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한국 방문 시 리움 미술관에 가면 볼만한 것이 많다는 아내 친구의 조언에 따라 출국을 이틀 연장하고 특별히 하루 시간을 내서 한남동의 한 호화 주택가 언덕에 자리잡은 포스트 모던 스타일의 전시 공간을 방문했다.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미술관의 입장료 치고는 조금은 불쾌한 가격인 만 원짜리 관람티켓을 끊자 리움 직원은 들고 있던 니콘 카메라를 달라고 한다. 관람이 끝날 때까지 보관하겠단다. 뭔가? 이것도 삼성식 경영 스타일인가? 사진촬영을 금한다고 말하면 됐지 관람객의 양식을 전혀 믿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아무튼 하자는 대로 카메라를 맡기고 관람을 시작했다. 

이 곳에서 박수근 화백의 '아이를 등에 업은 소녀' 오리지널을 만나는 감격도 있었지만 전시된 작품 중 가장 볼만한 것은 영국 출신의 천재 화가이자 사업가이며 미술품 수집가이기도 한 데미안 허스트의 '죽음의 춤'이었다.  어쨌든 그 대형 설치 미술 앞에서 나는 시간을 가장 많이 보냈다. 스텐레스 스틸을 소재로 사용, 폭 40 센티 미터 길이 6 미터 높이 2 미터 가량의 유리장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좁은 폭의 선반을 수십 개 설치하였다. 선반 위에다 백 만개가 넘는 형형색색의 알약들을 가지런하고 얌전하게 진열한 것이 작품의 전부였다. 유별나게도 죽음이라는 주제에 집착하는 데미안 허스트의 죽음 시리즈 중 하나라고 한다. 지독한 불치의 병을 앓다 끝내 세상을 떠난 불행한 암 환자가 평생 복용했을 법한 각종 약의 총량이라고나 할까?

약이 결국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인지 치료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약이 인체 내에 폭력적으로 구사했을 엄청난 화학 반응을 ‘죽음의 댄스’로 상상해 낸 것 같다.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 앞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생명을 연장하거나 죽음을 피해 보려는 인류의 처절한 몸짓일 상징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의 병원 응급실과 수술실에서는 죽음과의 한 바탕 전쟁이 진행되고 있을 터이니...

데미안 허스트는 진열된 작은 약들을 통해서 관람객의 귀에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다. 

‘이 엄청난 약을 먹은 환자의 결국을 알고 싶니?’ 

‘결국 죽었다고.’

' 봐 죽었잖아. 또 죽었네. 돌아가셨습니다. 운명하셨습니다.’

‘약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춤이 아니야. 죽음으로 인도하는 춤이라고'

퇴관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안내 방송이 관람객들의 발길을 작품에서 하나 둘 떼어놓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데미안 허스트의 유리 진열장을 향해 눈길을 한 번 더 보내 보았다. 놀랍게도 유리장은 마침 전시관 창을 통해 밀려 들어오는 석양에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알약들이 모두 한 방향을 향해 모로 서 있었다. 

죽음의 무도가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최무길(수필동인 캥거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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