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전환
관점 전환(Perspective taking)과 관련, 심리학에서 위대한 3대 실험 중 하나로 불리는 ‘샐리앤 실험’이 있다. 샐리와 앤이라는 두 소녀가 있다. 두 아이가 유모차와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다. 그러다 샐리가 유모차에 인형을 넣어 놓고 방을 나간다. 혼자 있던 앤이 잠시 후 유모차에서 인형을 꺼내 옆에 있던 나무 상자로 옮긴다. 그리고 방을 나간다. 잠시 후 샐리가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여기서 문제! 샐리는 인형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어디를 찾아볼까?
답은 당연히 유모차다. 하지만 이 질문을 만 4세 이하 아이에게 하면 어떨까? 100%가 ‘나무 상자’라고 답한다. 혹 독자 중에도 답이 나무 상자라고 생각한다면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그렇다. 인형이 나무 상자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도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사물을 상대 관점에서 보지 못하고 내 관점에서 본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인간은 만 4세가 지난 후부터 관점 전환 능력이 생긴다고. 그런데 안타까운 건 이거다. 이렇게 얻어진 관점 전환 능력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특히 성공에 대한 자신감과 추억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퇴행한다. 과도한 성공은 ‘내 생각’ ‘내 방식’에 대한 근거 없는 확신을 낳기 쉽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소유편향’이라 부른다. 소유편향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상대 관점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게 된다. 생각해 보라. 상당한 노력을 들여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일수록, 상대 관점에서 생각하는 데 서툰 사람이 많다. 마치 전국 수석이 반에서 30등 하는 친구에게 ‘도대체 미적분의 원리가 왜 이해가 되지 않느냐?’고 묻듯이.
협상은 '내 얘기'하는 자리 아니다
협상은 개인·집단·조직 간에 이해 조정을 통하여 당사자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일련의 커뮤니케이션 활동 및 상호작용 패턴이다. 협상의 핵심개념은 두 사람 혹은 두 집단 이상이 서로 물질과 서비스를 교환하기 위해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의 교환은 주고받는(give and take) 것일 수도 있고, 상쇄하는(trade-off) 것일 수도 있다.
주로 겸손과 양보의 미덕을 강조해온 우리나라에서는 협상이 그다지 익숙한 용어는 아니지만 우리 삶의 대부분은 협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리더는 협상능력이 리더십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협상으로 크고작은 이해관계를 조절하며, 갈등을 끄기도 한다. 협상은 긴장과 대립 속에서 각자 자신의 제약조건 하에서 최대한의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며, 공평하고 정당하다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형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상호 양보와 인내를 강요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갖고 있다. 조직에서도 노사문제의 해결이나 회의 등을 통하여 내부의 문제들을 조정하는 수단으로 빈번하게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조직의 리더는 협상을 잘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을 반드시 배양해야만 한다.
협상은 어떻게 시작하였는가에 따라서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협상 분위기를 우호적으로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초면일 경우에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거나,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
협상에서 관점 전환은 너무도 중요한 이슈다. 협상의 현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람이 자꾸 ‘내 얘기’하는 사람이다. ‘내 사정이 어쩌고, 우리 회사 상황이 저쩌고, 그래서 당신이 한 번만 봐줘야…’ 어떤가? 과연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는 상대는 내 얘기에 관심 있을까? 없다. 그럼, 내 얘기 관심 있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혹시 가족도 내 얘기에 관심이 없다면 이건 정말 슬픈 거다). 결국, 협상이란 ‘내 얘기’하는 자리가 아니다. 상대 관점에서 상대가 관심 있는 얘기를 하는 자리다. 그렇다면 어떻게 상대 관점에서 얘기할 수 있을까?
이를 도와주는 도구(tool)가 ‘만달 아트’(Mandal Art)다. 협상에선 만달 아트를 이렇게 활용한다. 우선 상대를 중간에 놓는다. 그리고 ① 그 상대의 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 ② 상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③ 상대에게 당장 필요한 것(needs) ④ 상대의 취미나 기호 등을 적는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
협상의 기본, 공감과 이해
모든 것이 협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하고, 그의 필요를 이해하고, 요구를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리더가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한다. 특히 협상할 때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단어나 용어를 사용해야 하며, 말하는 순서는 결론이나 중요사항을 먼저 말한 다음, 그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는 것이 협상을 빠르게 진척시키는 방법이다. 협상할 때, 논리적이고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자주 사용되는 것이 ‘AREA’법칙이다. AREA는 Assertion, Reasoning,Evidence, Assertion의 머리글자를 딴 명칭이다. 먼저, Assertion에서는 주장의 핵심부분, 즉 결론을 말하고, Reasoning에서는 근거나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Evidence에서는 이유나 근거에 관련된 증거나 사례를 제시하고, 마지막 Assertion에서는 다시 한 번 핵심부분을 강조한다. 결론을 되풀이하면 호소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반면, 상대방의 주장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반론은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건설적으로 해야 한다. “그 쪽 의견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그런 조건이라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요.”라고 차갑게 반론한다면 상대방의 감정적 반발을 초래하여 협상이 결렬되는 것은 명약관화이다. 반론을 할 때에는 먼저 상대방의 주장 가운데 동의하거나 일치되는 의견에 대해 먼저 칭찬 혹은 동조를 하고,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면 된다. 자신의 또 다른 주장을 할 때에도 역시 ‘AREA’의 법칙을 사용하면 된다.
조직 내에서 리더는 구성원들을 설득하거나, 조직을 대표하여 협상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협상 분위기를 좋게 하고,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한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협상은 리더의 필수덕목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정확하고 완벽한 것이라고 믿는 성향이 있다. 그리고 일을 하거나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스스로 정한 원칙은 어떻게든 지키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자신이 따르고 있는 원칙을 상대방이 주장하게 되면, 그것이 비록 손해가 될지라도 반드시 따르려고 노력한다. <설득의 심리학>을 쓴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는 이를 ‘일관성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개인의 원칙뿐만 아니라,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해 일하는 동안에는 다른 조직과 경쟁하거나 협상을 하는 경우에 조직원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원칙을 고수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원칙을 상대에게 주장하기 보다는 상대로 하여금 그가 속한 조직의 원칙을 따르도록 유도하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것이 훨씬 수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는 조직 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리더와 부하직원의 갈등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리더는 자신의 조직관리 원칙을 작성해 부하직원들에게 제시하고, 부하직원은 나름대로 자신이 조직원으로서 수행할 원칙을 정립해서 공유하도록 한다면 서로 상대의 원칙을 따르도록 유도하면서 내부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의 달인인 리더는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 먼저 상대방이 얻고자 하는 것을 명확히 파악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본능적으로 알아채든, 사전조사를 해서 알아내든, 질문을 해서 눈치를 채든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방이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바를 먼저 알아낸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제시할 지를 고민한다.
이에 비해 협상의 하수들은 대부분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낼 지만 고민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는 사람과 협상하겠는가? 아니면 자기 것만을 달라고 우기는 사람과 협상하겠는가? 이 부분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은 쉽지 않은 비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의 공무원 연금개혁과 관련한 여야 협상이 전개된 과정을 보면 ‘협상의 원리’ 혹은 ‘협상의 정석’과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송기태(논설위원/채스우드 두란노교회 담임목사)
한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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