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영원하고 인간의 역사는 유한합니다. 인류는 영원하지만 인간 개체는 유한합니다. 그걸 인지하는 순간은 늘 쓸쓸하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마다 내뱉는 장탄식이 인생무상입니다. 인간의 무의식은 깨어서 똑바로 보기보다는 늘 꿈과 공상에 젖어 있기를 선택한다. 시간의 유한함을 잘 알면서도 영원성에 젖어서 살려합니다. 마치, 그렇지 않으면 에너지도 열정도 희망도 모두 사라질 것처럼 말입니다. 아픈 자각이 인간에게는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언제까지나 살 것 같으니까, 죽일 듯이 상처를 주고, 죽을 것처럼 상처를 받습니다. 관계 속에서 영원성을 확인하고픈 가녀린 욕망입니다. 유한하니까, 영원할 것도 아니니까, 지금 상처도 별 것 아닙니다. 그래서 시간이 약이라고들 합니다. 너무 취해있다가 그 덕에 너무 죽을 것처럼 아플 때엔, 잠시나마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아는 것도 우리 인류가 경험 속에 닦아온 지혜라고 보겠습니다. 날아가 사라져버리는 시간 속에 상처를 새겨넣을 수가 있겠습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또 다시 사랑해야합니다, 지금.

지금 사랑해야 할 것들을 기약도 없이 뒤로 미룹니다. 그리고 무상함을 느낄 때엔 어김없이 또 후회를 합니다. 지나간 그 시절에 그에게 참 좋다 고맙다 보고싶다 한마디 할 여유가 없었을까요.
우리들은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 모든걸 뒤로 미루는 습성이 있습니다. 다들 생존 경쟁을 위해 별 수 없다고,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합니다. 한술 더 뜨자면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들 생존하느라 힘겨운데 나만 주위를 돌아보면서 유유자적하는 여유를 부리는건 사치 또는 오만함이 아니겠느냐 말합니다.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사회적 동물이기에 모난 돌처럼 튀기 꺼림칙한 면도 있습니다. 다들 저렇게 여유 못부리고 생존에 힘쓰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노후에 쓸쓸하고 처량한 베짱이 신세가 될까 두려운 것도 무시 못할 이유입니다. 그래도 말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전화 한 통 편지 한 장 쓸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라 했습니다. 그건 그저 마음이 없는거라는 걸 모두가 인정합니다. 삶이 유한하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 순간 부귀영화에 대한 꿈은 구운몽처럼 사라지고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게 됩니다. 고맙다 사랑한다 보고싶다 한마디 하기 위해 남은 시간을 체크하게 됩니다. 유한하니까, 영원할 것도 아니니까, 지금 아끼지 말고 사랑해야합니다. 시간이 무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두를 일은 아닙니다. 이 순간이 이 순간으로 끝나는 건 아닙니다. 사랑 하나를 해도 더딘 사랑을 받아들이는 여유를 부릴 줄 알아야 합니다. 유한함을 알지만 더딤을 즐길 줄 알고 한결같음을 추구해야겠습니다. 급하게 타오르고 순식간에 식는 마음은 영원성에 젖어서 꿈꾸다가 쉽게 토라지고 상처받는 마음과 같습니다. 완벽함과 이상주의를 꿈꾸다가 조그만 인간적인 결함에도 쉽게 무너지는 경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 사이에 케미가 일어나고, 각자의 마음에 즐거운 균열이 생기고, 새롭게 변모 발달하고, 그럼으로써 두 마음이 합해져서 시너지를 일으키기까지의 과정이 어찌 금새 완성되겠습니까.

일 하나를 시작하거나 떠나도, 새로 사람을 만나거나 헤어져도, 사람의 마음 안에서는 흔들림이 있고 새로운 발견이 있으며 변화가 생기고 발달이 일어납니다. 모든 경험들은 인간 개체를 끝없이 진화시킵니다. 이런 마음의 진화과정을 스스로 알면서 진화하는 사람이 있고 모른 채 진화가 일어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 마음 안의 흐름을 읽고 진화과정을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지만 대단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이 자아의 발견입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겪을 진화과정에 대한 긍정적인 설레임과 자신감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시간의 유한함이 두렵거나 서글프기보다는 복되고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도 덤으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만약 인간의 시간이 영원해진다면 그게 바로 인간에게 주어질 가장 무서운 재앙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김진관 임상심리전문가(Clinical psychologist), 심리학 박사, 김진관 정신건강 클리닉(www.jinkwankimclinic.com) 대표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