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첫 단추
우리 주변에는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소위 ‘협상의 달인’인 리더들이 많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비법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협상에서 이기는 것을 내가 더 많이 가지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똑같은 대상을 가지고 나누는 경우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집에 레몬이 하나 밖에 없는데 형제가 서로 자기가 하나를 다 가지겠다고 한다. 이럴 경우 레몬을 가지는 쪽은 이기고 못 가지는 쪽은 지게 된다. 그러니 둘 다 만족스러운 해결책은 생각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여기에서 협상의 기본 원리를 알면 문제가 쉬워진다. 먼저 협상을 위해서는 요구(Position)와 욕구(Interest)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요구는 상대방에게 주장하는 것이다. 위의 레몬 가지기에서 동생의 요구는 자신이 레몬을 가지겠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욕구는 그 요구를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생은 왜 레몬을 반쪽이 아닌 하나를 다 가져야 할까? 형은 또 무슨 이유로 하나를 원할까? 바로 이 욕구에 초점을 맞추어야 문제가 풀어질 기미가 보인다. 레몬 나누기에서 형의 욕구는 레몬 향수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반쪽으로는 곤란하고 하나가 다 필요했던 것이다. 반면 동생은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마시려고 했다. 동생도 마찬가지로 레몬 반쪽으로는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고 통째로 하나를 가져야만 했다. 
 
처음 레몬 하나를 가지겠다고 요구할 때에는 양쪽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해결책은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욕구를 알고 나니 뭔가 해결이 될 수도 있을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협상에서는 요구에 집착하지 말고, 먼저 상대방의 욕구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협상의 첫 번째 원리이다.
 
욕구에 집중할 때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지만 그 자체가 해결책은 아니다. 상대의 욕구만 충족시켜준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상대의 욕구와 나의 욕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해결책이 필요하다. 이처럼 양쪽의 욕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해결책을 협상에서는 창조적 대안(Creative Option)이라고 한다. 창조적 대안을 찾는 것이 협상의 두 번째 원리이다. 
 
앞서 레몬 나누기의 경우, 형이 레몬 향수를 만들려면 껍질만 가지고 만들 수 있다. 동생은 알맹이만 있으면 레모네이드를 마실 수 있다. 그러니 해결책은 껍질을 까서 알맹이는 동생에게 주고, 껍질만 형이 가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적 대안이다. 얼마나 간단한가? 협상의 원리를 모르면 서로 자기가 가지겠다며 싸우겠지만 협상의 원리를 이용하면 두 형제 모두 만족스러운 해결책인 창조적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윈-윈 협상을 위해
사실 이런 상황이 협상을 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어려운 고민이다. 이런 경우에는 상대방이 원하는 욕구가 아닌 또 다른 가치를 주는 욕구를 찾아야 한다. 이런 또 다른 욕구를 숨은 욕구(Hidden Interest)라고 한다. 숨은 욕구를 찾아 자극하는 것이 협상의 세 번째 원리이다. 숨은 욕구는 상대방이 예상하던 것이 아닌 의외의 것이라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실제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한 선수의 연봉협상에서 숨은 욕구가 큰 힘을 발휘했다. 2008년 시즌이 끝나고 LA 다저스의 유격수 라파엘 퍼칼은 자유계약선수(FA)가 됐다. 그는 처음 자신을 메이저리그에 들어오게 해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러브콜을 받고 이적을 거의 결심했다고 한다. 연봉도 더 많이 받고, 자신이 데뷔했던 팀으로 옮기는 것은 퍼칼이 오랫동안 바라던 일이기도 했다. 
 
이런 퍼칼의 마음을 바꾼 것은 낡은 소방차 한 대였다. 퍼칼은 도미니카 공화국의 작은 마을 출신으로 어렸을 적 꿈은 소방관이었다. 그런데 실제 퍼칼의 고향에는 소방차 한 대도 없었으며, 의용대원들이 픽업트럭에 물통을 실어 불을 끄러 다니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다저스는 바로 이 퍼칼의 어렸을 적 꿈과 고향에 대한 생각을 겨냥해 LA의 한 소방서의 지원을 받아 소방차 한 대를 퍼칼의 고향으로 보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 소방차에는 퍼칼의 등번호인 15를 새겨서 퍼칼의 어릴 적 꿈을 대신 이루어주는 제안이었던 것이다. 
 
다저스의 이 제안은 결국 퍼칼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는 다저스와 3년 재계약을 맺었다. 이처럼 협상 상대가 원하는 욕구 말고도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또 다른 욕구를 숨은 욕구라고 한다. 상대방은 자신이 원하던 욕구보다 더 큰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숨은 욕구를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협상의 원리를 제대로 적용하면 협상 당사자인 양측이 모두 만족하는 윈-윈 협상이 가능해진다. 바로 윈-윈 협상을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 네 번째 협상의 원리이다. 만일 내가 이기려고만 한다면 상대방에게 좋지 못한 뒷맛을 남기게 되고, 이 뒷맛은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바로 이 뒷맛을 잘못 관리한 대표적인 경우다. 승전국들은 전쟁을 일으킨 독일에게 너무 과중한 전쟁배상금을 요구했다. 결국 무거운 짐을 진 독일에게는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의 교훈을 이해한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은 다른 대응방식을 찾았다. 특히 승전국의 대표격인 미국은 독일에게 전쟁배상금을 30만 달러만 물렸다. 뿐만 아니라 독일이 빨리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도록 마샬플랜을 실행했다. 
 
요구가 아닌 욕구에 집중하기, 창조적 대안 찾기, 숨은 욕구 자극하기, 윈-윈 협상하기 등의 4가지는 협상을 쉽게 원하는 방식으로 이끄는 기본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압박하지 않고 설득하기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나의 기준과 원칙을 상대에게 적용시켜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물론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상대방도 자신의 기준과 원칙이 있어 나의 원칙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나의 원칙을 말하기보다 상대의 원칙을 찾는 것이 오히려 쉬운 경우가 많다. 
 
만일 우체국에 가서 커피 한잔을 달라고 한다고 해 보자. 우체국 직원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마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에 시골의 한 우체국에는 할아버지들이 심심찮게 커피를 얻어 마시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 우체국 직원들이 특별히 친절해서일까? 그렇기도 하지만 할아버지들의 작전이 좋았다. 
 
당시 우체국에서는 ‘무엇이든 다 되네’라는 컨셉으로 광고를 냈다. 유명 배우들이 나와 찍은 광고에서, 예금, 보험, 신용카드까지 다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광고의 끝부분에 코믹하게 커피 한잔을 달라고 하는 장면이 들어있었다. 할아버지들은 바로 이 부분을 공략했다. 즉, 광고에서 보니 우체국에서는 커피를 주더라는 주장을 내세웠던 것이다. 본사에서 공중파 방송을 통해 내세운 규칙이라는 할아버지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커피를 얻어 마실 수 있었다. 이처럼 상대방이 한 말이나 제시한 규정들을 잘 살펴보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을 찾을 수 있는데, 이런 방법을 일컬어 상대의 원칙과 규정으로 설득한다고 말한다.
 
양보전략
협상에서 절대 속지 말아야 할 양보에 관한 말이 있다. 바로 “공평하게 반반씩 양보하자”는 것이다. 이런 제안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첫 제안을 말도 안 되게 강하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지고 보면 반반씩 양보할 때 자신에게 이롭다는 판단인 것이다. 물론 이쪽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제안했다면 그리 문제가 안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이런 말에는 절대 속지 말아야 한다.
 
또 절대로 공짜로 양보하면 안 된다. 자신은 한 번의 선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상대방은 당연한 양보로 받아들일 위험이 있다. 만일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에 준하는 것을 받아라. 하지만 상대방도 쉽게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상대에게는 그리 큰 가치가 없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좋다. 
 
가격협상을 하는 사람들이 하는 실수 가운데 하나는 반드시 협상을 성사시켜야만 한다는 압박감이다. 이런 마음을 가졌음을 상대가 안다면 절대로 양보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니 언제든 협상을 그만둘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언제 협상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해야 할까?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양보를 하다가 협상을 포기할 시점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협상에서는 이런 시점을 유보가격(reservation value)이라 한다. 마음속에 유보가격을 준비한 사람은 협상을 유연하게 진행할 수 있다. 적당하게 양보도 하면서 강하게 나갈 수 있다. 이미 손해가 안 되는 거래 방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용산전자상가에 노트북컴퓨터를 사러 간다면 수첩에 어떤 사양에, 얼마라는 것을 적어서 들고 가야 한다. 가격 협상을 하는 중에는 반드시 유보가치를 확인해야 협상에서 유연하게 하면서 강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유보가치를 정하지 않고 노트북컴퓨터를 사려고 하면, 자신이 원하는 가격보다 비싸게 주고도 원하는 것보다 낮은 사양의 컴퓨터를 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유보가치만 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유보가치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상대방의 양보가 적당한지를 판단하기가 쉽다. 상대방의 유보가치를 알면 처음부터 그 부근에서 제안을 하고 양보하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상대방이 생각하고 있는 이익이 발생하는 시점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막상 협상테이블에 나가서 급박하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미리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 어떤 제안을 할지 충분히 준비를 하고, 사전 리허설을 통해 연습도 해 봐야 협상테이블에서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다. 준비하고, 준비하고, 또 준비해야 한다. 단언컨대 협상에서 준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리더가 탁월한 분석력과 비상한 기획력, 비범한 업무처리 능력이 있어도 효과적인 협상력을 통해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우호관계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조직 사회에서 튼튼한 성공의 기반을 마련하기 어렵다.
 
송기태(논설위원/채스우드 두란노교회 담임목사)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