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6일
 
멀어서 일년에 서너번 밖에 못가는 동네 채스우드에 도착했다.
 
막내 딸 아이의 한국무용 소고춤을 보기 위해 공연장 입구로 들어섰다. 
 
무료 공연이긴 하지만 채스우드 중심부에 있는 콩코스 홀에서 한다는 것이 호주동아의 힘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문화센터에서 하는 발표회 형식의 무대일거라는 상상외로 커다랗게 쓰여진 ‘제 1회 문화축제’ 배너를 보니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론 공연에 대한 수준이나 그 이상의 뭔가를 느끼게 해줄 거라는?공연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 대신, 편안하고 부담 없이 관람할 것 같은 느낌은 적중했던 것 같다. 분주한 관객들의 입장을 정리하듯 첫 무대를 차분하게 열어준 한 청년의 삶에 대한 의지와 결단을 들으며 한사람 한사람의 인생을 같이 들어주며 소중히 일궈가는 분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많은 도전이 생겼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자녀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는 건 참으로 대견한 일인 것이다.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유인상 선생님과 호주동아에 갑자기 무한 신뢰감이 생겼다.
 
뒤를 이은 백조의 호수 솔로 파스트루아를 보며 나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기도 했는데 기사 작위를 받는 지그프리트왕자 곁에서 축배의 춤을 추는 소녀가 아니라 마치 이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하는 백조 한마리처럼 오버랩 되어 보이기도 했다. 나풀거리는 발레복을 입은 아이들이 종종 걸음으로 나와 선생님만 쳐다보며 발레동작에 집중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귀여웠다. 또한, 선생님들의 안정감있는 인도와 아이들을 돌보는데 보여준 사랑이 넘치는 배려, 깔끔한 안무, 입퇴장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국무용의 백미는 아무리 봐도 아름다운 부채춤이리라. 아직 한국무용을 배우는 분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고운 자태의 여인들이 부채의 동선을 따라 물이 흐르듯 움직이는 모습은 다른 어느나라의 팬댄스 보다도 아름다웠다. 그 감동을 이어받은 설장고… 온몸의 핏줄을 따라 스며들어간 가락이 얹힌 이민생활의 체증을 내려 주고 있었다. “역시 우린 한국인이구나! 우리 가락이 이렇게 좋구나!”
 
소고춤을 출 막내딸이 나올 차례가 되니 엄마 마음이 더 두근거리고 긴장이 되었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쓸 조바위엔 꽃을 많이 달아야 더 예쁘다며 밤새워 손바느질을 하신 송민선 선생님의 기도처럼 꽃분홍 치마와 보라색 속바지,  연두색 꼬리띠를 묶고, 고운 조바위를 예쁘게 쓴 6명의 아이들이 저마다 소고를 손에 꼬옥 쥐고 뛰어 나왔을 땐 정말 깜찍하기 그지 없었다. 모든 세상의 엄마들처럼 나도 우리 아이가 제일 예뻐 보였다. 틀리지만 않았으면 하는 엄마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아이들은 꿈을 꾸는 나비들처럼 무대를 마음껏 날아다니며 자기 몫을 다해 주었다. 무사히(?) 마지막 인사를 하고 퇴장한 아이들의 뒷꼭지를 왠지 아쉬워 하는 와중에 조명이 꺼졌다.
 
조명과 함께 온 클래식한 드레스와 턱시도의 칸토포유가 특별출연으로 무대에 서니 거인 네명이 무대를 꽉 채운 느낌이 들었다. 피아노 소리에 맞춘 세 성악가의 노랫소리는 마치 프리즘을 통과한 세가지의 다른 색감처럼 각 사람의 독특한 개성을 느끼게 해 준 좋은 무대였다.
 
잠시 적막해 지는가 했더니 “둥…둥…둥…둥…” 북소리가 울려 퍼진다. 두드리고 또 두드리는데 그 소리들이 신기하게도 전혀 시끄럽지 않았다. 어깨에 신명을 실어 한껏 치켜 올린 팔이 채를 휘몰아 내리치면 둥- 하고 가슴 한복판이 뻐근해졌다. 뭔가 울컥한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시원해진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그동안 내가 이 호주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하며 촉을 더듬어 거슬러 올라가고 있을 때 뮤지컬 명성황후 중 ‘나 가거든’ 배경음악은 애절한 가사처럼 내 마음을 더욱 숙연해지게 만들어 주었다. 무대 위 그녀들의 몸짓도 슬픔으로 하나가 되어 가고… 
 
그런 관객들의 촉촉하게 젖어드는 공감을 깨워주기 위해서인지 사물놀이가 시작되었는데 귀에 익은 삼도 농악가락의 흥겨운 리듬이 어느새 앙금 같이 가라앉았던 마음들을 추스려주고 우리 안에 스러진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그래도 우리에겐 형 같은, 언니 같은 이웃사촌들이 있어서 저 집 숫가락이 몇개인지도 알만큼 친하게들 지내지 않는가? 어깨가 들썩이고 손으로 장단을 맞추다보니 예술적 환희가 무엇인지, 절정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점점 동화되어 가는 내가 느껴졌다. 정신이 없이 두들기는 것 같았지만 분명하고 단호한 어떤 방식이 호주란 나라에서 더 떳떳하게, 더 멋지게, 더 분발하고, 더 똑바로 살아야 하지 않겠냐 하며 호령하는 듯 했다.
 
보여지는 것의 단점은 예술인들에 대해 다 알 수는 없다는 것이겠지만 소리 하나로 얼싸안아진 느낌이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족함이 시드니에 생겼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며, 새로운 시드니 문화를 만들겠다는 호주동아일보사의 의지의 첫번째 결실이기도 하다.
 
27년동안 시드니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나부터 시작해서 내 뒤에 앉았던 어제 도착한 새내기 유학생까지 최선을 다해 무대를 빛내 준 주인공들을 주시하며 가슴의 일렁임을 느낀 시간이었다. 시드니 교민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 이번 공연에 대해 계속적인 찬사를 보낸다.
 
동과 서가 만난 것처럼 발레와 한국무용, 성악과 국악이 서로 다른 형식으로 보여준 무대였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던 것은 소통의 의지였고 그것은 이루어졌다. 11월에 만난 느낌이 잘 어우러진 멋진 무대였다. 내년 제 2회 문화축제가 마음에 벌써 들어와 있다.
 
장정윤(호주한인문인협회 회원 /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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