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주 듣는 방송 중에는 인텔리젼스 스퀘어라는 토론 프로그램이 있다. 원래 영국에서 시작된 ‘옥스포드식 토론 프로그램’이 미국에 이식된 내용이다. 프로그램은 주로 한 문제를 놓고 두세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두 개로 나뉘어져 한번씩 찬반 주장을 내세우고, 서로의 도전에 답을 한뒤, 청중들의 투표로 우열을 가린다. 필자가 최근에 주목하게 된 대상은 ‘하나님이 없어도 종교는 필요한가?’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여기서 알랑 드 보통이라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작가가 등장한다. 그는 종교가 던지는 예술적 영감, 개인이 받는 위로 만으로도 종교는 사회에 필요하다고 주장 한다. 종교적 건물이나 의식, 그리고 보편적인 도덕적 공헌에 근거해서 종교, 특히 서구에서의 기독교는 여전히 유지될 가치가 있다는 것이 그의 관점이었다. 이에 반박하는 내용들은 주로 두가지로 나왔다. 하나는 리차드 도킨스 류의 ‘종교는 사회적 갈등과 지적인 마비’를 조장하는 악한 도구라는 공격이었고, 다른 하나는 현재 종교, 특히 서구의 기독교는 조직과 전통에 치여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로 인도하는 데 장애가 됨으로 종교가 필요 없다는 주장이었다. 한마디로 신앙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기 보다는 기성 종교가 가진 문제점을 보면서, 아무리 멋진 건물과 의식, 전통으로 꾸며져 있다 해도, 본질을 잃은 종교는 아예 없어지는 편이 낫다는 식의 이야기다. 겉으로 보면 가장 기성종교, 특히 서구 기독교의 존재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도리어 가장 하나님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문제는 우리네 신앙이 실제로 알랑 드 보통식의 수준에 머무를 때가 많다는 점이다. 조금만 교회가 시끄러워지고, 성도간에 갈등이 생기고, 사역에 부담이 생겨도 손을 훅훅 털어버리고 떠나기 일 수다. 내 필요, 특히 실제적인 필요나 편의에 방해가 되면 그동안 보여준 선한 표정들은 사라지고 멱살을 잡고 자리를 떠나기도 한다. 교회를 떠나지 않는 사람들도, 신앙의 본질 때문에 그러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흔히 드는 이유가 관계인데, 나같은 교역자들에겐 가슴 아픈 일이지만, 목회자와의 관계를 이유로 교회를 지키는 사람은 도리어 드물다. 좁은 교민사회 안에서 수년간 한 교회에서 만든 대인 관계들을 다시 새로 시작하기가 너무 번거롭고 피곤하다는 생각에, 아무리 설교에 문제가 있고 사역이 잘못 돌아가도 그냥 무관심으로 ‘내 할 일’만 한다. 양쪽도 건강한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알랑씨가 잘 모르는 것은, 하나님이 예상 외로 훨씬 살아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도전하시는 분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의외로 투명하게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점도 그렇다. 한편으로는 종교가 각 개인들에게 이 하나님을 만나고 더 깊은 관계를 하는 데 도움이 안된다면, 단연코 거부하고 문제로 삼아야 한다. 동시에 종교가 가지는 기능을 단순히 자기 편의나 위로로 보는 관점은 결국 그것이 줄 수 있는 더 큰 가능성을 놓치게 된다. 이점에서 결국 전도의 문제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결국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출발점이 되지 않고서는 종교생활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리가 없다. 목적과 수단이 제대로 관계하고 있는 지를 돌아봐야 할 때다.
 
김석원(교육전문사역단체 under broomtree ministry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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