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센터에 갔다가 벽에 붙여 있는 수수께끼 같은 문구에 눈이 끌렸다.

‘이때 과거 식량하거나 음료’ 
 
훤히 들여다 보이는 안쪽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고 놀이기구도 보인다. 어른들이 쇼핑할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인가 본데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이 문구는 영어, 중국어, 한국어 3개 국어로 되어 있다. 맨 윗줄의 영어를 보고 나서야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No food or drink past this point’(음식물이나 음료수 반입 금지)를 인터넷의 번역기능을 이용하여 그대로 베껴다 놓은 것이 분명한데 새겨서 읽고 이해할 정도도 되지 않는다.

인터넷 번역이 이 정도로 엉터리 수준일 줄이야. 아무리 세상이 기계화되어가고 있다 해도 이것만큼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 되나 보다. 기계로 해서 마치 로보트가 하는 말처럼 들리는 것보다 사람 냄새가 나는 편이 훨씬 좋다. 언어 때문에 겪는 사람들의 실수는 기계로 인한 잘못됨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우스운, 또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한다.

나이 20대 후반에 토쿄에서 직장을 갖게 되었을 때 나의 일어 수준은 바닥이었다.  영어를 웬만큼 하면 일하기엔 지장이 없었는데 주위에서 들려오는 일본인 동료들의 대화를 알아 들을 수 없어 날이 갈수록 군중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꼴이 되어갔다. 결국엔 저녁시간에 학원으로 달려 갔지만 학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말들은 TV를 보며 내 나름 입체적으로 일어공부에 몰입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남자들이 쉽게 쓰던 ‘치xx’ (젠-장!)이라는 좋지 않은 말을 제일 먼저 배우고도 가벼운 말 (‘이런!’)인줄 착각하고 회사에서 남발을 했으니 돌이키면 얼굴이 화끈 달아 오른다. 말을 배우는 중이니까 이말 저말 자주 사용해 볼 때 였는데… 아무리 그네들이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부끄럽게 하는 일은 미덕이 아니라고 어렸을 때부터 배운다지만 누구도 나를 정정해 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스스럼 없는 사이가 된 동료가 내 기분을 살피며 말해 주었다. 내 입에서 나온 ‘치xx’ 는 뉘앙스가 다르게 들려 귀여운 데가 있었다나. 그 때 나는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 가고 싶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나는 십 년 동안의 일본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가족과 함께 삶의 터전을 호주로 옮겼다. 시드니 공항에는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일년 간 와 있었던 호주 친구가 부모님과 함께 우리들을 마중 나와주었다. 무남독녀 외딸인 이 친구는 일본에서 지내는 동안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우리 내외를 찾곤 했었다. 다른 문화권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한 경험이 있는 남편과 나는 그녀의 고충을 이해하기에 늘 도움이 되어 주었다. 그런 친구가 부모님과 함께 시드니 공항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일어로 플래카드에 적힌 말이 ‘호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가 아닌 ‘호주로 돌아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로 되어 있지 않은가. 

나는 2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오직 그 친절과 배려에 감사할 뿐 그녀의 일어를 정정해서 무안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호주에 온지 며칠 후 이 친구의 어머니가 ‘Tea’를 하러 집으로 오라 했을 때 오후에 마시는 티로 생각하고 점심식사 시간을 피해서 갔다. 어머니가 말한 ‘Tea’가 가벼운 식사를 의미하는 줄 알았을 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그 때 우리 가족은 임시로 아파트를 빌려 있었는데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친구의 아버지를 전철역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는 촌극을 벌였다.  친구가 직장엘 가기 때문에 미리 그려준 약도를 보고 그 집을 찾아갈 참이었다. 우리들이 하도 나타나질 않아서 친구의 아버지는 걱정하며 전철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실수를 한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쇼핑센터에 붙여 놓을 문구라면 마땅히 올바르게 구사해야 되지 않겠는가. 이 세상에 수 없이 많은 언어가 존재하건만 근자엔 인터넷에 의하여 또 하나의 언어가 생성되는 듯하다. 이것이야 말로 ‘이 시대의 바벨탑’*이라는 생각이 든다.          

권영규 (수필가, 호주문협)

(주: *바벨탑: 온 세상이 같은 말을 썼던 때에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위하여 하늘에 닿게 탑을 쌓던 중에 하나님이 말을 뒤섞어 놓아 탑 쌓기를 그만 두고 흩어졌다고 기독교 성경에 기록됨. 히브리어로 바벨은 ‘혼란’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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