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도서출판 글벗 2015년 제6회 신인문학상 수상작입니다.-편집자 주)

                                                      
11월이다.  달력을 새로 한 장 떼어낸다.  11이라는 글자에 충실하듯 호주의 날씨는 본격적으로 더워지며 찌는 여름으로 돌입했다. 아침부터 예사롭지 않은 열기를 느끼며 이 층으로 올라갔다. 공원 쪽을 향한 마루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니 부모를 따라 온 아이들이 막 이슬 걷힌 초록 잔디 위를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다. 아직은 시원한 느낌으로 불어 드는 아침 바람결에 중국말이 들려온다. 아마도 어느 중국가족이 이른 시간부터 연날리기를 하러 나왔나 보다.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한강변에 연을 날리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내 아이들도 지금 집 앞 공원의 잔디 위를 달리고 있는 저 꼬마들만큼 어리고 연약했다. 넘어져 다치기라도 할까 봐 모든 신경을 아이들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놀이 기구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어서 정성스레 만든 소중한 연들을 혹시라도 잃어버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만 온 정신이 팔려있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있는 그 연들이 마치 연줄 잡고 뛰어다니는 내 자식 같다는 것을 깨달을 여유는 없었다.  귀하고 소중한 연일수록 대범하게 줄을 마음껏 풀어 주어야 한다는 이치를, 바람이 잘 불어주어야 본연의 진가를 뽐낼 수 있다는 깊은 진리를, 그 때는 미처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다.
 
중학교 때 좀 뒤늦은 유학길에 오른 딸은 어려운 언어장벽을 뚫고 한국에서 공부하던 방식대로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러나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학교를 나와 쉽게 취직하고 전문직으로 일하고 있는 것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아들에게 천재적인 바이올린  재능이 있다고  믿었던 남편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워보려고 동동거렸지만 호주에서 장학금을 받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아빠의 꿈이던 연주가가 되어 전 세계를 날아다니는 대신 제가 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 열심히 하고 있는 아들이 지금 내 곁에 있어줘서 더 감사하다. 
 
연을 만들기 위해 화선지를 자르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예쁜 그림도 그려 넣고 연대의 댓살들을 곱게 다듬었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댓살들을 풀로 붙이고 튼튼한 실로 준비한 방줄도 정확하고 꼼꼼하게 매 주었다. 다른 연들 보다 더 높이 띄우려는 일념으로 얼레 실도 남들보다 두 배 이상 더 감았다. 그렇게 공들인 연들처럼 남편과 내 인생을 송두리째 쏟아 부어 길러낸 아이들. 마음에 걸리는 부모님을 애써 잊어가며 먼 타국에서 길러낸 아이들. 소중하고 아까워서 그저 가슴 안에 꼭 부둥켜안고 어루만지고 있고만 싶었다. 
 
공원 위의 아이들이 얼레를 들고 본격적으로 연날리기를 시작했다. 아이들 엄마는 연을 들고 옆에서 함께 뛰어준다. 열기를 머금은 여름 바람에 빨강색 가오리 같은 연이 꼬리를 휘날리며 하늘로 둥실 떠올랐다. 그다지 바람이 부는 것 같지 않는데도 전력으로 달리고 있는 아이 뒤를 따라 햇빛에 반짝 빛나는 연이 살랑살랑 춤을 추며 잘도 날아간다. 
 
내 아이들도 각종 분야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며 훈풍에 돛 단 듯, 부모에게 늘 기쁨을 주는  예쁜 연들이다. 가끔은 아파서 떨어질 듯 위태롭기도 하고, 간혹 잘못 부는 바람 따라 뒤로 흔들흔들 몇 바퀴 휘어 돌기도 하고 바람의 횡포에 급강하하기도 했다. 엄마 마음대로 되지 않아 줄을 당겨 끌어내리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목이 꺾어지도록  연만 바라보며 뛰고 있는 사이, 연들은 내 머리 위 손 닿을 데가 아닌 한 층 더 높은 하늘로 성큼성큼 날아 올라갔다.  
 
공원에서 날기 시작한 연이 높은 하늘로 올라가자 먼 산 너머에 실 떨어진 연들처럼 떼 지어 날아가는 구름이 보인다. 평화로운 하늘나라 구경에 넋을 잃고 있자니 뛰던 아이가 넘어졌나 보다. 아이의 손에서 얼레가 떨어지기 무섭게 연도 같이 잔디 위에 나뒹굴었다.
 
한 때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투병하시다 돌아가시면서 우리는 아이들만 여기 두고 돌아가야 할지 고민에 빠졌었다. 망운지정에 괴로워하다 연이 아직 바람 타고 제대로 날아 보기도 전에 여기 떨어뜨려 놓고 한국으로 돌아갈 뻔하였었다. 혼자서기에 실패한 유학생들을 보며 가슴 아파질 때 마다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중국 엄마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연을 집어 들었다. 뛰는 아이를 따라 연이 뜨기 시작했는데도 엄마는 못 믿어서 내내 연을 잡고 같이 뛰어주고 있다. 멀리 창가에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 소리 질렀다. 걱정 말고 연 잡은 손을 놓아요. 연을 땅바닥에 툭 떨어뜨릴 용기가 있어야 연이 스스로 바람을 탈 수 있어요.
 
아직 높이 올라가지 못한 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함께 뛰어 주는 것은 처음 얼마간일 뿐, 연이 날기 시작하면 엄마가 할 일은 손 안의 얼레만 쥔 듯  만 듯 잊어버린 채 높아져 가는 내 사랑을 그냥 바라보아주는 것이다. 줄이 마음껏 풀어지며 내게서 더 멀어져야만 연들은 더 먼 세상을 꿈꾸며 높은 하늘로 비상할 수 있다. 저 하늘 너머로 너무 높이 날아 오른 연은 이제 더 이상 땅에 발 딛고 있는 엄마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 때 까지도 엄마가 연줄을 잡고 뛰어다니면 안 된다. 하늘을 바탕 삼아 수놓아진 한 폭의 날아가는 연 그림을 남들과 함께 감상하고 있으면 된다. 모든 이들이 구경할 수 있는 하늘나라 작품. 그 후엔 과감히 줄을 끊어내어 버릴 수 있어야 연은 드디어 가고 싶은 곳을 향하여 혼자서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큰 나무나 고층빌딩, 전깃줄이 없어서 걸릴 염려가 없는 곳, 다른 연줄들과 얽힐 일 없는 한적한 이 공원처럼 경쟁이 심하지 않고 안전한 나라 호주에 터를 잡고 연 날리기를 시작한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른다. 어느 수준으로 올라간 후,  연은 이제 누구의 연인지 구분할 수도 없다. 그냥 하늘 위의 점 하나가 된다. 얼마나 멋지게 맵시를 냈건 크게 만들었건 다 똑같은 점 하나이다. 맵시 보다는 기능적으로 잘 만들어진 연이 더 높이 떠서 멀리 날겠지만 결국은 좋은 바람을 타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 된 딸이 정든 도시를 떠나 더 큰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어 하고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는 아들도 어린 아들로서가  아니라 멋진 남자로 독립해보고 싶어 하는 눈치다. 봄 꽃 같이 싱그러운 향기를  내뿜으며 잔잔하고 평화로운 산들바람에 아름답게 날리고 있는 소중한 내 연들. 제발 돌풍이나 소나기가 이 아름답고 조용한 장면을 망치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내 품에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좋으니 더 멀리 더 높이 너희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날 수 있는데 까지 멋지게 날아가 버리렴. 그렇게 한없이 날아오르다가 그대로 하나님의 품 안까지 안전하게 날아가 버리렴. 줄이 모자라면 얼레까지 매달고라도 훨훨 날아가 버리렴. 
 
나는 끝도 없을 마음의 연줄을 자꾸자꾸 풀어내며 햇볕이 따사로운 여름 창가에서 미소 짓고 있다. 
 
이기란(퀸즐랜드 한인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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