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골이라도”
“이 몸이”로 시작되는 옛 충신들(정몽주, 성삼문)의 단심가는 주군(리더)에 대한 팔로워의 애절한 표현으로, ‘백골’까지 언급된다. 골육이 부서지고 찢어지더라도 “임 향한 일편단심”은 변치 않은 덕목이다.     
이런 유형의 언어진화(혹은 퇴화)는 오늘날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세월의 더께와는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입에 자주 너무 자주 오르내리며 진화와 퇴화를 계속하며 생명력을 자랑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국회의원들이 지역구를 옮겨 출마할 때, 주홍글씨처럼 당연히 붙게 되는 ‘철새’ 딱지에 늘어놓는 궁색한 변명이요, 레퍼토리가 바로 이 말의 퇴화이다.  
 
“이곳에 뼈를 묻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당과 지역구를 선거 때마다 옮겨 다니며 출마하는 그 ‘철새들’을 향해 뼈있는 농담을 빼놓지 않는다. 
“의원님의 뼈는 얼마나 됩니까?”
 
죽으면 그 백골을 해체하여 지역구마다 고루고루 묻겠다는 말인지, 아니면 그냥 선거 때이니, 그런 변명이라도 안하면 표 떨어지는 소리가 폭풍보다 더 세게 들리니 그냥 한 번 해본 말인가? 필자는 그런 어록을 남긴 전직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여러 지역에 뼈를 나누어 묻혔다는 사례를 한 건도 발견하지 못했다. 최소한의 약속이라도 지키는 시늉이라도 내는 정치 지도자는 하나도 없었다는 말과 진배없다.
몇 달 전, 한국의 야당 당수는 선거 때마다 지니 너무 진부한 ‘분골쇄신’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멋쩍은지, ‘육참골단’(자기의 살을 베어주고, 상대방의 목을 자른다)이란, 중국 고전에는 나오지 않는, 일본식 사자성어를 데뷔시켰다. 이런 사자성어를 인용할 땐 권위 있는 고전에서 출처가 분명하고, 그 말의 유래가 드라마틱한 교훈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별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어쨌거나 리더는 화려한 말보다 그 말을 온몸으로 실현하는 엄격한 행동을 보여줘야 하는데, 물론 그 말 역시 ‘부도’내고 말았다. 리더가 타인에게는 한 없이 까다롭고, 자신이 한 말을 뒤집는 데는 식은 죽 먹기로 한다면 리더의 권위는커녕 자리보전도 늘 위협받기 마련이다.      
 
“내가 죽거든” 
정치 리더는 ‘유력 후보’에 그치지 않고, 선거의 선택을 받아 (의원, 혹은 대통령) ‘당선자’가 됨으로써 비로소 ‘리더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선거에서 패한 정치인은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보다 못한 신세가 된다. 선거에서 선택받기 위해서는 조직(Structure), 열성 지지층(Mania), 선점 효과(First Mover Advantage), 지지층 통합(Consolidation), 시대정신(New Value)을 오롯이 갖추어야 한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유력 후보는 될지 몰라도 ‘당선자’ 자리는 약속받을 수 없다.
 
이처럼 정치는 행위의 ‘결과’를 극단적으로 중시하는 분야이다. 선거에서 이기면 리더의 동선, 구호, 복장...등 모든 과정이 승리의 드라마로 설명된다. 패하면? 리더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까지 모두 ‘패인’으로 기록된다. 선거에서 패한 쪽에 비판의 쓰나미가 덮친다. 그러다 보니 처칠은 “나는 선거 때마다 수명이 몇 년씩 줄어들었다”라고 고백할 정도였다. 
 
선거에서의 선택을 위해 대부분의 정치 리더는 최상급의 언어, “목숨을 걸고 ...” “죽어도 ...”하며 생명까지 배팅하며 극단적인 언어로 현란하게 유권자의 귀와 머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나 그렇게 생명 걸고 쉽게 말한 공약들은 당선(혹은 낙선)과 함께 아침 이슬처럼 쉽게 증발하고 잊혀지기 마련이다. 누구 하나 믿으려고도, 실천하려고도 하지 않는 그 바닥의 언어들이다. 
 
그러나 “내가 죽거든 내가 살던 집을 헐어버리라”고 한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는 달랐다. 그의 집은 색 바랜 기와, 페인트 찌꺼기가 벽에 붙어 너덜거릴 정도이다. 100년 전 유대인 상인이 지은 그의 집은 내버려만 둬도 이윽고 주저앉을 정도로 낡았다고 한다. 60년 가까이 총리나 국부로 불렸던 사람은 75년을 이 집에서 살았다. 그만큼 유서 깊은 이 집에 대해 생전에 리 전 총리는 “침실 5개와 원래는 하인들이 사는 방 3개가 있는 넓기만한 집”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그는 “인도 초대 총리 네루나 영국의 위대한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집도 결국 폐허가 됐다. 집이 너무 오래돼 벽이 갈라지는 판이니 없어져도 자식들이 서운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청년 리콴유는 이 집에서 인민행동당(PAP) 창립 멤버 등 20명과 독립을 논했다. 싱가포르 독립 이후에는 당론(黨論)이 이 집으로 모였다. 집은 자연스레 싱가포르 정치의 중심이 됐다. 리콴유의 아들이자 현 총리인 리셴룽도 어린 시절 이곳에서 뛰놀았다. 2010년 반려자 콰걱추 여사가 사망하자 리 전 총리는 집안 구석구석에 행복했던 순간의 사진을 깔았다. 장례식 이후 여사가 재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오열했다. 이곳에서 노년기의 그는 식사와 운동, 신문 읽기와 공부로 이어지는 규칙적인 삶을 살았다. 폐렴으로 건강이 악화, 입원하기 전까지 지내던 곳도 바로 ‘옥슬리 집’이었다.
리 전 총리는 평소 내부에 골프장까지 갖춘 공관(이스타나)을 쓰지 않았다. 대신 이 추억어린 오래된 집으로 퇴근했다. 그가 서거하자 언론에서는 사망 이튿날부터 역사적 의미를 기려야 한다며 “유언을 따르지 말고 집을 보존하자”는 주장이 실렸다.
 
이웃배려
그러나 “내 집을 기념관 같은 국가적 성역으로 만들지 말고 헐라”는 리 전 총리 유언의 배경은 ‘이웃’이었다. 자신의 집이 그대로 남으면 (경호 문제로) 주변 건물을 높이 올릴 수 없어 이웃이 고통받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2000년대 초반 특파원으로 부임한 피터 한남 시드니모닝헤럴드 기자는 리 전 총리의 이웃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적(敵)이 많았던 리콴유의 집 앞으로 시위대가 자주 왔었고, 말년의 콰걱추 여사는 앞뜰에서 바깥을 응시하는 일이 잦았다”고 회상했다.
 
리 전 총리는 “지배층의 영혼을 정화하라”는 플라톤의 말을 신봉했다. 1959년 총리 취임 사진을 보면 리콴유와 각료 전원이 정장 대신 흰 셔츠와 흰 바지를 입고 있다. 청렴과 정직을 보이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후 56년간 정말 ‘생명 걸고’ 청렴 문제만큼은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총리 아들’을 둔 리콴유의 아버지는 일흔이 넘도록 작은 시계 수리점을 운영했다.
 
적자생존을 위해 ‘육참골단’이란 잔인한 말을 꺼내지 않아도, 집 한 채로 보여준 리더의 삶이, 비전과 핵심가치를 위해 골육을 어떻게 바쳐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피터 드러커는 “사람을 리드한다는 것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과 같다. 오케스트라단에는 수많은 연주가들과 각기 다른 악기들이 있지만 지휘자는 이 모든 것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고 했다. 정치 리더는 어쩌면 지역구, 혹은 국가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자리에 선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의 손끝부터 발끝까지, 머릿속부터 심장까지 그 움직임과 몰입의 정도는 연주자들에게 일일이 전달되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골육의 움직임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영혼이 깃든 움직임이어야 감동을 준다. 정치 리더 역시 세치 혀끝에서 나오는 미사여구가 아닌, 영혼이 깃든 한 마디, 그 한 마디를 삶으로 보여주기 위해 리콴유 전 총리처럼 영혼과 골육을 쏟아 부을 때 비로소 감동을 주기 마련이다.
 
송기태 (논설위원/채스우드 두란노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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