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물도 제대로 못 맞추던 경상도 남자다. 요리를 한다고 하자 남자가 어디 할 일이 없어 요리나 하려는 거냐는 타박을 부모님께 들었다. 이상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호주 최고 세프 유망주를 뽑는 <Young Chef> 경연대회 톱3에 입상했고, 세계적인 레스토랑인 시드니 테츠야(Tetsuya’s) 최초의 한국인 쉐프로 이름을 새긴 이홍규씨의 이야기다. 
마치 단숨에 점프하듯 도약한 운 좋은 행운아로 보일 수 있지만 알고 보면 그는 누구보다 더 높이 뛰기 위해 오랜 시간 많이 움츠리며 준비한 사람이었다. 
 
촬영을 위해 앞치마 복장을 하고 공원에 나와보니 어떤가
오늘 날씨가 정말 예술이다. 주방에서만 입던 쉐프 복장으로 공원으로 나와 햇살을 받으니 색다르고 기분 좋다. 호주의 이런 자연환경으로 20대 초반에(그는 현재 32살이다) 어학연수로 처음 왔을 때도 살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 
 
▲ 그의 요리는 독특하고 창의적이라는 호평을 받는다. 간장소스를 젤리 형태로 만들어 밥 위에 얹힌 새로운 스타일의 김밥
쉐프는 어떻게 하게 된 것인가
부엌은 어머님만 들어가는 줄 알던 경상도 남자였다. 라면도 제대로 못 끓였기에 처음 요리를 한다고 할 때 부모님은 역정을 내셨고 친척들은 어이없어했다. 삼촌은 네가 쉐프면 나는 대통령 하겠다 하셨을 정도로 잼병이었다(웃음).
솔직히 처음 계기는 호주가 아주 맘에 들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된 것이다. 
 
성격이 상당히 솔직하고 활발할 것 같다
낙천적이며 적극적인 편이다. 오히려 고민 없이 일단은 시작해보겠다는 거침없는 평소 성격이 쉐프가 되는 데는 도움이 된 것 같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줄 미리 알았다면 겁먹고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 현재 한국문화원에서 호주현지인들에게 한식강의를 하고 있다
그러다 어떻게 요리실력이 월등해진 것인가
호주 르꼬르동블루에 들어갔는데 첫 수업 때 칼에 손을 베일 정도로 쉐프가 되기엔 가망 없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점점 수업을 들을수록 흥미가 생기고, 요리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창의력과 예술성이 가미된다는 점에서 멋진 일이라고 느껴졌다. 부모님이 예술을 하셨기에 그림에 관심이 많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그림 이미지를 요리로 입체화 시키는 스타일로 터득했다. 지금도 새로운 요리를 구상할 때는 미리 그림 작업을 먼저 한다.
 
전적이 매우 화려하다. 한국인 최초 호주 영쉐프 톱3에 들고, 테츠야같은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도 한국인 최초 쉐프다. 한인쉐프의 역사를 개척하는 인물로도 생각된다.
운도 좋은 편이라 생각한다. 테츠야는 엄청난 지원서가 매일 들어오기에 우편으로 들어오는 건 개봉도 안 하고 버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도 지원을 여러 번 했지만, 답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조깅을 하다 테츠야를 지나는데 문이 열려 있는 게 아닌가. 
운명처럼 뛰어 들어가 가게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니 스태프가 와서 경찰을 부르겠다고 난리였다. 제발 헤드 쉐프님 한번만 만나게 해 달라고 간청을 하는데 저 멀리서 헤드 쉐프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가방에 이력서를 늘 가지고 다녀서 열정적으로 내 소개를 하며 이력서를 전달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내일부터 나오라는 결정을 현장에서 얻게 된 것이다.
 

이홍규 쉐프를 상징하는 아이템은

그의 멘토는 세계적인 쉐프 대런 로버트슨(Darren Robertson)이다. 카리스마있는 자세와 재기가 넘치는 요리 스타일에 많은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대런 로버트슨 쉐프가 착용했던 태그 호이어(TAG Heuer)시계를 구매했다. 까르띠에(Cartier)결혼반지도 마찬가지로 대런 쉐프가 평소 착용한 것을 보고 선택했다.이홍규씨가 꿈을 향해 노력한 자신에게 준 선물 같은 존재들이다.

운이 좋은 만큼 보이지 않는 힘듦과 노력도 많았을 것 같다
테츠야같은 경우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일했다. 엄청난 노동을 해야 했다. 그리고 영쉐프대회때는 오븐이 갑자기 꺼지는 불운도 당했다. 항상 트렌드에 민감하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신메뉴를 구상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연구한다. 
가장 어려웠던 일은 쉐프로서 좋은 위치에 올라가고 안정적으로 된 상황에서 태어난 아기가 아파서 그만둬야 했을 때다.
 
꽤 힘든 결정이었을 듯하다
아들이 한쪽 눈이 심각하게 아픈 상태로 태어났다. 아내와 난 너무 충격을 받아 공황상태였다. 의사도 정말 보기 힘든 경우라 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고 도저히 아내 혼자 아기를 돌볼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보다는 가정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일을 관두었다. 상황을 모르는 주변인들은 그 좋은 자리를 왜 그만두느냐고 다들 만류했었다.
 
지금 아기 건강은 어떤가
계속 병원에 다니며 상태를 보고 있다. 오히려 아들 때문에 너무 일만 하며 달려온 삶에 쉼표가 생긴 거라 감사하다. 풀타임으로 일하는 레스토랑 일은 그만뒀지만, 틈틈이 한국문화원에서 한식요리 강사도 하고 있고, 요리사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Chef Crew>라는 조직을 만들어 컨설팅도 도와주고 있다. 
 
당신을 멘토로 삼은 후배 쉐프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열정보다는 성실함이다. 아무리 뜨거운 열정도 사라질 수 있지만 오랜 시간 다져진 성실함은 소멸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명 레스토랑에서 몇 개월씩 일한 사람보다, 소박한 곳이라고 해도 몇 년씩 근무한 사람을 난 더 높이 평가한다. 두려워 말고 우선 시작하라. 준비되어 있다면 어떤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절대 포기치 말라~! 
 
김서희 기자 sophie@hanhodaily.com / 사진 남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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