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랜 된 것을 고쳐 쓰기를 좋아하는 셰프는 몇 년 전에 다 허물어져 가는 단층짜리 집을 사서 틈나는 대로 혼자서 고쳐오고 있어요. 마룻바닥에 구멍이 휑하게 뚫리고 문짝과 계단은 삐걱거리지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몸소 증명이라도 하려는지 살아가면서 천천히 손볼 거라고 하네요. 

“카타리나는 불만이 아주 많아. 수도꼭지에서 녹물이 나오지 않나 비만 오면 지붕이 새고 화장실 타일도 여기저기 깨져있으니 여자로서 무척 난감할 거야. 카페가 쉬는 날이면 건재상에 가서 재료 사다 이것저것 고치다보니 귀찮고 짜증도 나겠지.” 

집뿐만 아니라 셰프와 카타리나는 아이들 교육이나 돈 문제를 놓고도 티격태격 말다툼을 자주하세요. 그래서 이 때다 싶어 제가 이제 나이도 드셨으니 두 분이 사이좋게 지내시라고 말씀드렸더니 셰프는 “청이야, 그게 바로 <이태리 사람들의 숨쉬기>란다. 말다툼이 날숨이라면 화해가 들숨이어서 사소한 말다툼은 우리 이태리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거지. 그게 없으면 우리는 답답해서 죽어요. 죽어.”라며 크게 웃으시네요. 

정원 일을 하시던 토니 할아버지가 셰프의 이런 얘기를 담장 너머에서 들으셨는지 고개를 불쑥 내미시더니 또 말참견하시기 시작하네요.

“그럼, 그럼. 그래야지. 요즘 애들은 걸핏하면 참지 못하고 별거다 이혼이다 하며 헤어지기 일쑤야. 그래봤자 뭐 별거 있나. 사람의 삶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지.”

그러면서 토니 할아버지는 당신의 조카 딸 이야기를 해주시네요. 조카딸이 10 년 전에 이혼한 후 다른 남자와 재혼해 아들딸 낳고 한동안 잘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달에 현재 살고 있는 남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해요. 조카딸은 첫 남편과의 이혼의 상처와 두 번째 남편의 사별로 무척 상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토니 할아버지가 병원에 가보니 오래전에 이혼한 남편이 문상하러 와 있더래요. 전 남편은 이제는 옛 부인이 되어버린 미망인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 주면서, “살아보니 그리 길지도 않은 인생인데 당신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오.”라는 말을 했다고 하네요.

토니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보니 참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혼하자면 엄청 싸웠을 거고 그래서 커다란 상처의 딱지와 씻어내기 어려운 앙금의 퇴적을 지니고 있었을 텐데 제일 먼저 병원으로 달려와 포옹하며 위로해준 사람이 이혼한 전 남편이었다니 말이에요. 

60년 전에 손수 지어 그동안 수없이 발생했던 산불의 위험 속에서도 건재했던, 하지만 이제는 구닥다리가 되어 여기저기 손볼 곳이 많아진 집에서 지금의 부인과 60년을 살아오신 토니 할아버지. 뺨과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골을 이루고 백발이 성성한, 담장너머에 사시는 토니 할아버지는 지금쯤 세탁기가 다 돌아갔을 시간이라면서 해가 나왔을 때 옷을 널어야 한다고 세탁장으로 달려가시며 한 마디 툭 던지십니다. 

“그러니 바꿔봐야 다들 소용없는 게야. 그저 양보와 희생이 삶의 일부다 생각하며 살아가는 게 최고지.” 

저 청이, 아침부터 배운게 많네요. 이러다간 수첩이 금방 차버릴 것만 같아요. 오늘 하루만 해도 서두르거나 욕심내지 말고 징검다리 건너듯 하나하나 짚어가며 세상을 살아가가라는 셰프 님의 말씀과 양보와 희생을 삶의 일부로 생각하라는 토니 할아버지의 가르침이 있었거든요.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히말라야 삼나무도 이분들 말씀에 동의하는지 끄덕이며 잔디밭 위로 솔방울을 후드득 쏟아놓습니다. 

박일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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