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쿠링가이에 가스등이 켜질 무렵이면 치폴로니 셰프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피자를 굽기 위해 진흙화덕에 참나무를 넣고 불을 지핍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은 나폴리 피자가 나오는 날이거든요. 오늘은 제일 먼저 일레인 아줌마가 연기로 자욱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피자가 나왔냐고 물으시네요. 일레인 아줌마는 전나무와 리키타 소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쿠링가이 국립공원 입구에 아담하게 지어진 이층집에 혼자 살고 계십니다. 

일레인은 얼마 전에 쉰아홉 생일을 맞이하셨으니 아줌마라고 불러드리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늘 양모 가디건에 플레어스커트 차림으로 가볍게 걸어 들어오시는 일레인 아줌마, 오늘은 브라질에 사는 아들한테서 생일선물로 파일럿들이 즐겨 입는 가죽점퍼와 몸에 짝 붙는 바지를 받았다며 그걸 입고 다소 터프하게 카페문을 열고 들어오셨어요. 많이 시장하신지 들어오시자마자 피자와 함께 에스프레소를 찾으시네요. 갓 볶아 낸 싱싱한 원두로 커피를 내서 갖다 드린 후 피자가 나올 때까지 옆에 앉아 아줌마의 지난 얘기를 들어 드렸습니다.  
     
아줌마는 여행 작가로 오란세이 크루즈를 타고 남태평양을 여행하던 중 그 배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남편을 만났다고 하시네요. 선장이 주최한 댄스파티에서 남편을 만났다니 영화처럼 무척 화려하고 낭만적입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평소에는 “카페 마담은 손님의 현실 속에는 나타나지 않는게 좋다”고 주장해 왔던 양 마담도 잔뜩 기대에 차서 얘기를 들으러 은근 슬쩍 옆에 와서 앉으시네요.

“크루즈 여행이 거의 끝나 호주로 돌아올 무렵이었어. 마지막 여행지인 피지 섬에 배가 닿았는데 거기서 남편이 프러포즈를 했지. 갑작스럽게 식을 올리게 되니까 마땅한 장소를 찾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더위를 피해 한 밤중에 별들이 총총히 떠 있던 바닷가에서 결혼식을 올렸지 뭐야. 선장은 주례를 서 주었고 몇몇 여행객과 승무원들이 하객으로 모래밭에 둘러앉아 박수 쳐주며 축하를 해주었지. 그날 밤 우리는 선장이 선물로 내놓은 샴페인 한 박스를 나눠 마셔가며 피로연까지 그 자리에서 다 치렀단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진 결혼식이지.”  

그리고 헉스베리 강물이 흘러가는 쿠링가이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남편은 계속 배를 탔고 아줌마는 글 쓰는 일을 그만두고 좀 더 벌이가 나은 간호사로 취직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줌마가 쉰 살 되던 해 갑자기 남편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하네요. 이어 얼마 안 있다 외아들인 필립마저도 브라질로 선교활동을 떠나고 나니 큰 집에 혼자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고 그래서 뭔가 보람 있는 자신의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비행기 조종훈련을 받아 경비행기 면허증을 따셨어요. 어려운 항공학 전문서적을 들여다보고 팔팔한 젊은이들 틈에 끼어 비행훈련을 받느라 면허를 따는 데 7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남편이 남겨놓은 예금과 은행에서 집을 잡히고 꾼 돈을 보태 4인승 세스나 경비행기를 샀습니다. 이어 벽지에 살고 있는 미혼모와 장애아동을 돕는 복지재단도 설립하셨습니다. 오늘도 아줌마는 화이트 클리프에 사는 미혼모를 찾아가 아이 장난감과 옷가지를 전해주고 왔다고 하시네요. 

“일주일에 한 번 학교선생님이나 의사, 간호사, 목수, 전기 기술자 같이 아웃백에서 필요한 분들을 섭외해서 모시고 떠난단다. 비행기의 빈 공간에 아웃백 사람들에게 나눠줄 책이나 의약품, 장난감, 옷가지 등을 빼꼭히 쑤셔 넣고 말이지. 다음에 갈 때는 청이도 함께 가서 도와주고 오면 좋겠구나. 지난번에는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엄마를 상담하러 갔다가 대니얼이라는 아이를 보았는데 행동이 이상해서 물으니 태어날 때 갑작스러운 발작이 있은 후 뇌성마비 장애를 지니게 되었다고 하더구나.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엄마 혼자서 애를 돌보고 살림하는데 참 힘들어 보였어.”

저 청이, 아줌마한테 비행기 관리비며 연료비가 만만치 않게 들 텐데 그런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시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어요.

“28년 동안 일해서 받는 퇴직연금과 지역사회의 후원금으로 충당한단다. 이런 일들이 남을 돕는 거로만 보이지만 우리 이웃들이 보내오는 사랑을 잔뜩 비행기에 싣고 아웃백을 찾아갈 때는 내가 더 큰 기쁨을 느끼지.”

사장님은 일레인 아줌마가 아홉수라 매사에 조심해야 하는데 저렇게 밤낮없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니고 있다며 흉을 보십니다. 과연 여기 호주서도 아홉수가 통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아줌마가 모든 것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드시고 계신 에스프레소 커피처럼 아줌마 인생에서 쉰아홉이라는 나이는 뜨거운 열정과 온갖 시련의 시간을 지나온 고농축 숫자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박일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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