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탕! 두발의 총성이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배터스트에 눈덮인 아침의 정적을 깼다. 
 
그날은 아주 특별했다. 겨울에도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 이곳에 함박눈이 쌓일 만큼 많이 내려 모든 사람들이  흥분과 기쁨으로 아침을 맞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눈을 실제로 처음 본다는 많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어우러져 그날 아침의 우리 학교는 축제 분위기였다.  
 
너나 할 것 없이 행복했고 기뻐했다. 하얀 눈이 배터스트에 가져온 위력은 대단했다. 
 
강렬한 태양빛에 아름답던 눈이 스르르 녹아 내릴 때 쯤 사고 소식을 들었다. 
 
바로 우리 동네였고 내가 항상 강아지 미키를 데리고 산책하는 코스에 있는 모던하고 멋스러운 집에서 총기사고가 난 것이다. 
 
산책할 때마다 보였던 그 집은 매일 달라지고 있었고 멋지게 리노베이션을 해나가고 있었다. 
 
특히 내 맘에 들었던 것은 이층에 커다랗게 있는 유리벽...그 집 주인은 실내에서 그 커다란 창을 통해 석양에 지는 태양의 장엄한 심포니를 매일 매일 구경 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 내심 부러웠던 터였다. 
 
미국이 아닌 호주에서 그것도 내가 사는 우리 동네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집에서 이런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은 나에게 큰 충격이였다.  
 
과학적 범죄 수사를 위해 경찰차가 그 집 앞에 있었고 집 주위엔 친지들로 보이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다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였고 침울해 보였다. 
 
죽음은 항상 어두운 그림자를 몰고 다닌다. 
 
서로 너무 사랑한 중년의 두 연인, 남자는 잘 나가는 비즈니스맨이었고 여자는 아름답고 능력있는 부동산 중개인이었다. 
 
그러나 질투심과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생명을 앗아간 것이라고 전한다.  
 
얼마나 허무한 결과인가.  
 
며칠 전 미키를 데리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 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동안 부동산 시장에 나온 적이 없었던 집이었는데 죽은 두 사람과 관련된 가족이거나 지인들이 살고 있었나? 왁자지껄한 그들은 아마 파티나 모임 중이었나 보다. 
 
십대들은 집 앞에서 수다를 떨며 깔깔거렸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로 집은 활기가 넘쳤다. 
 
바로 몇 개월 전 사고 당시의 침울했던 집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또 다른 삶의 에너지로 충만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이 실감났다. 
 
자기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는 것, 자살 소식은 올해 여기서 유독 많이 들었다.  
 
같이 근무하는 젊은 선생님이 두 명의 친구를 떠나보내야 했고, 내가 2년동안 가르치고 있는 한 학생도 그의 형을 잃었다. 
 
그러고 보면 자살이라는 사회문제는  비단 한국만이 심각하게 겪는 문제만도 아닌가 보다. 어떤 힘에 이끌려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일까?  
 
우리가 현재 이생에서 누리고 있는 크고 작은 수많은 축복들에 대해 감사하고 나보다 어려운 이들을 보살피고 돌보는 자신의 마음에 집중한다면 과연 이런 끔찍한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을까?
 
며칠 전 뉴질랜드로 여행을 함께 떠나는 남편과 아들을 공항에 내려주고 혼자 집에 내려오는 길이였다.  
 
내가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긴 터널을 통과해야만 했다. 
 
터널 입구에서부터 정체는 시작되어 있었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최근 베트남 여행에서 돌연 경험했던 공황장애와 흡사한 느낌이 온 것이다. 
 
마치 터널 천정에 닿을 것 같은 큰 트럭들 사이에 끼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버렸다.  
 
내 머릿속에서는 당장 차에서 내려 이 터널을 빠져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손발에 땀이 차고 심장은 두근거리고 머리는 어지럽고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이 순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바로 그때, 도망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있는 힘을 다해 붙잡고 들여다 보았다. 
 
약해진 나의 마음에게 좀 더 강해지라고 달래 주었다.  
 
이 순간은 곧 지나가리라고 스스로를 상기시켰다.  
 
이 터널 끝에는 밝은 빛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되뇌었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다 보았다. 
 
심지어 나를 압박할 것 같은 큰 트럭들. 차안에서 보이는 낯선 사람들, 그들이 나와 함께 이 세상에 태어나 함께 각자의 삶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나가는 동반자들이라고 바라보았다. 
 
물 흐르듯이 그들과 함께 이 순간을 흘러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남편이 평소에 즐겨 따라 부르던 한국 가요를 크게 틀고 가사를 음미하면서 앞만 보고 운전했다.  
 
어느 샌가 나의 마음에 평화로움이 찾아오면서 무서운 공황장애의 느낌은 사라지고 따스함이 느껴졌다.  
 
그러자 바로 터널 끝에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고 사랑의 힘을 빌리니 이렇게 좋은 평화를 맛볼 수 있는 것을…
 
송정아(글무늬 문학사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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