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프로이드, 융과 더불어 세 손가락에 꼽히는 정신분석학자입니다.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문하생으로서 정신분석을 접했고, 후에 프로이트 학파에서 빠져나와 자신만의 ‘개인심리학 Individual Psychology’ 이론을 집대성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후세의 심리치료자들과 학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심리학과 심리치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학자로서의 업적 뿐 아니라 아들러는 뛰어난 심리치료자이기도 했습니다. 아들러는 사람들 누구나 내면에는 타인들을 이롭게하고 인류에 기여하려는 욕구와 자질을 갖고 있음을 믿었고, 그 사람을 전폭적으로 믿어줌으로써 잠재력을 이끌어내도록 돕고자 했습니다. 그런 아들러였기에 그의 이론들에 더욱 끌리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는 아들러가 전하는 삶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아들러는 인생의 의미는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이라고도 했지만, 그래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속박(?)을 짊어지고 태어났기에 사람들과 동떨어진 채 혼자서 자유롭고 충만할 수는 없다고 믿었습니다. 
       
우리 인류는 어떤 다른 생명체와 비교해봐도 거친 정글에서 혼자 살아남기에는 턱없이 나약한 존재입니다. 한 개인의 능력은 극도로 제한적이기에 우리 인류는 스스로의 안전을 확보하기위해 협력하고 서로 의존해야만 합니다. 물리적인 위협으로부터의 안전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인간은 주위의 타인들과 항상 협력하면서 어울리지 않으면 잘 견디지 못하게 프로그램 되어있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자신의 행위가 타인을 이롭게 하거나 흡족하게 함으로써 서로 간에 유대감을 만들어낼 때 인간은 비로소 안정감과 만족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 만의 가치관에 몰입해서 아무리 노력한들 그 행위들이 주위 타인들을 이롭게 하지 못하거나 그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한다면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고 마음 안에 공허함만 가득 쌓이고 만다는 것이 아들러의 주장입니다. 
       
인류가 개발해 온 다양한 직업들은 모두 인류를 복되게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도로를 깔고 건물을 올리고, 질병을 낫게 하고, 먹거리를 제공하며, 신체를 보호할 장비를 만들고, 타인에게 위로나 즐거움을 선사하는 등의 일들은 모두 나약한 인류의 신체와 정신을 보호하고 강건하게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하는 것들이기에 떳떳한 직업으로서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 직업에 평생 종사해왔다는 것은 인류 전체로부터 감사패를 수여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직업을 통해 자기 존재의 가치를 느끼게 됩니다.
       
누구나 목마르게 추구할 만한 또 다른 가치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물질적인 풍요로움, 자기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좌지우지되는 강력한 권위, 경쟁에서의 승리감 및 우월감, 시간의 자유, 무거운 책임들로부터의 회피 등은 누구나가 늘 탐내고 부러워할 만한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아주 달콤하고 개인의 사욕을 한껏 채우기는 하지만 삶을 의미있게 느끼도록 해주지는 못하기에 아무리 얻고 쌓아도 더 갈증만 심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실로 우리는 그런 사례를 수없이 목격해왔기에 감히 반박할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의미있는 삶을 위해 필요한 또 한가지의 조건은 이성과의 유대감입니다. 아들러는 우리 인류가 남자와 여자라는 두 가지 성별로 이루어져 있음을 간과하지 않았습니다. 반쪽과의 안정감있는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공허함을 지울 길이 없다는 것은 두 번 강조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소크라테스처럼 세상 모두가 칭송해도 자기 곁을 늘 지켜온 반쪽이 자신에게 코웃음치는 상황이라면 씻을 수 없는 아쉬움이 있겠지요. 반대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곁의 한 사람 만은 자신을 알아준다면 세상 살아갈 힘을 잃지 않는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걸어가는 삶의 지향점과 가치관에 전폭적인 마음의 지지를 보내주는 동반자를 만난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겠습니다.
       
사회적인 협력이건 한 사람의 이성과의 유대감이건 결국은 한가지 메시지입니다. 사람이 혼자서는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개인의 삶이 자기 스스로 부여하는 가치에 따라 결정되고 움직이겠지만, 그래도 그 삶의 지향점이 주위 사람들 모두를 이롭고 복되게 하는게 아니라면 그 삶에서 궁극적인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 마음에 아들러의 사상이 전해지기를 희망합니다.

김진관 /임상심리전문가(koreanclinic@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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