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마담과 치폴로니 셰프는 하루 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피곤하신지 주방 쪽 소파에 몸을 푹 담고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네요. 사장님은 많이 피곤해서 일찍 집에 들어가 쉬고 싶다며 뒷정리를 부탁하고 나가십니다. 사장님을 배웅하고 들어온 저 청이, 데이빗과 샤론에게 다시 다가가 처음 어떻게 만났는지가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샤론은 홍콩에서 17살 때 부모와 함께 호주로 이민 왔어요. 내가 샤론을 만난 것은 6년 전 그녀가 물리치료사로 일하던 세인트 빈센트 재활병원에서 였지요.” 데이빗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기가 사고 당하던 순간을 차분하게 들려줍니다. “시드니 북쪽에 있는 콥스하버에 놀러갔다가 차가 굴렀어요. 깨어나 보니 만신창이가 되어 있더군요. 그때부터 내 정신도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고요. 그렇게 계속 될 것만 같았던 터널의 끝에서 샤론을 만난 거지요. 인생이란 비교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불행해지죠. 사고 전과 사고 후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일이예요. 단지 달라진 게 뭔가 생각해보는 게 중요해요. 비록 불편한 몸이 되었지만 이제 제 옆에는 전에는 없던 샤론이 있어요. 샤론은 재즈를 좋아해요. 레드와인과 스시를 즐겨 먹으며 낯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술 한잔 들어가면 분위기에 젖어 색소폰을 불기도 하고요.”

데이빗은 마시던 뮬드 와인 잔을 내려놓고 샤론의 어깨에 손을 얹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플로어에 내려앉고 싶다고 샤론에게 말하네요. 샤론과 저는 데이빗의 양 어깨를 잡아 그가 휠체어에서 내려오는 걸 도와주었습니다. 데이빗은 바닥에 앉아 다리를 주물러가며 온종일 휠체어에 앉아 있는 생활은 참 피곤하다고 말합니다. 데이빗과 샤론에게 소유란 귀찮은 개념입니다. 특히 여행 중에는 옷가지와 텐트 침낭 식기 등으로 꽉 찬 바퀴 달린 가방을 질질 끌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입니다. “유럽을 돌아보기 위해 샀던 중고 스바루 웨곤을 3개월 동안 2만 킬로를 끌고 다니다 파리 샤를 드 골 공항 주차장에 버리고 떠나왔어요. 대시보드 위에 키까지 남겨 놓은 채로.” 그러면서 이처럼 ‘버리고 떠나기’란 자신의 여행철학이며 인생철학이라고 말합니다. 

데이빗은 안락하고 편안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행지에서 차를 렌트해 직접 운전하고 휠체어를 타고 자갈밭을 가다 산이나 계단이 나오면 악착같이 기어서 오른다고 샤론이 옆에서 말해주네요. 터키의 언더그라운드시티를 갔을 때도 그랬대요. 이슬람교도의 탄압을 피해 도망 온 기독교 신자들이 살던 곳으로 수백 개의 계단으로 된 지하도시인데 거기를 휠체어를 타고 내려갈 수는 없으니까 엉덩이를 질질 끌며 몇 층을 내려갔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벼랑 끝으로 오너라, 그가 말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두려워요.
벼랑 끝으로 오너라, 그가 다시 말했다.
사람들이 그리로 갔을 때
그가 등을 밀자
그들은 날았다.

파리 에펠타워 근처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본 아폴리네에르의 시라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날기 위해서는 벼랑 끝으로 가야되나 봐요. 데이빗은 만약 불편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여행에서 겪게 되는 난관은 하나하나 헤쳐나감으로써 오히려 세상에는 불가능한 것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손님이었던 샤론과 데이빗이 떠난 후 셰프와 양 마담도 퇴근 준비를 하시네요. 저 청이, 밖으로 나와 가스등을 끄면서 샤론이 준 크리스탈 유니콘을 만져보았습니다. 저 청이도 스무 살 생일이 되기 전에 남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박일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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