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선물로 받았던 기쁨을 간직하게 되었던 건 이곳 시드니에서 생활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려 현관문을 나설 때면 오늘도 어김없이 꽃 한 묶음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매번 꽃을 놓아두고 가는 것일까? 날마다 궁금증은 더해 갔지만 찾을 길 없는 마음은 미로를 헤매듯 했다. 오늘은 기어이 누군가 알아내고야 말리라. 벼르고 있었지만 결국 그 주인공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새벽 일찍 눈을 떠 현관문을 서성이며 인기척이 나기만을 기다렸다. 꽃을 가져다 놓는 주인공을 만나기를 고대 할 무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반듯한 아버지 연세로 보이는 노신사가 나타났다. 그는 우리 집 앞에 난을 한 송이 놓아두고 뚜벅뚜벅 걸어 다시 엘리베이터로 다가갔다. 이 때를 놓칠세라 헬로 하고 인사를 건넸다. 웃음 띤 그는 나에게 다가오며 악수를 청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나는 이 아파트에 사는 딕 팬트로우입니다. 혹시 생활하면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며 전화번호까지 남겨두고 총총히 사라졌다. 순간 무엇에 홀린듯한 묘한 마음을 다스릴 길이 없었고 내 마음은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이곳에서의 첫발을 내딛는 나는 기쁨으로 충만해져 왔다.

모든 것이 낯설고 심지어는 전기 스위치조차 한국과는 정 반대인 이곳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친정 부모님께서 우리 집을 방문하시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 날을 기다리며 마냥 들떠 있었다. 공교롭게도 남편은 출장 날짜가 잡혀져 있어서 부모님 오실 그 날 어떻게 공항에 가야하나 걱정이 앞섰다. 이곳에서 운전면허를 딴 지가 얼마 되지 않았고 길 이름조차도 생소한 거리를 간다는게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용기를 내어 딕에게 부탁을 하니 흔쾌히 같이 가겠다고 말하는 그가 믿음직스럽기까지 하였다. 남편이 부재 중이다 보니 부모님을 구경 시켜 드리는 일이 또 하나의 과제로 주어졌을 때 출입문 앞에서 딕을 우연히 만나니 구세주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도와 줄까? 하고 물어온 그의 진심 어린 관심이 사뭇 고마웠다. 혹시 내일 시간이 되면 어디든 같이 갔으면 한다는 내 의견을 더듬거리며 말을 했는데도 그는 용케 잘 알아 듣고는 가까운 보빈헤드(Bobbin Head)에 가자고 하였다. 얼마나 기다리던 대답이었는지 부랴부랴 내일을 위해 시장으로 내달렸다. 쉽게 손으로 집어 먹을 수 있는 김밥을 준비하면 될 거야. 혼자서 중얼대는 내 입술에는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보빈헤드로 출발하는 아침은 날씨가 청명하여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딕의 차를 타기 위해 지하로 내려온 우리는 그와 동시에 만났다. 모두가 들뜬 모습으로 그의 차 앞으로 다가갔다. 차 문을 열고 아버지가 먼저 오르고 어머니가 그 뒤에 오르니 놀랍게도 어머니에게 안전벨트를 매어 주는 게 아닌가. 어머니는 귀 볼이 빨개지기까지 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내 평생에 이렇게 친절한 사람은 처음이라며 감격해 하는 어머니를 보며 한국과 호주사회의 풍습이 다름을 실감하고 있었다. 보빈헤드는 주중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았다. 준비해간 김밥이며 과일 음료수 등을 탁자 위에 꺼내 놓으니 한 상 차린 듯 풍성하였다. 딕은 벤치에 앉자마자 냅킨을 가져와 어머니 상의에 고정시켜 놓으니 어머니는 또 다시 귀 볼이 빨개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흐뭇해지고 말이 통하지 않는 딕이었지만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오월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빛나고 있었고 점심 후의 여유있는 표정은 이국의 하늘 아래 넉넉한 마음으로 가득하였다. 딕의 제안으로 산보를 하자고 하니 말도 통하지 않는 어머니는 선뜻 따라 나섰다. 이곳 저곳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내던 나는 어머니가 신발을 벗고 개울물을 건너기 시작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어머니가 중심을 잡지 못해 미끄러져 넘어지려는 찰나 딕의 손이 어머니 손을 얼른 붙잡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주 찰나적인 순간 이었다.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하며 딕의 손을 꼭 잡고 물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 역시 먼 발치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괜스레 내 마음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아버지는 내심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불편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 그 호주 영감한테 가 살지 왜 나에게 왔나? 편편한 길 놔두고 개울에는 왜 들어가 손을 잡고 그러느냐고 나무라기도 하였다. 부모님의 말다툼은 그때부터 시작 되었다. 나이가 들었지만 어찌 그리 유치할까 싶을 정도로 두 분은 티격태격 하였다. 그런 과정을 지켜본 나로서는 어찌해야 좋을지 사진을 현상하고도 한국으로 보낼 수가 없었다. 동서양의 문화차이에서 오는 오해와 갈등을 적나라하게 경험한 나는 중립을 지키기로 하고 끝내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딕의 이웃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아버지는 지금도 지나친 친절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단순한 시새움일지도..

김인호(호주문협 수필분과)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