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있어서 열등감이란 근원적인 문제라서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지극히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나아가서 열등감은 인류의 발전을 촉진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열등감은 모든 개개인의 심리적 안녕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수도 있습니다. 온갖 심리장애의 근간에는 열등감을 적절히 해소하지 못해 쌓여 온 감정들이 고여 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 중에 두려움, 외로움, 및 열등감에 가장 취약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사나운 동물들에 비하면 근육의 힘이 턱없이 부족하고, 작고 힘없는 동물들에 비하자면 동체 시력도 처참한 수준일 뿐더러 그리 날렵하지도 않으니 혼자서 제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습니다. 딱 하나, 지능이 우월한 덕분에 인류는 온갖 나약함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두려움과 열등감을 잊기 위해 인류는 서로 모여 군집을 이루고 협력하면서 공생할 방법을 모색해왔고 개개인 모두가 각자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인류의 지능은 끝없이 진화해왔고 이젠 너무 오버페이스하는 건 아닌지 염려스러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안전해지고 강력해진 인류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비롯한 심리장애로 시름하는 것은 역설적인 현상입니다. 눈부신 발전으로 열등감을 극복한줄 알았던 인류가 오히려 점점 더 깊이 열등감에 시름하고 있습니다.
       
갓난 아기는 육체적 능력과 지능이 거의 없는 한없이 열등한 존재입니다. 갓 태어난 생명체들 중에 가장 능력이 저조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사랑스럽습니다. 어떤 성격의 사람이건, 나이가 몇이건, 직업이 무엇이건, 오늘 하루의 일정이 사나웠건 순탄했건 상관없이, 아기를 받아 안았을 때엔 누구라도 어김없이 자애로운 미소로 아기를 대하게 됩니다. 아기가 울면 모든 이가 열일 제치고 아기를 살핍니다. 사람이 한 생애를 통틀어 극단적인 과보호와 초월적인 자비를 누릴 수 있는 시기는 오직 그때뿐입니다. 이유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라는 것, 그것 하나 뿐입니다. 가장 약한 존재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가장 약한 존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에 시기, 질투, 경쟁심이 담겨 있을리가 없으니까요. 가장 친한 친구의 무덤가에서야 비로소 그 친구에 대한 진심어린 칭찬을 할 수 있는게 인간이라지요. 사람이 너무 안되어 보일 때엔 그 사람에 대한 진심어린 칭찬과 격려를 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의 따뜻한(?) 본성입니다.
       
걷고 말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혼자서 강하게 우뚝서고 우월해져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게 많은 곳이 현대사회입니다. 강하고 우월해지지 않으면 고립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이 마음 깊숙히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강해지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들은 수만 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모두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타인들과의 협력 보다는 경쟁입니다. 겸허하게 열등함을 인정하기 보다는 감추기입니다. 아무리 그 노력이 고된 것이어도, 아무리 그 노력의 결실이 어마어마한 것이어도, 결국은 타인과 자신 모두를 긴장시킴으로써 고립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뿐입니다.
       
약하고 열등해도, 사실은 그렇기에,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잘 아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들이 특별한 걸 배웠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들은 다만 누르고 이겨서 우월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중압감을 배우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리 못나고 저리 실수를 했지만 그저 사람들과의 유대감이나 화목함은 끊어지지 않았기에 별다른 위기를 느끼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들이 애착과 유대감을 중요시하고 협력하는 태도가 몸에 밴 것은 노력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원하는대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이기는 것보다는 타인을 이롭게 해야 자신이 복된 관계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자신을 이롭게 하는 일을 게을리하지는 않습니다. 즉, 자신과 타인의 욕구 만족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본능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관계 속에서의 지나친 희생과 헌신도 결국은 우월감을 추구하는 행위입니다. 마음 깊이, 어쩌면 자신의 의식이 닿지 않는 깊이에, 난 이렇게까지 높은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람이라는 것, 인간 근원의 나약함을 극복한 초월적인 어떤 힘을 갖추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노력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고립을 불러옵니다. 자신이 채워지지 않는데 서럽고 서글프지 않을 수 없는게 인간이기에 그렇습니다. 게다가 자기 스스로 자신을 소홀히하는데 타인이 자신을 돌봐줄리가 없다는 것 또한 냉정한 현실입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내면 깊은 곳에서의 우월감의 추구를 타인도 어쩌면 무의식 중에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타인에게 받을 줄 아는 사람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까닭입니다. 타인에게 온정과 베풂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겸허함입니다. 
       
자존감은 열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의 소중함을 잘 알기에 우월해지고자 애쓰지 않는, 즉 열등과 우월이라는 주제에서 자유로워진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더 많은 분들이 마음 안의 속박들로부터 자유로워지시기를 희망합니다.

김진관 / 임상심리전문가(koreanclinic@hotmail.com)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