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게 하고, 들어주라
닐 래컴(Neil Rackham)은 9년 동안 협상가들을 연구했다. 그는 협상가들을 뛰어난 협상가와 평범한 협상가로 나눈 후 100개 이상의 협상 사례를 토대로 이들 사이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뛰어난 협상가들은 평범한 협상가보다 21% 더 많이 질문을 했고 협상과 관련된 내용을 10%나 덜 이야기했다. 
 
심리학자 캐티 릴젠퀴스트(Katie Liljenquist)는 상업용지의 매각 가능성을 두고 협상을 벌이는 실험을 진행했다. 판매자가 어떻게 하면 서로 조건을 맞출 수 있을지 구매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조건에서는 평균보다 협상 성사율이 42%로 뛰어 올랐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보험, 의약, 금융, 제조업 등 거의 전 분야에서 구매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행위가 더 좋은 협상 성공률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두 사례에서 공통적인 것이 무엇인가? 상대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이다. 덧붙여 상대의 말에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것이다. 여기에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추임새가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이는 바로 리더가 협상의 현장에서 실패한 듯해도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오는 비결이다. 
 
경영전략 교수 이타이 스턴(Ithai Stern)과 제임스 웨스트팰(James Westphal)은 미국의 350개 대기업 CEO들이 어떻게 이사회 임원(리더)까지 올라갔는지를 연구했다. 그 결과 핵심적인 경쟁력 중 하나가 ‘조언을 구하는 행위’임을 알아냈다. 이들은 팔로워 시절 상사와 대화할 때도 단순히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 칭찬과 함께 조언을 곁들었다. 결국 상사들은 조언을 구하는 이들을 추천할 확률이 높았다.
 
질문하고 조언을 구하면 왜 이렇게 큰 효과를 발휘할까?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James Pennebaker)는 여러 소그룹으로 나누어 고향, 출신 대학, 직업 등 각자 선택한 주제로 사람들과 15분 동안 대화를 하게했다. 15분 후, 그 그룹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물었다. 이야기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그 그룹이 더 마음에 들었다고 답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그 그룹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고 했다. 
 
결국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에게 호감을 갖게 되며, 나아가 듣는 이를 더 많이 안다는 착각까지 한다. 게다가 듣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에 대해 말을 하게 되면 누군가에게 설득 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다음 대통령 선거 때 투표할 계획인가라는 질문 하나로 투표 참여율이 41%나 올라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누군가에 6개월 안에 새 컴퓨터를 살 것인지 물으면 그가 정말 컴퓨터를 살 확률이 18%가 올라간다고 한다. 말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설득 당한다는 느낌을 별로 들지 않으며, 상대방에게 많은 거부감을 갖지도 않는다. 또한 자기가 한 말에 책임감을 져야겠다는 압박감을 받는다. 심지어 질문 의도에 ‘그렇다’가 아니라 ‘아니다’라고 답했을 때조차도 질문 의도대로 갈 확률이 높다는 연구도 있다. 
 
결국 말을 많이 할수록 누군가(가장 크게는 자기 자신)에게 설득을 당하기 마련이다. 결국 협상을 잘하는 리더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설득하게 함으로써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데에 선수이다. 약점을 드러내고 실수를 감추지 않으며 질문하고 조언 구하며 타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경청하는 탈권위주의적인 리더는 협상의 명수가 된다. 이것으로 리더는 ‘겸손한 승리’를 얻을 수 있다.
 
들었으면, 이해하라
협상자들의 현재 또는 미래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부분의 리더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협상은 윈윈의 이해관계에 근거하기보다는 입장에 근거한 투쟁이다. 입장에 근거한 협상은 대개 여러 가지 조건을 일괄적으로 묶은 패키지 형식으로 결말지으면 도움이 된다. 패키지로 묶는 일괄 협상은 쌍방의 입장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합의점을 대부분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이 키우기와 파이 나누기의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것은 크기가 정해진 파이를 놓고 단지 공정하게만 분배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서로 파이를 키운 다음에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파이를 나누려고 하는지 그 차이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협상가들이 고정된 파이를 놓고 제로섬(zero-sum)의 협상에 집착한다. 제로섬의 협상은 내가 얻는 만큼 상대방이 잃어버리는 협상을 말한다. 이런 협상은 ‘승패(win-lose) 협상’이다. 물론 이것은 이상적인 협상 형태가 아니다. 세상에 바보나 자선사업가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자신이 ‘손해 보았다’ ‘완패했다’ 마음이 드는 굴욕적인 협상을 하겠는가? 설사 손해 본 협상도 ‘내가 이겼다. 잘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으면 절대로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협상은 고정된 파이만 나누는 게 아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하지만, 상호보완적인 협상을 통해 파이를 키워 공동이익이 나도록 파이를 나누는 식으로 결정되기 마련이다.  
 
이해했으면, 줄 준비를 하라
리더는 협상상대를 만나기 전에 당연히 무엇이 필요한지를 미리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시뮬레이션이 검증해야 한다. 여기에서 ‘협상하는 리더’의 진면목이 나타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협상 과정에서 어떤 국면에 처해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먼저 협상자들은 탐색 국면에서 협상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잠재이익이 얼마나 클지에 대해 측정하고, 대안을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인지’ 아니면 ‘결렬시킬 것인지’를 결정한다. 협상자들이 협상을 하기로 결정하면, 협상을 위한 기본 규칙과 협상의 범위를 정하는 게임의 규칙 국면으로 넘어간다. 게임의 규칙이 정해지면 틀 짜기 국면이 시작된다. 이는 협상자들이 합의할 수 있는 기본 방안의 범위를 정하는 단계이다. 틀 짜기가 끝나면, 세부 항목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 국면의 초점은 헙상장에서 주고받는 제안과 역제안에 있다. 이 단계에 이르면 협상자들은 쟁점별 또는 여러 가지 쟁점을 포함하는 패키지를 통해 세부 사항을 조목조목 단도직입적으로 논의한다. 
 
둘째는 상대의 기대치를 파악해야 한다. 당신이 어떤 협상 국면에 있든지 간에 협상자들의 야심이 얼마나 큰지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협상을 통해 작고 점진적인 이익만 챙기려 하는 ‘좀비’를 가려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좀 더 야심에 차고 포괄적인 것(큰 진척이나 도약)을 얻으려는 인물도 있다. 협상자들이 가진 야심의 크기와 원하는 이익의 크기를 분석함으로써, 각각 얼마나 큰 리스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보상수준을 얼마나 원하는지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때로는 점진적인 협상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 이런 경우 상대방이 문제 삼은 내용들에 대해 직접 한꺼번에 해결하도록 포괄적인 거래를 내놓고 상대를 압박함으로써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셋째는 학습과 영향력의 문제이다. 협상자들은 상대가 내세운 입장과 그 이유를 통해 상대에 대해 ‘학습’하고, 자신의 입장과 그 이유를 내세움으로써 상대에게 ‘영향’을 주려 한다. 만일 연봉 협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자신에게 유리한 가격으로 상대에게 먼저 제안하는 가격을 앵커링(Anchoring) 효과라 한다. 앵커링 효과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먼저 제안할 경우(또는 역제안을 할 경우) 훨씬 유리한 결과를 얻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가 먼저 제안한 가격이나 저항가격에 강력하게 구속되거나 지배받기 마련이다. 보통 협상은 대개 최초의 제안과 최초의 반대 제안의 중간쯤에서 타협이 이뤄진다. 즉 학습과 영향력이라는 협상진행의 요소는 대립, 갈등, 양보, 타협의 과정을 겪으면서 쌍방 합의점에 이르게 된다. 
 
넷째로 협상자와 쟁점을 결정하는 것이다. 유능한 협상 리더는 미리 함께 협상하고 싶은 사람과, 협상하고 싶은 쟁점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말썽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좀비’는 도중에 내보내는 것보다 미리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가능하면 파이 키우기를 극대화하고, 관계를 잘 유지하며, 명예를 지키면서 파이 나누기를 할 수 있는 협상 파트너를 구해야 한다. 특히 쟁점들을 분리시켜서 개별적으로 협상할지, 아니면 보따리로 묶어서 일괄 처리하는 것이 좋을지를 판단해야 한다. 결국 개별적인 협상보다는 보따리로 묶어서 일괄 처리하는 것이 타결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서 흥정의 보따리가 클수록 다양한 쟁점의 조합을 만들어 양쪽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기 때문에 협상타결의 가능성이 커진다. 협상전략은 다양한 상황에 적합한 전략을 유연하게 활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협상의 핵심원칙은 서로의 ‘입장’보다는 ‘관심’에 초점을 맞추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요즘은 다들 받을 생각만 하지. 하지만, 협상 전문가들은 거꾸로 생각한다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게 뭔지를 항상 먼저 생각하지. 줄 것을 먼저 생각하기에 협상에 성공하는 거야. 주어야 받는다는 건,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룰이네.” - 레이먼드 조
 
송기태 (논설위원/채스우드 두란노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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