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와~ 함성 소리 속에 중학생인 막내가 두 명의 수비수를 따돌리고 깊은 센터링을 날렸다. 골은 아슬아슬하게 골네트를 벗어나 골로 연결되진 못했다. 멋있는 골인 것 같아 나를 비롯한 주위의 부모들이 와! 하며 모두 일어났는데 참으로 아쉬운 장면이다.
 
그런데, 어? 어? 센터링을 날리는 순간에 상대 수비수와 충돌한 막내는 옆으로 넘어졌는데 일어나질 못한다. 순간, 나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악, 마지막 계단을 헛딛으며 나의 오른쪽 발목이 삐끗 넘어지고 말았다. 뒤따라 내려오던 아내는 나를 지나 막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간다. 오른쪽 발목을 안고 넘어져 있는 나를 보지 못한 모양이다.
 
팀 코치는 막내를 부축하여 벤치로 향한다. 코치가 막내의 오른 팔을 받치고 나가는 것을 보니 오른팔을 다친 모양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앰뷸런스를 부를 정도의 큰 부상은 아닌듯하여 내가 운전했다. 내 오른쪽 발에도 통증이 오는데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고맙게도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 바로 수속되어 X-Ray 촬영을 했다. 한 시간 쯤 지나 결과가 나왔다. 오른쪽 팔목이 부러졌다. 의사는 심한 것은 아니라고, 축구하는 아이들의 흔한 부상이니 6~8주 정도 지나면 괜찮을 것이라고 하지만 아내와 나는 걱정이 태산이다. 오른쪽 팔에 깁스붕대(Plaster)를 했다. 4시간 여 만에 병원을 나서는 막내에게는 아프고 짜증나는 모습이 확연하게 나타난다. 
 
“어? 당신은 왜 그래요?” 
 
아내가 이제야 내가 어정, 어정 걷는 모습을 발견한 모양이다. 내 오른쪽 발목이 그사이 퉁퉁 부었다.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돌아오는 차 속, 아내는 여기 저기 전화하며 애를 썼으나 결국 월요일에야 예약된 모양이다. 막내는 열심히 시합하다가 다쳤으니 아주 떳떳한 모습이다. 반면 나는 어쩌다 계단을 헛디뎌 다쳤으니 아프다는 소리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운전만 했다.
 
집에 돌아오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 한다. 나의 마음도 어두워진다. 아내의 표정도 어둡고 막내의 표정도 어둡기만 하다. 막내는 목욕해야 한다며 아버지 대신 엄마를 선택했다. 오른쪽 팔 전체를 깁스붕대 했으니 스스로 목욕할 수는 없었다. 막내의 짜증 소리가 밖으로 들려온다. 아내는 막내보고 옷을 다 벗으라고 다그치고, 막내는 한사코 벗지 않겠다는 실랑이가 계속된다. 결국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목욕하는 것으로 최종 합의(?)되는 모양이다. 
 
한참 후, 목욕을 마친 막내가 퉁퉁거리며 오른팔을 힘겹게 왼손으로 받치고 나온다. 욕실을 정리한 후 나오는 아내의 표정이 예상과 달리 어둡지는 않다. 
 
“내참! 내가 지 놈 고추 좀 보면 어때서……. 나 참, 기가 막혀…….”
 
아내의 투정은 투정이 아니 것이 분명하다. 막내는 심사가 뒤틀렸는지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나는 거실에 않아 식탁 의자 위에 방석 네 개나 쌓아 놓고 오른 발을 올려놓았다.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진다.
 
잠자리가 바뀌었다. 
 
오른쪽 팔이 깁스붕대 무게로 인하여 좁은 침대에서 자다가 팔이 위험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넓은 침대로 옮겨야 한다는 아내의 판단에 따라 막내가 내 자리를 차지하고 나는 막내의 방으로 밀려났다. 그냥 자기 방에서 자겠다고 고집 부리던 막내도 수긍이 갔는지 자신의 베개만을 들고 들어와 내 자리를 점령했다. 밀려 나오는 나는 초라하나 밀고 들어오는 막내는 당당하다.
 
막내의 싱글 침대에 누었다. 아내가 들어와 오른 발을 올려놓고 자라면서 방석 세 개를 내밀고 나간다. 나 혼자 누워있는 막내의 방안은 조용하기만 한데, 안방은 왁자지껄 소란스럽다. 막내의 비위를 맞추려는 누나와 형이 아양을 떨고 있는 듯, 삼남매의 목소리가 떠들썩하게 들린다. 가끔 아내의 목소리도 밝게 들려온다. 평소 나를 꽤 챙긴다고 생각했던 딸아이도 이번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하기야 막내는 역전의 용사같이 환호 속에서 넘어져 다쳤지만 나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오버 액션으로 튀어나가 홀로 넘어졌으니 어디에도 다쳤다고 명함을 내밀수도 없다. 
 
오른쪽 발목이 쑤셔온다. 진통제 두 알을 삼켰다. 따지고 보면 통증은 내가 더 심한 것 같은데 식구 중에 누구하나 관심을 주지 않는다. 
  
막내가 그라운드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본 순간, 좀 더 침착하게 천천히 내려갔어야 했는데, 왜 그리 호들갑을 떨었을까…….
 
장석재(2012 재외동포 문학상 수필 대상 수상, 현재 <수필 동인 캥거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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