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죽음과의 약속을 미루어 놓고도
그걸 잊고 웃는다는 거지
빛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고
땅이 발을 받쳐주면서
사탕의 달콤함도 알고
또 다른 나인 친구가 생겼어
사랑에 눈도 멀면서
땀방울 흘린 후 밥을 먹다가
그 약속을 잊고 말았지
 
죽는다는 것은
삶과의 약속을 더 지키기 어려운데도
그걸 자꾸 야속해 하는 거지
깊은 흑암(黑暗)이 문뜩문뜩 눈에 띌 때
땅이 세 발을 견뎌주지만
움켜쥔 손에 힘이 빠지고
어디다 무엇을 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잊어가는 거지
  
가까이서 멀리서 
자꾸 떠나가는 소식에
그 약속을 야속해 하고 있지

장형철(호주한국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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