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4.13총선에서 가장 주목받은 사람은 새누리당의 유승민 의원일 것이다. 새누리당은 유승민 의원과 유승민계 의원들을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보복 공천’을 시도하면서 민심 이반을 자초했다.

새누리당은 결국 총 300개 국회의석 가운데 122석만 얻으며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또한 2000년 16대 총선 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여소야대 국회가 됐다. 새누리당의 자업자득이다.

19대 총선의 결과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밉보여 괘씸죄에 걸린 유승민 의원을 ‘왕따’시키려던 새누리당이 유권자들로부터 ‘집단 왕따’당한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권력에 도취한 새누리당의 친박계는 박 대통령에게 몇번의 ‘올바른 말대꾸’를 한 유 의원을 내쫓기 위해 공천 막장극을 연출하며 한국 정계와 사회에 내재된 적폐를 드러냈다.

먼저 대통령과 그 주변 ‘십상시’들의 무소불위 권력 남용과 전횡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26일 청와대에서 가진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 간담회에서 유 의원의 ‘배신의 정치’에 거듭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공천에 관여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결국 유 의원 공천 파동의 불씨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됐음이 확인됐다. 그렇다면 그 최종 책임도 박 대통령의 몫이다. 박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유 의원 탓으로 돌리며 분노의 감정을 보인 것은 이번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강조해줬다.

권력만 믿고 덕치를 팽개친 협량의 리더들이 성공하지 못했음은 역사가 말해준다. 바른말 하길 좋아하는 유능한 인재의 마음을 사로잡을 능력과 인품은 성공적인 리더가 갖춰야 할 중요한 조건 중 하나다. 아니면 최소한 그런 인재를 적으로 만들지 않는 전략적 용병술이라도 보여줘야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온 국민이 주시하고 있는데도 유 의원에 대한 보복 공천을 집요하고 야비한 방법으로 공공연하게 자행했다는 것이다. 친박계는 한사람의 군주를 위해 공천을 사천으로, 공당을 사당으로 추락시키는 전횡을 일삼는 십상시로 비쳐졌다. 이들에게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 없는 듯 했다. 박 대통령은 이런 십상시들의 전횡을 묵인하며 사실상 인정해준 꼴이 됐다.

대통령을 신성시하는 패거리 정치, 조폭 정치가 아직도 통하는 정치권의 이런 모습은 한국의 폐쇄성과 낙후성을 드러냈다. 대통령에게 입바른 소리한다고 국회의원을 토사구팽 하는 모습은 권력과 재력을 가진 사람들의 ‘갑질’ 횡포가 국회에서도 발생하는 한국의 비뚤어진 실상을 폭로했다.

이는 한국에 뿌리깊은 수직형 권력구조의 문제점과 일맥상통 한다. 정치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가정은 물론 기업, 대학, 단체, 정부 등 사회 전반이 불투명하고 경직된 상하 지배구조다. 상사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군대식의 상명하복 문화, 능력이나 인품보다 나이나 서열이 중시되는 연공서열 문화, 혈연 지연 학연 위주의 연고주의나 지역주의 문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윗사람의 비위에 맞춰 눈치껏 낮추고 숨기는 언행을 해야 하고, 조직의 부정부패도 적당히 눈감고 지나가야 하는 폐쇄적이고 비합리적인, 불투명한 사회는 불법과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어둡고 침묵하는 사회에서 미래 첨단 산업을 주도할 창조성과 다양성은 폄하되고 무시되기 일쑤다. 대화와 타협에 어색하고 반목과 대립에 익숙한 것도 이런 문화에 연유한다.

하지만 한국 국민은 이런 정권과 사회에 대해 확실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독선과 오만에 가득한 권력자와 집권당을 표로 심판했다. 이는 단순히 유 의원 개인의 승리라기 보다는 수평적, 합리적이며 공정하고 투명한 정치와 사회를 갈구하는 민심의 발로다. 이제 박 대통령과 새로 출범한 국회가 모범적인 민주정치로 국민에게 화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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