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쿠링가이가 쉬는 날을 맞아 저 청이는 새미르(Samir)하고 지그재그 기관차를 타러 블루마운틴에 있는 클레어렌스에 와 있어요. 블루마운틴은 시드니에서 서쪽으로 100킬로미터쯤 떨어져 남북으로 길게 뻗어나간 산으로 오랜 침식작용을 거쳐 형성되었습니다. 지금은 관광용으로 운행되고 있지만 블루마운틴에 지그재그 기차가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대요. 시드니에서 블루마운틴 너머로 인부와 석탄, 농산물 같은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가파른 산을 넘자니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지그재그로 오를 필요가 있었던 거지요. 

네팔어로 ‘해뜨기 직전의 상쾌한 공기’라는 뜻을 지닌 새미르는 카트만두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러 호주에 온 청년이에요. 셰프 소개로 저희 카페에서 주로 저녁 시간에 일한답니다. 양 마담은 저보고 “왜 청이는 한 남자에게 충실하지 못하고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옮겨 다니느냐”고 자주 말하세요. 하지만 이제 열아홉인 저 청이 벌써부터 한 남자에게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바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카페에 커피와 설탕을 대주는 허승원 씨와 새미르 각자에게 라이벌의 존재를 은연중에 알려줬답니다. 그래야 이상적인 이성교제로 고양시킬 수 있거든요. 남자는요, 솔직히 말해서 손 안에 들어있는 여치 같은 존재래요. 꼭 쥐면 기를 못 펴 만날 주눅 들어 있지만 너무 느슨하게 풀어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영원히 다른 꽃으로 날아가는 수가 있기 때문이에요. 때문에 늘 긴장과 견제가 필요하지요.

청이가 두 남자 사이를 지그재그로 옮겨 다님으로써 서로는 경쟁하게 되고 그래야 타성에서 벗어난 멋진 연애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이치는 남녀 간의 사랑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 삶도 이 지그재그 기차와 비슷한 거 같아요. 언젠가 셰프는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거대한 수수께끼란다. 그걸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무작정 앞만 보고 간다거나 무턱대고 올라가기 보다는 쉬어 가거나 에둘러 나가는 방법도 택해볼 필요가 있지.”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지금 저는 비가 오락가락하는 클레어렌스 역 9와 3/4 플랫폼에서 지그재그 기차를 기다리고 있어요. 9와 3/4 플랫폼은 소설과 영화로 널리 알려진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학교로 출발하는 열차의 플랫폼입니다. 해리는 킹스크로스 역 장거리 플랫폼과 시티레일 플랫폼 사이에 있는 9와 3/4 플랫폼으로 가서 마침내 호그와트 행 기차에 오릅니다. 하지만 실제로 9와 3/4이란  플랫폼은 킹스크로스 역에는 존재하지 않아요. 마법과 상상의 세계로 달려가는 기차를 타기 위한 가상의 플랫폼일 뿐입니다. 그런데 블루마운틴 계곡의 클레어렌스 역에는 9와 3/4이라는 플랫폼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어요. 바로 석탄을 때며 칙칙폭폭 달려가는 지그재그 증기기관차의 출발지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기차의 운행이 대부분 자원봉사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기차역에서 일을 했거나 직접 기차를 몰았던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고 그때를 회상하며 참여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들은 삽으로 석탄을 퍼붓고 시커먼 얼굴로 기적을 울리며 과거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사슴 눈을 한 새미르도 하늘로 쭉쭉 뻗은 전나무 숲을 바라보며 카트만두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클레어렌스 역에 있는 이 플랫폼은 마법의 학교가 아닌 추억의 세계로 떠나가는 출발지이군요. 

비가 뿌리며 해가 나옵니다. 새미르가 이런 날을 두고 네팔에서는 자칼이 시집가는 날이라 고 한대요. 저 청이, 빨간색 벤치에 앉아 머리를 새미르 어깨에 기댄 채 지그재그 기차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승원 씨는 오늘 같은 휴일에는 무얼 하고 있을까도 궁금해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오늘 날씨 같네요. 플랫폼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몸을 일으킵니다. 허연 연기를 내 뿜으며 모퉁이를 돌아온 증기기관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섭니다. 

박일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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