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생존의 비결 
미국의 저명한 한국학자 제임스 팔레 교수는 한국사의 이상하고 특이한 사실 하나로 중국의 여러 왕조가 한반도의 왕조를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었는데도 그렇지 않은 점을 들고 있다.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크기로, 절대 함께 있어서는 안되는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엄청난 국력 차이, 불리한 지리적 위치에도 고려가 생존한 비결은 ‘실용외교’에 있다.”
 
그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한반도 왕조에서 보인 ‘실용외교’ 노선을 들고 있다. 즉 중국의 왕조에 도덕적 충성을 고수하는 대신 중국대륙의 세력변동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외교 방식이다. 우리 역사에서 실용외교가 가장 구체적으로 발휘된 때가 거란이 고려에 처음으로 침입한 993년에서 992년까지이다. 바로 이때 소위 ‘협상 리더십’의 대표적인 사례인 ‘서희의 외교담판’이 등장한다. 전쟁에 직면한 당시 고려는 왕과 신하들이 활발히 회의를 통해 국론을 결정하는 전통을 갖고 있었다. 그럼, 그때 그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서기 993년 거란이 고려를 침입했다. 의기양양한 거란의 소손녕이 일갈했다.
“80만의 군사가 도착했다. 만일 강변까지 나와서 항복하지 않으면 섬멸할 것이니 고려의 군신들은 우리의 군영 앞에 와서 항복하라.”
 
거란으로부터 항복을 요구받은 고려의 조정은 혼비백산했고, 고위 관리들은 갑론을박 논쟁으로 뒤덮였다. 거란에 항복해야 한다는 투항론(投降論)과 서경(평양) 이북의 땅을 거란에 주자는 할지론(割地論)이 대두했다. 다른 듯 보이는 이 두 논쟁은 80만 대군의 거란을 이길 수 없다는 공통 결론에 이른다. ‘맞아 죽느냐, 굶어죽느냐?’의 차이일 뿐 결국은 둘 다 ‘비참하게 죽는다’는 말이나 같다. 어전회의에서 거의 할지론으로 국론이 결정되려는 순간, 서희가 강력히 반론을 제기했고 이지백이 서희의 견해에 동조했다. 
 
서희 : “우선 거란이 왜 고려를 침범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파악한 뒤에 대응해야 할 줄로 아옵니다. 만약 항복해야 한다면 ‘한 번 싸워보고 난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않은 줄로 아오니다.”
성종 : “누가 거란 진영으로 가서 언변으로 적병을 물리치고 만세에 남을 공을 세우겠는가?”
 
서희 :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소인이 비록 부족하오나 전하의 명을 어찌 받들지 않겠나이까?”
이리하여 성종의 명을 받아 서희가 협상에 나섰다. 그러나 서희가 협상에 나서기 전에 1,2차 협상이 있었고, 안융진 전투가 있었다.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살수(청천강) 근처 봉산군까지 침입하였을 때 서희는 봉산군을 구출하기 위해 출전하였다. 여기서 소손녕의 고려 침입에 대한 요구 조건을 분석하여 고려조정에 협상의 가능성을 제안하여 성종과 대신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이몽전에게 제 1차 협상을 하게 했고, 안융진 전투 후 장영에게 제 2차 협상을 하게 했다. 이어 서희가 직접 제3차 협상을 하여 외교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는 성과를 도출해 냈다. 지금부터 그 과정을 살펴보자. 서희가 얼마나 탁월한 협상의 리더인지 알 수 있다.
 
대륙의 야망을 꺾은 협상 리더십
목숨을 내걸고 적진에 뛰어들어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고 기선제압, 역사논쟁, 핵심조건의 교환 및 마무리단계까지 성공시킨 협상과 실용외교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고려사〉에 기록된 서희와 소손녕의 회담 내용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소손녕은 이 회담에서 거병의 목적이 두 가지 임을 밝힌다. 첫째는 옛고구려의 영토가 거란에 속하니 이를 돌려줄 것과 둘째는 송과 단교하고 거란에 복속하라는 것이었다. 거란은 옛 고구려의 영토를 현재 점유하고 있고, 고려는 신라를 계승한 것이니 고구려와는 무관하다고 했다.
 
그러자 서희는 고려의 국호와 고구려의 옛 수도인 서경(평양)도읍이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명백한 증거이며,  거란이 점령하고 있는 요동의 동경도 고려의 영토임을 내세워 상대를 압박한 다음, 현재의 여진이 거주하고 있는 압록강 주변 땅을 고려에 주면 송과의 관계를 끊고 거란에 복속할 수 있다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서희와 소손녕은 7일간 회담했다. 서희는 타협안을 제시하면서 말미에 “장군이 내 말을 천자에게 보고하면 어찌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는가?”라고 하여 회담결과를 최고 정책결정자에게 상신해 확정짓자는 절차상의 제안까지 해 놓은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소손녕은 마침내 서희의 타협안을 거란 성종에게 보고했다.
 
성종은 “고려가 이미 화의를 청하니 이를 받아들여 마땅히 병을 철군시켜라”고 회신을 보내왔다. 이로써 고려는 항복 또는 할지의 상황에서 오히려 강동 6주의 영토를 확보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소손녕에게도 득이 있었다. 당초 정벌의 위압을 가한 목적이 고려와 송의 통교를 막는 것이었기에 그는 싸우지 않고도 목적을 이룬 것이다. 이른바 협상으로 이룬 ‘윈윈 외교담판’ 이었다. 
회담이 합의에 이르자 소손녕은 서희에게 축하연을 제의했다. 이에 대해 서희는 “우리나라에서는 잘못한 일이 없었지만, 귀국의 대군이 멀리까지 동원되어 왔기 때문에 지금 임금이나 신하 모두가 황급히 무기를 손에 잡고 전쟁터에 나온 지가 여러 날이 되었다. 어찌 잔치를 즐기겠는가?”라고 사양하였다.
 
그러나 소손녕은 “두 나라 대신이 만났는데 어찌 친목의 예식이 없을 수 있겠는가?”라고 굳이 요청하여, 이를 수락하고 매우 즐겁게 놀고 잔치를 마쳤다. 서희는 거란의 영에서 7일 간 체류하다가 고려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희가 돌아올 때 소손녕이 낙타 10마리 말 100필, 양 1,000마리, 비단 50필을 예물로 주었다.
 
투항론과 할지론이 난무했던 상황에서 서희는 협상을 통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첫째 일방적인 항복을 하지 않는 점, 둘째 북진정책을 유지하면서 강동 280리를 수복한 점, 셋째 전쟁을 피함으로써 백성들의 고통을 줄인 점, 넷째 오늘의 국경선에 기여한 점 등이다. 그가 소손녕과 외교담판을 했을 때 나이는 52세였다.
 
994년부터 3년동안 수많은 전투를 하면서 압록강 이동 280리 땅에 8개의 성을 쌓고 강동 6주를 개척하면서, 얼마나 노심초사 했던지 병을 얻어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협상의 리더, 서희는 위대한 전략가요 실천가였으며 국가와 백성을 사랑했던 애국자였다. 그래서 그가 세상을 떴을 때 임금도 백성도 통곡했다.
 
협상의 시대, 협상의 리더
21세기 기업경영은 협상 위에 존립한다. 기업 간 사업제휴, 노사간 임금협상, 정부규제에 대한 대응, 각종 비즈니스 의사결정을 위한 상호 설득의 과정, 이 모든 것들이 협상과 직결되어 있다. 기업 경영은 협상으로부터 시작되고 협상의 실행과 함께 사업이 전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협상의 원칙만 잘 알고 지켜도 기업은 위기조차 기회로 전환해 낼 수 있다.
 
협상의 주요 원칙은 위기를 위기로만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일방적으로 수세에만 놓여 있는 경우란 없다. 특히 비즈니스에서 이루어지는 ‘갑을’ 관계는 더하다. 상대가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된 것은 달리 말하면, 이 편에서 얻어야만 할 무엇이 있다는 신호다. 그런 상대에게도 피치 못할 아킬레스건은 있다. 상대의 힘을 오히려 유도 기술처럼 역이용해 쓰러뜨릴 줄 아는 기업만이 역경의 순간을 기회로 전환해 낼 수 있다. 물론 이때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이 있다. 상대도 이 협상에서 무엇인가를 얻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  따라서 협상은 ‘윈윈’을 전제조건으로 한 치열한 상호 설득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 경영이 날로 글로벌화 되어가고 있다. 
 
기업은 고객불만, 정부규제, 시민단체와 환경단체 등 다양한 이해집단의 요구와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다. 이때 리더에게 중요한 것은 협상하고자 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자칫 곪아가는 상처를 방기해 두었다가는 위기는 기회로 전환되는 게 아니다. 그 자체가 더 큰 위기를 증폭해 낼 수 있다. 
 
서희의 협상에서 배우는 교훈이 먹혀들어가는 대목이다. 서희가 거란의 소손녕과 외교담판을 벌인 것은 지금의 외교협상과 빼닮았다. 한미 FTA협상, 한일 어업협정, 쇠고기 시장개방 협상, 외규장각 도서반환 협정 등을 경험하면서 21세기 한국은 서희와 같은 협상 리더가 필요로 함을 절감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의 관계가 향후 한국의 국가이익을 결정할 수밖에 없으며, 견제와 균형을 통한 독자적인 위상 확보에 한국의 앞날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적 통찰력과 폭넓게 협상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고 확고한 소명의식으로 무장한 서희와 같은 협상 리더 더욱 필요하다.
 
송기태 (논설위원/채스우드 두란노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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