놀던 애가 색연필만 쥐어주면, 몇 시간이고 얌전히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셨기 때문이다. 마치 요즘 엄마들이 아이들 얌전하게 만들려면 스마트 폰을 주듯, 우리 부모님은 내게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주신 것이다(웃음).
 
• 순수미술을 전공하다 어떻게 패션으로 전향한 것인가
미술이라고 해서 스케치북에 머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엔 패션이 순수 예술보단 돈을 많이 벌줄 아는 철없는 바람도 있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돈은 전혀 안 되고 있지만(웃음), 그림을 베이스로 할 수 있는 분야를 찾다가 패션으로 최종 결정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선천적으로 옷에 관심도 많았다.
 
• 당신이 만드는 옷 컨셉을 설명해달라
한마디로 말하기 애매하다. 난 예술적인 측면과 상업적인 측면을 함께 넘나들고 있다. 윈터 시즌으로 만든 의상들은 런웨이만 목적으로 했기에 디자인도 상당히 아방가르하고, 원단 가격도 상당하다. 한 마디로 리미티드 아이템에 가깝다. 반면 썸머 시즌은 생활 속에서 심플하면서 시크하게 입을 수 있는 옷 들이다. 썸머가 원단도 저렴한 면도 있기에, 가격면에서도 대중이 접하기 용이한 옷들이다. 
 
• 다른 옷들과 다른 포인트가 있다면 무엇인가
지퍼나 단추같은 부자재를 극도로 싫어한다. 랩스타일을 굉장히 좋아하고, 유행에 따르기보단 장기적으로 시간이 흘러도 입을 수 있는 베이직하고 클래식한 옷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내 옷은 셔츠도 단추 없이 끈으로 여며야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옷은 만드는 것도 입는 것도, 시간과 정성이 함께 하길 원해서 그런가보다. 지퍼와 단추 없이 끈으로 옷을 조이고 입는 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 영감은 대체로 어디서 얻는가
음악, 여행, 독서, 사진 등 아주 다양하다. 특히 모노파로 유명한 이우환 화가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았다. 
 
• 미술문외한이기에 모노파란 단어는 솔직히 낯설다. 설명을 부탁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큰 영향을 준 모노파에 관련된 문장을 그대로 소개하겠다. 이우환 화가에 의하면 미니멀리즘은 시선이 작품에서 주변으로 확장되어지지는 않으며 그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 자기 완결적인 결정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모노파는 작품과 주변을 포함하는 세계라는 더 큰 총체를 인식시키려는 ‘구조의 지각’을 의도한다. 따라서 모노파의 모든 작품은 입장적 임시적 이 되는 것이 중요하며, 사물과 장의 전일성을 경험하도록 하기 때문에 일종의 ‘장소적 미니멀리즘’이 되는 것이다. 그가 자신을 누누이 장소적 미니멀리스트로 칭한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이것이 서구의 미니멀리즘과 모노하의 대표적인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 패션디자이너 이세리씨를 상징하는 아이템들이다. 호주인과 콜라보레이션을 했을 때 스케치했던 그림(1)과 쥬얼리(2), 이우백 화가의 모노파에서 영감를 받아 만든 의상(3).
• 그래서 이번 당신의 스프링 썸머 컬렉션 타이틀도 SS2014.15 Mono-Ha collection인가?
맞다. 모노파의 이념에서 출발하게 된 컬렉션이다. 이우환 화가의 사상에 감동을 받아, 나만의 개성이 들어간 모노파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하게 되었고, 그래서 소재적인 부분으로 나온 게 울산 방파제다.
 
• 울산 방파제가 소재라서 매우 독특하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눈부시게 새하얀 방파제를 보았다. 어딘가 보았더니 울산 신항이었다. 새로 만들어진 방파제라 깨끗하고 특이했다. 무작정 그 사진 한 장에 끌려 지리도 잘 모르는데 혼자 찾아갔다. 하루에 통통배가 두 번만 뜨는 외진 곳이었다. 너무 춥고 힘들었지만, 그 곳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방파제와 그 곳의 바닥과 햇살 바다색깔을 사진으로 열심히 담아서, 내 옷으로 재탄생시켰다.
바다의 수평선, 바다위에 홀로 놓인 방파제의 모양, 콘크리트 질감, 색상, 방파제 사이로 들어오는 파도, 방파제랑 겹치는 파도 소리, 햇빛이 물에 반사되는 모양 이러한 것들을 옷에 표현해 봤다. 
 
• 좋아하는 예술가는 누구인가
조금 전에 언급한 모노파로 유명한 이우환 화가와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하이더 아크만을 좋아한다. 하이더 아크만의 컬렉션을 처음 보고는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시크하고 세련된 스타일이라 눈을 뗄 수 없었다.
 
▲ 지퍼나 단추를 최대한 배제하고 디자인한다. 셔츠도 끈으로 여미게 만들어 간결한 멋을 극대화시켰다.
• 디자이너로서 돌이켜 보면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있는가
대학 졸업 작품 시즌 당시, 하루만에 콘셉트를 바꾸라는 교수님 지적에 1시간을 펑펑 울고, 다시 재정비해 당시 졸업 작품 멤버들 중 탑 5에 선발되었던 일, 호주 예술가와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해 성공적인 평판을 받았던 일, 이번 RAW Festival에 초대받은 일들 모두가 감사하고 짜릿한 기억들이다.
 
• 당신의 옷은 어디서 구매가 가능한가
www.sleethelabel.com을 통해 볼 수 있고, 호주 여러 부띠크에서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시간이 난다면 8월1일 패션쇼를 많은 이들과 즐기고 싶다. 단순한 의상 쇼가 아니라 여러 뮤지션들과 함께 퍼포먼스로 꾸며지기 때문이다.
 
• 앞으로 꿈은 무엇인가
나는 다른 분야에 있는 예술가와 콜라보레이션을 좋아한다. 나중에 유명해지면 학생들이나 신인 예술가들의 프로 무대 데뷔를 도와주는 소통의 창구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아울러 울산 방파제에서 감동을 받았듯 내가 호주에서 살고 있어도, 내 자아는 한국이란 걸 잊지 않고 살 것이다. 한복 옷고름처럼 셔츠 끈을 여미게 만들듯, 앞으로도 한국적 요소를 호주 패션에 새롭게 시도하는 디자이너가 될 것이다.
 
 
RAW Festival 
그가 아트아크 스페이스 소속작가로 패션쇼로 참가하는 페스티벌로. 시드니의 신진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 일시: 8월1일 저녁7시
- 장소: 시드니 대 매닝바
- 입장료: $16.95(Door Ticketing $20)
- 홈페이지: https://www.facebook.com/events/1437627666514144/
                https://vimeo.com/100759712
 
김서희 기자 sophie@hanhodaily.com / 사진 심동엽(24photos)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