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왼쪽부터 호주동아일보 전경희사장, 양상수 어번시 시의원,옥상두 스트라스필드 시의원, 김병일 전 시드니 한인회장
호주 한인 이민 역사는 이제 반세기를 넘어섰다.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려 온 이민 1세대는 이제 한숨을 돌리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현재를 자축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보다 객관적으로 교민사회가 어디까지 왔는지 되돌아볼 필요성을 느낀다. 호주동아일보는 호주 한인사회가 정치와 문화 면에서 어디에 와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다루는 대담을 3회에 걸쳐 다룬다. 이 기획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재정 지원으로 완성되었다. - 편집자주
 
(지난주에서 이어짐)
 
한인 정치인이 느끼는 한계
 
한인 사회가 혼자서 호주정치에 영향력을 발휘하기에는 숫자, 재정의 한계가 뚜렷한데, 이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인가? 다른 소수민족과 연대의 필요성이 있지 않은가?
 
옥: 지난번 인종차별 금지법 개정안을 막은 것은 소수민족연대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소수가 모이면 다수가 된다. 우리는 소수가 아닌 다수라는 마음으로 힘을 모아 개정법안을 막은 것이다. 특히 한중 연대의 파장이 컸다. 그러나 우리 내부간의 협력도 중요하다 언론도 동참하면 더욱 바람직한 길이 마련될 것이다.
 
양: 동감한다. 그러나 활동 자체는 호주 내 한인의 권익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내가 속한 어번시에서는 한국어를 5대 외국어에 올리도록 교육부 장관에 서명서를 보냈고, 인종차별 금지법 문제에도 서한을 보내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장관에게 쓰는 서한 때문에 새벽 2시까지 못 잤다. 우리는 계속해서 건의하고 우리 힘을 보여주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은 미약해도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브릿지’ 과정이다. 그렇게 되면 십 년 내로 호주 내에서 한인사회의 목소리도 더 커질 것이다.
 
김: 현실 권력도 중요하다. 아시다시피 다민족사회에서는 법을 만드는 자가 현실 권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수민족 각자로는 힘을 발휘할 수 없으며, 오늘과 같은 논의와 협력이 끊임없이 따라야 한다. 한인회는 한인회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지역 단체는 단체대로 참여 의식을 갖고 함께 해야 한다.
 
김석: 개선을 위해서는 두 가지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다. 첫째로 의외로 호주정치참여가 자연스러운 한인2세의 정치의식이 부족해 보인다. 권력에 대한 의지나 개척 정신이 부족하다. 한 예로 한인2세들의 정치의식을 함양하려는 자리가 있었는데 질문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관심도가 낮기 때문이다. 둘째로 한인 사회 내 소규모 조직 활동이 미약하다. 이런 조직이 없이는 선거같이 필요한 때에 아무도 동원할 수가 없다. 다양한 단체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나 한인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종교단체들은 정치 참여를 꺼려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보통 종교인들은 정치 분야에 훈련되어 있지 않다. 한인 종교단체를 활용할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노인, 정신 질환, 도박 문제 등 외부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과 정치적 현안들을 적절히 조화시켜서 정치적 언어가 아닌 복지의 언어로 접근하는 것도 좋다.
 
: 교포 2세는 호주인이라고 봐야 한다. 호주 전체 인구에서 정치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은 1.5%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교포 2세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만큼 힘들다는 얘기이다. 우리 아이들도 아버지가 정치에 나서기 때문에 도와주지만, 정치적 의견이 같은 것은 아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이쪽 일을 하다 보니 정치 이슈에 대해 관심이 많이 생긴 것 같다. 결국 1세대가 롤 모델이 되어 앞장서서 부족하더라도 2세대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 원희룡 도지사 호주 방문시 함께 한 양상수 시의원과 옥상두 시의원
한인 2세들의 정치참여
 
결국 시간이라는 변수를 잘 다루는 게 관건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인 사회가 정치적인 영향을 구축하기 위한 장기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특히 젊은 이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
 
김: 한인 젊은이들은 관심도가 높다. 단체장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고, 관심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인 2세에도 정치적인 희망이 있다고 본다.
 
옥: 그런 젊은이들을 어떻게 하면 정치무대로 들어오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이스트우드가 속해있는 라이드 시에는 한인이 시의원으로 나오면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안타깝게도 막상 나오는 사람이 없다.
 
김석: 시의원이 먹고 사는 문제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고 봉사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본업을 내려 놓고 참여하기는 힘든 부분이 있다. 그래서 보다 적극적이 후원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이것은 다양한 한인단체를 엮는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옥: 그런 면에서는 중국인사회가 부럽다. 선거가 다 그렇지만 선거운동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후보자 본인의 돈도 쓰지만, 지역사회의 후원이 있으면 훨씬 더 득표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 내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선거자금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 설득해서 모았다.  당시 함께 출마했던 중국계 후보에게 물었더니, 여러 사람 찾아 다닐 필요 없이 세 명만 찾아가면 해결된다고 했다. 이들이 정파적 이해 관계도 상관하지 않고 도와준다는 뜻이다.  자기 커뮤니티를 대변할 한 명을 밀어주는 분위기가 자연히 형성돼 있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호불호가 분명해 하나로 뭉치기가 어렵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한인 사회의 대표선수를 대승적 차원에서 후원하는 분위기가 필요할 것이다. 시의회 선거에는 최소 2-3만 달러가 필요하며, 자금모집이 여의치 않아 개인 부담이 크다. 그래서 작은 도움이라도 주시는 분들이 고마울 뿐이다.
 
실제로 한인 후보에 후원이 모이면, 기성 당 내에서도 한인들의 파워를 인정하고 위상도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한인의 정치적 입지도 더 탄탄해 질 것이다. 일례로 호주 정치인들이 많이 여는 선거자금조성 행사에는 주 의원부터 연방 총리까지 참석한다. 이런 모금행사에서 테이블을 얼마나 차지하느냐에 따라 각 커뮤니티의 입지가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지지자들은15달러짜리 와인을 1000달러에 구입한다. 정치를 후원하는 의식 덕에 가능한 것이다.
 
정치 후원의 다양성 필요
 
후원금 외에도, 한인사회 차원에서 정치활동을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옥: 호주동아일보가 제가 준비하는 정경포럼에 대해 사설을 다루었을 때도, 많은 힘을 얻었다. 사설을 통해 한마디 거들어 주는 것도 한인사회의 시각에 큰 영향을 미친다.
 
김: 후원 역시 현직 정치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제가 한인회장 시절, 많은 호주 정치인 행사를 찾아다니며 적극적으로 노력했더니 시드니 한인회가 호주 정치인들을 초청했을 때 반응이 좋았다. 노력한 만큼 효과가 돌아온 것이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한국인들은 행사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지 않고 먼저 가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어찌하든 기부를 해도 나중에 다 돌아온다. 서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양: 하모니가 잘 이루어지는 오케스트라처럼 한인회, 한인정치인, 언론이 잘 조율하고 화합을 이루어야 한다. 오늘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부터가 긍정적인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해외에서 살다 보면 애국심이 커지고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서로에게 의지하기도 한다. 소수 민족으로서 호주 주류정치계에 입문해 활동하는 것은 큰 결단력이 필요한 일이다. 좌담회가 진행된 두 시간여 동안 희망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우리 한인사회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우리가 처한 현실을 냉정히 파악해, 호주사회에서 상생하는 방법을 배워 나가야 한다. 호주사회의 주변에 머무른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주류사회에서 활동할 때, 개별 한인정치인뿐 아니라 한인사회 전체가 그 입지를 단단히 다질 수 있을 것이다.
 
홍태경 기자 edit@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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