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틀’을 바꾼 협상리더십 
한국 외교역사에서 숨겨진 보화 같은 인물로 조선 후기 청나라와 국경회담을 진행했던 이중하를 들 수 있다. 그는 1846년에 태어나 1882년에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안변부사로 재직하던 1885년에 ‘토문감계사(土門勘界使)’로 임명되어 청나라와의 1차 국경회담에 조선 대표로 참석했다. 이후 1887년에 재개된 2차 회담에서도 조선 측 협상대표를 지냈다. 그는 불리한 국제정치 상황과 청나라의 강압적인 요구 속에서도 슬기롭게 대처하여 국익을 지켜낸 외교관이었으며 뛰어난 협상가였다. 그의 협상의 원리를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에 나오는 ‘생각의 틀’이란 개념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1885년의 1차 국경회담은 조선의 요구에 따라 추진됐다. 당시 간도 지역에는 자연재해와 관리들의 학정을 피해 생활하는 조선인의 수가 늘어나면서 청나라와 마찰이 빈번했다. 청나라는 간도의 조선인에게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조선 정부를 압박했다. 그 말의 요체는 그곳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청나라 국민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조선 정부는 백두산정계비에 기록된 토문강과 두만강 사이의 간도가 조선영토임을 주장함으로써 그곳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보호하고자 국경회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정세는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상태였다. 자연히 군대와 함께 조선에 들어온 원세개가 마치 총독처럼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니 국경회담이 조선 정부의 뜻대로 진행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청나라는 이 기회에 두만강 국경선을 분명히 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였다. 
 
회담을 유리하게 이끌어간 두 글자
이 회담에서 이중하는 백두산정계비에 기록되어 있는 토문강이 송화강의 지류임을 주장했다. 반면에 청나라 대표는 두만강 상류 물줄기 중 가장 남쪽에 있는 서두수 국경론을 제기하여 당연히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중하는 청나라 대표의 ‘생각의 틀’을 조선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시켰다. 그 결과 청나라 대표는 완전히 조선 측 주장에 동조하지는 않았더라도 최소한 자기 논리의 맹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돋보이는 것이 이중하의 협상리더십이다. 당시 이중하는 백두산정계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비면에 ‘봉지(奉持)’ 글자는 즉 강희성조(康熙聖祖, 청나라 황제 강희제)의 성지입니다. 훤히 빛나는 새김이 옛날(千古)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라고 정계비에 대한 조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수사학에서 강조하는 ‘생각의 틀’이라는 관점에서 이를 접근해 보자. 청나라 대표는 “먼저 강이 있고서 뒤에 비석이 있었던 것”이라는 말로써 산천을 국경으로 삼는 국경획정의 일반론을 통해 이중하를 공격했다. 반면에, 이중하는 청나라 대표의 논리체계를 청나라 황제에 대한 봉건적 충성심의 기준으로 공략했다. 이로써 청나라 대표의 ‘생각의 틀’에 균열이 발생했다. 정계비에 새겨진 ‘봉지’라는 두 글자 때문에 정계비는 단순한 비석에서 황제의 의사로 그 의미가 변화했다. 이후 청나라 대표는 정계비의 내용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순간 이미 이중하는 이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비록 결론이 내려지지는 못했지만 회담은 이중하의 리더십에 따라 진행되었다.
 
“내 머리 자를지언정”
1887년에 재개된 2차 국경회담에 역시 주변 여건은 이중하에게 매우 불리했다. 무엇보다 이중하는 이전의 논지였던 송화강의 지류인 토문강을 더 이상 국경으로 주장할 수 없었다. 고종이 청나라로부터 영토 확장을 시도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이중하는 두만강 지류인 홍토수를 국경으로 삼겠다는 논지를 폈고 청나라 대표는 홍단수를 주장함으로써 회담은 결렬되었다. 두만강 상류의 물줄기는 북쪽으로부터 홍토수, 석을수, 홍단수, 서두수가 있다. 과거 1차 회담 때 이중하가 두만강이 아닌 송화강 물줄기를 주장했고, 청나라 대표가 서두수를 주장했던 것과 비교할 때, 외견상 두 나라는 견해차를 많이 좁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협상이 결렬된 것은 외교적 실패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을 다시 ‘생각의 틀’로 풀이하면 이중하의 협상리더십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청나라 대표는 백두산정계비에 명기된 토문강을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하는 이중하에게 이제 거꾸로 조선 국왕에 대한 충성의 관점에서 두만강 국경인정을 강요했다. 
“눈앞의 이익만 바라보고 뒷일을 도모함을 구하지 않으면, 마땅히 국가에는 끝없는 환란이 있게 되고 백성들에게는 헤아릴 수 없는 우환이 있다.”
 
이런 말로 양보를 종용하는 청나라 대표에게 이중하는 국경문제에 임하는 신하의 자세를 강조함으로써 약소국과의 협상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청나라 대표의 ‘생각의 틀’을 깨뜨렸다. 먼저 이중하는 단호한 주장으로 국경획정은 회담의 대상이 아님을 천명했다. 
“3백년 간 원래 정한 경계는 본래부터 전과 같은데 다시 어찌 한마디 말로 분별하겠습니까?”
이에 대해 청나라 대표가 이중하를 윽박지르며 타협을 종용했다. 그러자 이중하는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나라의 강토는 축소할 수 없소이다(吾頭可斷 國疆不可蓄)”는 그 유명한 말로 국경회담에 임하는 신하의 입장을 피력했다. 
 
여기에서 청나라 대표의 ‘생각의 틀’이 흔들렸다. 영토문제에 있어서 양보한다는 것은 신하된 자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이중하나 청나라 대표 모두는 상대방의 주장에 양보할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회담 성과를 논하기 전에 이중하의 이런 결사적인 노력은 조선인들이 터를 잡고 있는 북간도 지역에 일정기간 청나라 관원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오늘날의 조선족 사회가 형성되는 기초가 마련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중하의 협상리더십에는 상대방에 대한 철저한 사전준비가 전제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리더가 협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협상상황을 포착해야 한다. 협상상황이란 협상상대를 만나기 전, 이중하처럼 “머리를 잘려도 강토를 축소할 수 없는” 자신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과 사전조사를 통해 상대방의 요구를 아는 것이다. 협상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협상은 거의 실패한다. 이중하는 비석의 글자 하나까지도 세세히 조사하여 자기의 양보할 수 없는 미션을 주장하는데 활용했다. 
 
핵심 쟁점에 정조준
리더는 항상 협상의 현장에 있기 마련이다. 협상을 잘하는 리더가 되려면 무엇보다 협상 관련자가 누구이며 쟁점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협상은 둘 혹은 그 이상의 협상자들이 특정한 쟁점에 대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협상 관련자가 많아지고 쟁점이 복잡해도 협상 관련자와 핵심 쟁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협상 관련자와 핵심 쟁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정조준 해야 전략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그리고 협상의 대안과 압박요인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협상에 임할 때 다양한 대안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 그 대안에는 거래를 포기하고 협상장을 떠나는 것부터 제 3자와 협상하는 것, 기다리면서 관망하는 것 등 매우 광범위하다. 대안이 좋으면, 협상이 결렬되어도 다른 좋은 대안을 가진 곳과 거래하면 된다. 압박 요인은 일종의 임계점(Break Point)으로, 상대가 관망하는 대안을 버리도록 압박해서 합의나 철회 등의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 압박 요인은 협상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거나 강수를 두는 데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 다음은 이해관계와 교환(흥정)하기이다. 협상자와 중요 협상 관련자가 누구이고, 그들의 대안이 무엇인지 훤히 꿰었다면, 이제는 상대의 이해관계와 상대가 수용할 수 있는 교환이 무엇인가에 대해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해관계는 자신의 주요 관심사이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에게는 덜 중요하지만 상대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을 파악해 기꺼이 양보하는 것이다. 즉 나의 가치를 위해 상대의 가치를 파악해서 그것을 만족시켜주므로 쌍방의 합의점을 모색하는 것이다. 
 
대안과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나면 정보에 집중할 차례이다. 특히 상대가 나에 대해 아는 것보다 내가 상대에 대해 아는 것이 더 많을 때 정보의 가치가 빛나는 법이다. 협상 상대보다 적은 불확실성으로 협상에 임한다면 협상 과정을 지배할 수 있다. 뛰어난 인수합병 전문가인 로버트 아이엘로는 이렇게 주장했다. 
 
“협상은 정보의 고지를 선점하는 것이다.”
 
송기태 (논설위원/채스우드 두란노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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