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총량의 법칙은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이다. 어떤 사람은 그 정해진 양을 사춘기에 다 써버리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그 양을 소비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죽기 전까진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다는 것을 최근 김두식 교수가 쓴 <불편해도 괜찮아>에서 읽었다.
 
집에 들어오니 막내가 어정쩡한 표정으로 인사한다. 아니? 갑자기 내 머리가 확 돌아 버린다. 15살 막내의 검은 머리가 온통 노랑머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손에 잡히는 잡지 한권을 집어 던지려하자 아내가 막는다. 한번 해보고 싶다니 그냥 놔두라고 한다. 아니, 학교에선 아무 말도 안하나? 학교엔 거의 노랑머리인데 뭘? 우문에 현답인가? 막내 놈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나 차를 타고 나갈 때나 언제나 이어폰을 꽂고 음악만 듣는다. 우리가 무얼 묻거나 말해도 대답이 없다. 그러나 자신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고 말을 한다. 야단을 쳐보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하지만 컴 다운! 컴 다운 하며 개의치 않는다. 조금이라도 비위가 상하면 문을 꽝! 닫고 들어가 한동안 나오지 않는다. 
큰 아이들 키울 때와는 또 다른 현상에 신경질이 하늘을 찔러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김 교수의 지론에 의하면 아직도 지랄 총량을 다 소비 못한 것이라고 하니 어쩔 수가 없다.  
 
요즈음,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이 핫뉴스다. 그녀는 자신의 공주병 지랄을 사춘기 때에 다 소비 못하고 계속 사용하다가 이번에 혼나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기사의 가십난에서 보니 어떤 재벌2세가 임원과 함께 고속도로를 주행하고 있었는데 대화 중, 맘에 안 든다고 그 임원을 고속도로 상에 내려놓고 그냥 갔다고 한다. 그 재벌2세도 어려서 써야할 왕자병 지랄을 아직 다 쓰지 못한 모양이다.  
 
한인사회의 지도자라고 하는 모 단체의 회장인가 사무총장인가 하는 사람들이 주먹질하며 서로 고발한다고 지랄이다. 그들도 사춘기 때에 다 쓰지 못한 싸움 지랄을 늦바람이 나서 지금 소비하고 있는 듯하다. 
단체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중년 남녀가 눈이 맞아 서로의 가정을 박차고 나가는 지랄들이 발생하여 두 가정이 쑥밭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들도 사춘기 때에 소비해야할 연애지랄을 다 못쓰고 뒤늦게 자신들의 지랄 총량을 소비하는 모양이다.
 
지난 1월 한 달, 우리 교민들을 기쁘고 즐겁게 해 주었던 고국의 축구대표 팀에게 고맙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친선 경기를 시작으로 한 2015 AFC 아시안컵에 우리 가족은 캔버라 시합도 다녀오고 이라크와의 준결승전과 호주와의 결승전도 다녀왔다. 통쾌하고 신나는 축구여정이었다. 비록 호주와의 결승전은 연장전까지 가서 준우승에 머무르고 말았지만 손흥민 선수의 동점골에 우리 모두 열광했다. 노랑머리 막내를 비롯한 경기장을 찾은 칠만여 관중들의 열광에 그들 자신의 지랄이 엄청 소비되었을 것이다. 1:1 동점골엔 막내가 열광했고 차두리의 그 힘찬 드리볼엔 아내가 열광했다. 
경기가 모두 끝난 후, 나는 고국의 대표 팀에게 감사했다. 우리 이민자들, 특별히 젊은이들의 지랄이 엄청 발산되는 계기가 되었기에 고마웠다. 지랄이란 용어가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열정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사돈 남 말 한다고 남아있는 나의 지랄도 엄청 소비되었으니 스포츠의 위력을 실감한다. 여러 스포츠 중에 11명이 똘똘 뭉쳐 시합하는 축구는 보기만 해도 신이난다. 내가 사는 지역 연고인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의 홈경기에 가보면 극성팬들의 그 지랄이 도가 지나쳐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영국의 많은 사람들, 특별히 젊은이들의 열광은 더 하다고 한다. 그러니 영국의 많은 사람들이 주말마다 열리는 축구 경기에서 모든 지랄을 발산하기에 안정된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의 소망은 고국의 남자들이 술안주로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축구 이야기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고국과 호주의 결승전이 끝나고 돌아오는 승용차 속에서 노랑머리 막내가 공손하게, 이번 축구시합 모두를 볼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며 모처럼 웃는다. 지랄 총량이 틴에이저인 때에 모두 소비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래 ! 그래! 반갑게 대꾸해 주었다.
 
장석재(2012 재외동포 문학상 수필 대상 수상, 현재 <수필 동인 캥거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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