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이라는 공간은 언뜻 권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그곳을 찾는 관람객은 내심 진지하다. 하지만 정작 미술관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친구처럼 편안하고 결코 지루하지 않은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그러니 미술관 앞에 주립이 붙든, 국립이 붙든 그곳을 관공서 가듯 불편하게 느낄 필요는 없다. 알고보면 여러가지로 참 놀기 좋은 곳이다. 오늘은 특히 NSW 주립 미술관이 왜 놀기 좋은 장소인지 생각해 보려한다. 

1. 연중무휴이다
파리의 루불이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등 대부분의 잘나가는 뮤지엄들은 일주일에 하루는 휴관한다. 맘먹고 갔는데 문이 닫혀있으면 얼마나 실망스러운가. NSW 주립 미술관은 오직 이스터 금요일과 크리스마스 데이, 일년에 이틀만 휴관한다. 딱히 갈 데가 마땅치 않은 1월 1일 같은 날 시드니에 혼자 남게 되었다면 마이어(Myer) 세일을 가거나 주립 미술관에 가서 피카소를 보면 된다.

2. 입장료가 없다
역시 대부분의 세계적인 미술관들은 유료이지만 NSW 주립 미술관은 입구에 있는 가드에게 ‘헬로’ 하고 인사하는것으로 충분하다. 간혹 특별전의 경우 전시입장료가 부과되지만 20불 정도의 착한 가격이고, 특별전보다는 무료 전시가 대부분이다.

3. 무거운 가방은 맡기고 홀가분하게
3층으로 된 주립 미술관 곳곳을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면 운동량이 꽤 된다. 입구 클록(Cloak) 서비스 데스크에 가방을 맡기고 한층 가벼운 몸으로 다녀보자. 작품 보호를 위해서도 큰 가방은 맡기는게 좋다. 물론 무료 서비스이다. 번호표만 잘 챙기면 된다.

4.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온도 뿐 아니라 습도도 조명도 최적의 컨디션이다. 물론 관람객 때문이 아니라 작품(?)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5. 무료 와이파이로 인터넷도 마음껏
갤러리 안에서 인터넷을 켜면 저절로 갤러리 사이트가 열리고 확인 단추만 눌러주면 인터넷에 바로 연결된다. 비밀 번호 이런거 필요없다! 그라운드 층과 카페, 레스토랑에서 특히 잘 터진다.

6. 나만의 공간과 작품을 정해서 놀기
나는 개인적으로 20세기 호주관을 좋아한다. 그곳 마가렛 올리( Margaret Olley)의 초상이 걸려있는 옆은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자연광이 그대로 들어온다. 혹시 비라도 와서 감성 지수가 올라가는 날이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울루물루(Woolloomooloo) 전망이 한폭의 커다란 풍경화로 다가온다. 수요일 저녁 늦게까지 여는 날의 야경은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그 앞 소파에 앉아 그림도 보고, 창밖도 보고, 생각도 하고 인터넷 검색도 하고…

미술관내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안셈 키퍼(Anselm Kiefer)의 ‘The drums in the river came alive, beaten by the lost ones, who were not supported by faith’ 라는 매우 불편하고 긴 제목의 콘크리트 설치 작품이다. 나 혼자서는 그냥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고 부른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해도 굳이 우리집 거실에 걸어둘 필요는 없다. 갤러리에 놓아두니 알아서 최고의 환경에 걸어주고 보험도 들어주고 정기적으로 관리도 해주니까 마냥 편하고 경제적이다. 발상의 전환은 역시 유익하다. 나의 애장품 ‘천국으로 가는 계단’은 한동안 지하 1층에 걸려있다가 지금은 창고에서 쉬고 있다. 다시 갤러리 벽면에 걸리는 날에는 군대갔던 애인이라도 돌아온 듯 반가울 것이다.

7. 물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셔야한다
주립 미술관에는 럭셔리한 전망은 기본이고, 호주의 스타 요리사 맷 모랜(Matt Moran)이 운영하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다. 음식, 서비스에서 차별화된 식사를 하고 싶으면 그라운드층의 치즈윅(Chiswick) 레스토랑으로 가고, 모던하고 쉬크한 분위기에서 가벼운 음식과 커피를 원한다면 지하 1층 카페로 가면 된다. 음식과 커피는 양이 좀 적은게 흠이지만 꽤 맛있다. 특히 여름이 끝나고 쌀쌀한 가을날 따끈한 펌킨 수프와 소도 빵은 매우 흐믓하다. 록스(The Rocks)에 있는 엠씨에이 현대미술관(MCA)의 카페 음식은 아…너무 맛없고 너무 비싸지 않은가. 

8. 셀카 놀이에도 그만
만약 당신이 셀피 매니아라면 갤러리만큼 사진 촬영에 최적화된 장소도 없을 것이다. 자연광과 인공광이 적절히 조화된 조명에, 무엇보다도 미술관 건물이나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하고 찍으면 상당히 ‘있어보이는’ 사진이 나온다. 요즘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술관내 사진 촬영을 허락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단 작품에서 충분히 떨어지고 플래쉬는 터트리지 말아야 한다.

9. 휠체어 액세스? 오케이! 
NSW 주립 미술관은 입구부터 미술관내 어디든, 휠체어로 접근이 용이하다. 모든 계단 옆에는 휠체어용 경사로가 따로 있으며 층을 옮길 때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미술관 도착시 필요하면 02 9225 1775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며 휠체어 대여도 가능하다.

10. 라이브 뮤직으로 귀도 즐겁게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라이브 뮤직 공연도 열린다. 공연에 관한 디테일은 미술관 웹사이트를 참조하면 된다. 특히 돌아오는 3월 9일 수요일 저녁에는 재즈 뮤지션 스튜 헌터(Stu Hunter)의 ‘무장 해재(Disarm)’ 공연이 30분 가량 무료로 진행된다. 맥시코 조각가 페드로 레이에스(Pedro Reyes)가 전쟁에 쓰이는 무기를 해체해 악기로 변신시킨 매우 의미있는 작품이 설치된 컨템퍼러리 관에서 진행된다.

11. 갤러리샵에서 쇼핑하기
카탈로그나 생활 용품, 스카프, 티셔츠 등 전시 관련 기념품을 살 수 있다. 미술 관련 서적으로는 일반 서점에서 구하기 힘든, 두고두고 볼만한 그림책(?)들도 많이 있다. 그 외 소품들은 선물용으로도 적당하며 독특한 디자인에 실용성까지 겸비해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 애들이 쏠쏠이 있다.  

12. 뭐니뭐니 해도 한국어 안내 투어  
매주 금요일 11시에는 한국어 작품 안내가 한시간 동안 진행된다. 7명의 커뮤니티 앰버서더(Community Ambassador)가 제공하는 이 무료 서비스는 세계 어느 미술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전문적이고 특화된 한국어 안내 서비스이다. NSW 주립 미술관에서 한국어를 비롯한 중국어, 일본어 안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언어 장벽을 최소화 하기위한 세심한 배려이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우리말로 듣는 작품 해설은 분명 그림 보며 놀기 좋은 이유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규미(NSW 주립미술관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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