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나무가 늘어선 펜티코스트 에비뉴를 따라가다 꺾어지면 지대가 조금 높은 곳에 패랭이꽃이 잔뜩 피어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곳이 나타납니다. 거기에 저희 카페 단골이신 히긴스 씨가 사세요. 더위가 한풀 꺾인 저녁 무렵 그 앞을 지나다 보면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풀을 뽑고 있는 히긴스 씨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히긴스 씨는 쿠링가이 부시(bush)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계시다 얼마 전에 퇴직하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다방면으로 아시는 게 참 많은 분이세요. 

지난 일요일 저녁이었어요. 사장님이 빌린 책을 갖다드리라고 해서 히긴스 교장 댁을 찾아갔습니다. 감나무가 하늘을 가리다시피 한 뒷마당에서 히기슨 교장은 뒷집과의 사이에 놓인 나무 담장을 고치고 계셨어요. 제가 책과 사장님이 전해드리라고 한 이태리 롬바르디아 와인을 건네자 히긴스 교장은 켄터키 치킨의 샌더스 할아버지처럼 큰 미소를 지으시더니 오래 전 쿠링가이의 모습을 삽화처럼 차분하게 들려주시네요.

“옛날엔 이 근방에 집이 거의 없었단다. 저쪽 방목장 뒤로는 피칸나무 숲이 개울을 따라 우거져 있었지. 가을만 되면 피칸을 따러 첫 애를 임신해서 배가 불렀던 밸러리를 데리고 갔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구나. 밤이면 여우가 드나들어 토끼나 닭을 물어가고는 했었지. 그때부터 담장을 세 번이나 새로 만들었으니 세월이 대체 얼마나 지나간 거냐.”

도둑도 없고 설사 있다 해도 저 정도라면 얼마든지 넘나들 수 있는데 저런 허약한 담장이 왜 필요한가가 궁금했어요. 그래서 이젠 여우도 없고 닭도 더 이상 키우지 않으면서 뭣 하러 이런 나무담장을 세우냐고 물어봤더니 히긴스 교장은 ‘가지 않은 길’로 잘 알려진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담장을 고치며(Mending wall)’ 한 구절을 들려주시네요.

담장이 필요 없을 것 같은 그곳
그의 밭은 온통 소나무이고 내 쪽은 사과과수원이기에.
내 사과나무가 그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가
소나무 밑에 떨어진 솔방울을 주워 먹을 거 같으냐고, 그에게 말하자
그는 단지 말했지요, “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들지요.” 

 
“물론 내가 닭이나 염소 같은 가축을 키우지 않기에 이웃의 채소밭이나 꽃밭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지. 하지만 “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라는 프로스트의 표현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구나. 아무리 가까운 이웃 사이라도 서로 못 본 척 할 게 있는가 하면 때로는 사소한 변화에도 관심을 가져 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야. 한 번은 우리 옆집에 사는 부부가 파티에 간다며 요란하게 차리고 나가더라. 그래서 즐겁게 놀다 오라고 아는 척을 해줬지. 근데 돌아올 때 또 보게 됐어. 차문을 쿵쾅 거리며 닫으며 내리는 걸 봐서 싸운 게 분명했지. 청이 너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원래 부부동반으로 모임에 가면 돌아올 땐 자주 싸우고들 한단다. 그날 그 부부도 그랬던 거 같았어. 이 뒷집하고는 이런 나무담장이라도 서있지만 옆집하고 우리 집 사이엔 그냥 허리 정도 오는 치자나무만 주욱 심어져 있거든.“

그러니 분위기상 아는 척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옆으로 지나가는데 모르는 척 하기도 뭐하고 해서 참 난처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히긴스 교장은 어울려 살다보면 사람들 사이에서는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당한 높이의 담장이 필요하다고 하시네요. 지금은 저희 사장님이 정원사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며 마당일을 시키지만 예전에는 사람을 살 만큼의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뜰이 잡목으로 무성해서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나 봐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히긴스 교장이 지나시다 들렀다며 웃자란 나뭇가지를 잘라주셨다고 하네요. 아마도 전깃줄에 닿을 정도로 높이 자란 나뭇가지를 사장님이 휠체어에 앉아 장대 끝에 달린 낫으로 낑낑대며 쳐내는 걸 담장 너머로 보셨던 모양입니다. 신전의 기둥들도 적당한 간격을 두고 서 있다는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적당한 높이의 담장은 쿠링가이를 평화롭고 화목하게 해주나 봅니다.  

박일원(수필가)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