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을 공부하자는 말만 들어도 이 글을 읽지 않기로 단념한 분도 있을 것 같다. 신학 그러면 부담스럽고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일반신앙생활 하는 사람과는 상관없는, 하면 자동적으로 목회자의 반열에 들어가는 특별한 자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요즘에 신학 공부하는 분들이 꽤 많다. 이런 저런 이론들을 알고나서는 그동안 내가 믿은 내용이 좀 유치하게 느껴지고, 조금 뒤부터는 다른 모든 사람의 신앙수준도 한심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물론 성장통일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신학 공부가 필요하다. 여기서 공부하자고 외치는 신학은 위에서 말하는 그런 신학이 아니다. 일반신앙생활과 상관없는 신학, 일반인들은 근접할 수 없는 상아탑 속에서나 이해되는 이론들을 모아놓은 지식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신학도 나름대로 필요한 부분이 있겠지만, 신자가 자기의 신앙을 위해 반드시 씨름해야 할 신학이 아니다.

여기서 ‘꼭 공부해야 할’ 신학이란 ‘나의 신앙을 꼼꼼히 점검하고 반성하고 정리하는’ 신학이다. 기독교 신학은 원래 ‘사도들에 의해 전해진 신앙 내용의 설명’, 그리고 ‘이미 초대교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잘못된 신앙 내용에 대한 반박’에서 출발했다. 이런 신학은 교회가 가진 신앙 내용에 대한 질문과 답을 구하는 과정이다. 이런 신학은 복음과 성경읽기를 통해 기대하는 것처럼, 더 체계적으로 나를 돌아보며 죄를 더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 붙들고, 내 삶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도록 돕는다. 이런 신학은 내 신앙을 시작하게 만든 신앙고백의 내용을, 더 분명하게 이해시켜주고, 내 삶에 어느 부분에 씨름할 것이 빠졌는 지를 비춰지고, 이것이 다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인정케 하고, 하나님께 더 의지하게 한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누가 신학공부가 필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모든 성도는 나름대로 ‘이런 신학’적 훈련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이정도로 충분한가? 그리고 우리 주변의 신학들로 이런 필요로 제대로 채워지고 있는가? 

실제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신학은 이런 신학과는 거리가 좀 있어 보인다. 우리가 말하는 신학은 이제 ‘신학’의 중심주제가 아니라 ‘변증’이라는 또 다른 부가 학문의 주제로 떨어진지 오래다. 실제로 근대 신학의 주류는 기존의 교회와 개인의 고백을 비판하고 부정하고 도전하는 방향에서 주로 이뤄져 왔다. 물론 나름대로 그 안에서도 인간사회에 대한 심오한 깨달음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자신과 존재에 대한 더 깊은 혼란과 의심이 더 오래 우리를 쥐고 흔드는 것으로 끝나기도 한다. 자신과 교회를 돌아보는 비판의 혜안을 허락할 때도 있지만, 내 힘에 의지해 발버둥치는 신(新) 바리새인으로 우리를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이런 신학은 날카로운 비판력이나 지적 만족은 있지만, 우리가 신학에 대한 관심을 두기 시작한 이유 자체를 허무는 신학이다. 이점에서 자기파괴적이다.

이 때문에 전문 신학자 중에서도 신학이 더 많이 교회와 신자들의 고백과 삶 가운데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모든 학문세계가 그런 것처럼, 학교와 현실이 너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아직 소수고, 현실은 현실은 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너무 자기만의 세계에 안주해 있는 장면이 더 흔하게 목격된다. 그래서 교회는 더 단순한 교육만으로도 안주하고, 교회는 전문가 훈련에 더 관심이 쏠린다. 아직 넘어야 할 괴리가 너무 멀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신학 공부하기를 포기해서는 곤란하다. 우리 신앙문화 속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왜곡과 변명이 구석구석 쌓여있다. 그러기에 그냥 믿고, 그냥 받아들이기엔 너무 많은 왜곡과 착각이 우리의 사고와 삶을 지배한다. 교회도 개인도, 제대로 신앙을 내 삶에 적용되고, 이웃과고민하고, 온 세상 전체에 답이 되길 원한다면 기본적인 것만 단순히 ‘믿고 치우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내 신앙내용이 정말 무슨 내용인지를 잘 점검해 보고, 혹시 오해가 없었는지 돌아보고, 그 내용을 제대로 내 삶에 적용할 방법을 더 찾아보고, 그것이 적용되는 범위와 의미를 더 고민해며, 실천을 격려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지금 일반적으로 교회가 하는 수준의 신학 공부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 많은 학교들이 해온 방향의 신학 공부로는 답이 되기 힘들다. 이 두 가지를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신학 공부가 필요한 때다. 

김석원 목사(로뎀나무아래 교육선교회, dave.sw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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