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좋은 정보를 나 혼자에게만 주지 말고 여러 교민들에게 주는 건 어때요?”
김대사와 마주 앉아 몇 시간 동안 담소 하다가 내가 갑자기 그의 말을 끊고 대중 강연을 제안했다. “그래도 될까요?” “대사가 교민들 상대로 강연한 일이 없었지만 선례를 만들면 되지요” “지금 그런 내용이면 너무 훌륭해요. 나만 믿고 맡기세요” 그가 외통부 재외국민 영사국장 시절 한 학기에 한번씩 내 교실에 왔다. 명지대 대학원 해외동포학 시간이었다. 그는 정부 재외동포 실무책임자로서 강의를 했다. 그래서 내가 그의 강의 실력을 안다. 
 
송석준 한인회장에게 전화했더니 12월에 한인회관이 다 예약이 되어 있다고 한다. 다른 곳에 강연 장소를 구해야 했다. 이 강연회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복지회 이용재 회장이 모든 준비를 맡기로 하고 나서서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켰다. 12월 12일 금요일 오후 5시경 메도우뱅크 강연장에 김대사가 운전기사만 대동하고 나타났다. 그는 한 시간 이상 일찍 도착하여 강연회에 오는 100여명의 교민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사진도 찍고 격의 없는 대화를 했다.
 
소프라노 김선영 씨의 아름다운 노래가 끝나고 강연이 시작되었다. 그는 동서양의 차이점부터 얘기했다. “‘삶의 방식’이 문화, 철학의 차이를 초래합니다. 쌀의 문화와 밀의 문화의 차이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개념을 다르게 만들었습니다”고 했다. 서양의 합리주의는 1+1=2지만 동양은 1+1=2 혹은 3도 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여러해 전 외통부 최영진 차관이 동서양 문화차이를 다루는 걸 보고 “외교관들이 동서양을 비교할 일이 자주 있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김대사도 같은 주제를 들고 나왔다. 사실 학자들에게도 벅찬 주제다
 
“쌀 농사는 밀 농사에 비해 협동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동양이 집단주의가 더 발달했습니다”고 한다. 나는 바로 그 전 주일 리드컴 내 문화사 강의 시간에서 “한국인은 열성과 봉사정신은 강하지만 양보와 협동정신은 약하다”라고 했는데 김대사는 “한국인은 협동정신이 쌀 농사 때문에 강하다”고 했다. 견해 차이인지 표현 차이인지 그와 다음 만나면 확인해 볼 생각이다. 다음으로 한중일 관계와 세나라 국민성, 이해관계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는 상당히 민감한 부분까지 외교관 입장에서 진솔하게 자기 느낌과 견해를 발표했다. 
 
“같은 유교문화 배경이라고 해도 ‘일본의 칼’과 ‘한국의 붓’은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인은 질서존중, 타인에 대한 배려가 큰 반면 한국인은 봉사정신, 자유분방, 힘의 결집을 잘 합니다”고 했다. 그 예로 IMF 때 금 모으기, 세계 2위의 해외봉사, 에볼라. 지원자 4대 1의 경쟁을 들었다. 삼성, 현대, LG의 성공도 그런 국민성 결과라고 했다. “정확함이 시대적 요구일 때 일본의 제조업이 각광을 받았습니다”. “21세기의 시대적 요구는 ‘속도’와 ‘기발함’입니다. 자유분방한 한국인 기질에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소니’, ‘도요타’, ‘신일철’ 등 일본 제조업의 신화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삼성’, ‘현대’, ‘LG’, ‘POSCO’가 우뚝 서고 싸이 같은 ‘한류’의 기적은 한민족이 현재 글로벌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위기상황이 와도 이런 기질이 극복해 나갈 거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중국의 등장으로 한국과 일본은 무한경쟁 시대로 내 몰리고 제조업은 중국이 천하통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정치체제의 한계성, 이윤은 국가가 가져가는 국영기업체, 경직된 금융시장에 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일본은 과도한 국가부채, 노동시장의 문제가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과도한 가계부채와 노동 문제가 있습니다“ 그는 해결책으로 “우리나라가 창조경제의 환경조성을 위해 관, 산, 학(官,産,學)이 상호 협동하여 아이디어를 기업화하는데 힘을 모으면 됩니다”라고 했다. “서양에서는 유럽 보다 미국이 자체 내 에너지 개발, 이민유입 등으로 경제침체를 벗어나기 더 용이한 상황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교민사회도 호주에 주류로 향한 진출을 계속해 총리를 배출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했다. 그가 관리라 그런지 총리를 가장 성공한 사람의 예로 들었다. 미국 교민사회도 하원의원 몇 명을 배출했는가로 성공의 잣대를 삼았다. 학문, 과학, 예술, 스포츠 계의 진출은 언급도 안한 것은 섭섭했다. 동포사회가 단합하여 목표를 정하고 힘을 결집할 것을 충고 했는데 사실 우리만한 크기의 소수민족이면 호주에서 압력단체(Pressure Group)로 로비를 하면서 한인사회의 이익을 추구할 시점이 되고도 지났다. 그는 끝으로 본국과 협조, 타 동포사회와 연계, 장기계획으로 차세대 육성을 제안하고 유학생, 워홀러도 돌보아 달라고 부탁했다. 
 
강연회에 왔던 교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 “그 날 좋은 정보를 많이 들었는데 그 자료를 어디서 보죠?” 하는 질문을 여러 명에게서 받았다. 강연회에 못 온 교민들도 궁금해 한다. 그래서 내가 그의 강연을 여기서 대강 정리해 봤다. 내가 김대사 말에 오해한 부분이 있었다면 양해를 구한다. 김대사는 고위 외교관만 감지할 수 있는 국제정세 정보를 교민들에게 강연을 통해 솔직하게 전해준 첫 번 째 대사가 되었다. 과거 대사라면 ‘지위지향적’이었는데 이제는 ‘업무지향적’ 대사로 바뀐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시도, 노력, 열성에 갈채를 보낸다.
 
한상대(전 시드니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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