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의 차이, 광팬에서 혐오까지
먼저 고백부터 하자. 한때 필자는 그의 ‘광팬’이었다. 그러나 한 계기로 그를 극도로 ‘혐오’하며 의도적으로 그에 대한 관심을 잘라냈다. 여기서 ‘그’란 아직도 추모의 열기가 식어지지 않은 김영삼(이하 YS) 전 대통령이며, ‘한 계기’란 소위 ‘3당 합당’을 의미한다. ‘광팬에서 혐오까지’란 극대극의 산과 골짜기를 넘나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존재를 처음 알게된 ‘까까머리’ 학창시절, 귀공자 스타일의 얼굴에 당시로서는 희귀한 장발(장발을 ‘경범죄’로 엮어가던 시절이었다)로 사자후를 토하는 모습은 매력 포인트 만점이었다. 학교와 교과서에서는 ‘세계 최고의 헌법’으로 배우고 익혔던 유신헌법을 무차별로 공격하던 그 모습이 바람에 날리는 그의 헤어스타일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열강하는 철학자같기도 했다. 필자는 나중에 그의 전공이 철학임을 알고, 철학과로 진학하려는 유혹까지도 받을 정도로 광팬이었다. 
 
대학신입생 시절, YH 사태에 늠름하게 대처하는 그의 모습과 이어지는 (국회) 제명드라마 등에서 박수를 보내며 열광했다. 국회의원에 제명되면서 그가 남긴 연설이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명구로 우명하지만, 사실은 첫머리에 “절두산이 보이는 신성한 의사당에서 저들은 내 목을 잘랐지만... 잠시 살기 위대 영원히 죽기보다 영원히 살기 위해 잠시 죽기로 했습니다” 하며 감상적인 ‘그림언어의 비유’로 폐부를 찔렀다. 2.12 총선 당시 민추협 결성을 통해 선거혁명을 일으키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그는 한국 ‘민주화의 활화산’이 될 것으로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당시 유행어였던 ‘보통사람들’의 정치적인 상상력을 ‘한 계기’는 패닉상태로 몰아넣었다. 좋게 말하면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고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직행한 케이스이다. 그러나 그런 조작된 언어 이면에 숨겨진 것은 야합, 변절, 목적을 위한 수단의 정당화 ... 등 가장 추악한 언어로 주홍글씨를 붙여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정치 리더의 모습이었다. 
 
이런 연유로 필자는 그가 대통령이 되어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만인의 갈채를 받으며 한때 지지율 90%가 되어도 그에 대한 이미지는 바뀌지 않았다. 너무나 잘 알려진 그의 정치적 공과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여기서 이제까지 너무나 저평가된 그에 대한 모든 것이 재평가 되는 시점에 그의 리더십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저평가에서 재평가로
YS 리더십의 진수는 비전의 명료화, 과정의 단순화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평생 비전은 ‘민주화’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성취하는 과정에서는 그가 즐겨 쓴 ‘대도무문’이란 휘호처럼 여타의 군더더기를 자르고 갈고 걸러내 최대한 단순화 했다. 여기서 우리는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경구를 명심할 필요가 있다.
 
YS는 ‘민주화, 독재타도 군정종식’이란 선명한 비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정도로 집중했다. 리더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를 세우면, 목표가 마침내 리더를 이끌고 가기 마련이다. 세네카는 “항해사가 목적지를 모른다면 순풍이 불어도 도움이 안된다”고 역설했지만, 이를 역설적으로 말하면, 리더가 목적이 분명하다면 어떤 역풍, 강풍, 폭풍이라도 다 기회로 삼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는 YS의 생애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자신을 옥죄는 모든 사건들을 자신이 세운 ‘비전이란 목적지’로 가는 관문으로 인식했다. 정적들의 공격에도 끄덕하지 않았다. 3당 합당 이후 한 신문에서 내각제 합의문서를 공개하자 이를 ‘이면합의’에 대한 위약(도덕성)으로 몰아가며, 언론의 물줄기를 금세 바꿔버릴 정도로 뚝심 있게 몰아쳐 버릴 정도였다. 도덕성으로 따지면 그런 ‘이면합의’ 자체가 훨씬 비도덕적일 테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기 편리한대로 언론활용기술은 단연 신선급이었다.           
 
가택연금 등 최악의 조건에서 ‘민주화’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단식농성’이란 사생결단의 투쟁을 통해 세계의 이목을 한꺼번에 집중시키며, 당시 ‘권력의 초보자’들을 긴장시킬 정도였다. 리더는 때로는 험한 골짜기도 헤매게 된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표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YS는 비전을 성취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역경과 고난이 와도 ‘사색이 아닌 결단’과 ‘지식이 아닌 행동’임을 온몸으로 보여준 리더이다. 체 게바라는 “무언가를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지 않는 한 그것이 삶의 목표라는 어떤 확신도 가질 수 없다”고 한 말은 YS의 삶에 주석을 달아준 느낌이 들 정도이다. 
 
YS는 이 비전과 목표를 향해 가는데 모든 자원을 적절히 활용했다. 돈에 관한한 입력(Input)과 출력(Output) 같다고 할 만큼 개인적으로 치부하지 않고, 비전을 이루기 위해 사람에 투자했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언론인 중에도 ‘YS 장학생’이라 할 정도로 철저히 관리했다. 이 ‘관리’에는 버터(돈)가 발리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명확히 설정된 목표가 없으면, 리더는 사소한 일상을 충실히 살다 결국 그 일상의 노예가 되고 말기 마련인데, 평생 ‘민주화’란 분명한 목표와 그것을 성취해 나간 과정은 YS 리더십에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다. 한나 모어는 “목표를 보는 자는 장애물을 겁내지 않는다”고 피력했는데, YS의 생애가 꼭 그러했다.  
 
리더에게 강력한 비전은 행동할 수 있는 무대를 준비해준다. 리더의 목표는 일을 완성할 수 있는 에너지를 방출한다. 그리고 분명한 비전과 목표가 있을 때 팔로워에 분명한 동기부여와 인생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강력한 비전이 없다면 조직은 금세 한쪽으로 치우치고 만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고, 산만해지고, 지루해 한다.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원래 사명은 희미해지고 조직은 표류한다.
위대한 이들은 목적을 갖고, 그 외의 사람들은 소원을 갖는다. -워싱턴 어빙 
 
선택과 집중
YS의 생애에서도 예외 없이 드러나는 것은 비전의 ‘선택과 집중’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상대화시켰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집중은 정치, 전쟁, 무역 등 간단히 말해서 인간사의 모든 경영에서 최고의 비밀“이라고 했다. 
 
리더는 가치 있는 비전에 미쳐야 한다. 미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 ‘미쳤다’라고 말할 때도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정신병이 들었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옳다고 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 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명을 거는 것을 말한다. 가슴에 있는 불을 아무도 끌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리더는 고귀한 일에 제대로 집중하며 가슴이 뛰어야 한다. 그 일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일어나 몇 시간이고 그에 대한 ‘철학’을 역설할 있어야 평생의 꿈과 비전으로 알고 뜨겁게 집중할 수 있다. 비전이 없는 사람은 망한다고 했다. 그 비전을 발견하고 선택했다면 자신의 모든 정력을 온전히 몰입하고 집중할 때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고, 남이 걷지 못한 새 길을 낼 수 있다. 좋은 것을 보며 기가 막힌 길을 새로 내어 만인이 그 길을 걸으며 혜택을 볼 수 있다. YS가 평생 품어온 민주화에 대한 꿈, 자유에 대한 비전, 독재타도 군정종식의 목적에 사력을 다해 집중해준 덕분에 오늘 만인이 그가 닦은 길을 걸으며 혜택을 보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같은 양의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여러 가지 하찮은 일에 정력을 소비하고 만다. 나는 단 한 가지 일, 즉 그림에만 내 에너지를 소비할 뿐이다. 그림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은 희생될 것이며, 거기에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물론 나 자신까지 포함된다.” - 피카소
 
송기태 (논설위원/채스우드 두란노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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