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하와

꽃미남, 아담
역사가들은 ‘최초’라는 말이 붙는 사람이나 사건이나 발명품에 굉장한 비중을 둔다. 왜냐하면 대부분 이 ‘최초’라는 말 다음에 붙는 사람이나 사건, 발명품을 통하여 역사에는 큰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최초로 글자와 종이가 발견된 이후 인류의 역사는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구분을 이루며, 기록문화로 바뀌었다. 에디슨의 전기와 전화를 발명 이후,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문명의 진보가 일어났다. 이런 발명품은 대부분 한 사람 혹은 몇몇 사람의 아이디어로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한 사람의 생각이나, 사상, 태도, 업적이 굉장히 중요한다. 

성경에 나온 지상 최초의 사람 ‘아담’이 창조됨으로써 지구상엔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아담의 생각과 사소한(그렇지만 결코 사소할 수 없는) 행동 하나를 통해 인류의 역사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곤두박질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지상 최초의 사람으로서 아담은 여러 가지 희귀한 경험을 하고, 특권을 누렸다. 뭐니뭐니 해도 그는 신이 직접 손으로 흙으로 빚어 만드신 ‘수공예품’이다. 최고의 예술가이신 신의 작품인 만큼 얼마나 미남이었겠는가? 요즘말로 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꽃미남’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아담은 인류 최초의 사람이었기에, 그가 경험한 모든 것은 ‘인류 최초의 기록’이었다. 그는 어머니 없이 태어났다. 나중에 그의 아내가 된 하와는 신께서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셨는데, 어머니 없이 태어난 사람, 즉 신이 직접 만드신 사람은 아담과 하와 부부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아담은 태어날 때부터 가족은 자기 혼자뿐이었기에 가족 사랑을 맛보지도 못했고, 어린 시절도 없었던 사람이다. 처음 아담이 거주했던 곳은 육신의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함께 살지 않았으니 영락없이 고아원인데, 고아원이라고 하기엔 기막히게 시설이 좋았고,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모든 경치는 그가 독점하는 정원이고, 지저귀는 새와 뛰노는 짐승은 그의 애완용이었다. 먹을 것은 항상 넘쳤고, 무엇을 준비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전혀 없었다. 그에게는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어린 시절 아름다운 추억도 없었지만, 사춘기의 방황같은 것도 없었다. 이런 독특한 경험, 특권이 넘치는 삶을 부여받은 사람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그는 짐승들을 한번 쓱 훑어보고는 그 짐승의 모든 특징을 함축한 이름을 전혀 망설임 없이 지어낼 정도였다. 그러니 그의 지성은 생물학사전을 단숨에 편차날 정도이고, 언어 능력은  셰익스피어보다 탁월했다.    

신께서는 그의 앞에 짐승들이 암수 한 쌍씩 지나가게 하면서 그로 하여금 짐승들의 이름을 짓도록  하면서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각하게 하셨다. 탁월한 지성을 가진 아담도 그 정도는 당장 알아차렸다. 짐승이나 새나 물고기를 비롯한 대자연과는 친밀하게 지낼 수는 있었지만, 마음과 삶을 나눌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당연히 아담과 이들은 수준이 안 맞고, 함께 살기엔 격이 안맞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신과 아담은 얼마나 장단이 척척 잘 맞는가? 신은 아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고는 평생 아담을 도울 배필을 그의 갈빗대를 뽑아서 창조해 주셨다. 어느 날 깊이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갑자기 기막힌 미모의 여성이 나타났다. 

첫 혼인예식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결혼식한 전무후무한 신부가 되었다. 그 날 그 혼인예식에 누가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가? 꽃미남, 그 남자였다. 

주례 누구인가? 신께서 직접 창조하신 두 청춘 남녀의 결혼식을 주례하고 계신다. 결혼 예식장은 어디인가? 가장 멋진 낙원의 야외예식장, 에덴동산이다. 축가는 누가 불렀는가? 천사들과 새들이다. 바람도 아름답게 베이스를 갈았다. 이 얼마나 자연의 아름다운 하모니인가? 이들의 혼례엔 삼라만상이 목을 쭉 뻗고 축복했다. 

얼마나 눈부시고, 아름다운 황홀한 혼인예식이었을까? 이렇게 인류의 첫 부부, 최초의 가정, 최초의 공동체, 최초의 사회가 탄생했다. 이 결혼은 신이 직접 집례하신 주신 최고의 선물, 최고의 축복이었다. 

결혼식장에서 신랑은 순결한 사랑을 시적으로 고백한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로구나. 지아비에게서 나왔으니 지어미라고 부르리라!"

그가 죽음에 가까운 잠을 잤을 때에 일어난, 여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전혀 구경하지 않고도, 그 여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근원까지 파헤치며, 최고의 사랑을 노래했다. 그는 지성을 겸비한 ‘언어의 마술사’였다. 

이 고백은 ‘야, 너는 내 뼈로 만들어졌으니 내 부속품이야. 내 것이야, 내 마음대로 해도 돼’ 하는 위압적, 이기적, 지배적, 소유욕을 담은 말이 아니다. 이 고백은 ‘여보, 당신은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요. 이제부터 내가 당신을 지켜주겠소’하는 깊은 책임의식을 담은 고백이다. 아담이 ‘내 사랑 하와’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 심정으로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천상의 낙원과 같았던 에덴동산에서 어떻게 살았을 것 같은가? 그는 하와를 데리고 다니면서 자기가 먼저 발견하고, 체험하고, 이름붙인 아름다운 자연과 동물들을 다 보여주며 설명을 한다. 그러면서 아담은 비로소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았다. 약간 으쓱거리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이제까지 혼자 발견하고,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다 알려주고 싶었고, 함께 나누고 싶었다. 하와가 행복한 것만 보아도 아담은 저절로 행복했다. 이처럼 인류는 태초에 너무나 아름다움 가정을 꾸몄다. 

아마 동화책 같으면 “그 이후로 두 사람은 아들 딸 낳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다”라고 하며 이른바 해피엔드로 끝났을 것이다

죄, 그 이후
그러나 삶은 해피엔드의 동화가 아니다. 이렇게 놀랍게 사랑과 행복이 가득 찼어야만 했을 가정, 그리고 무한한 사랑을 누릴 수 있는 놀라운 가정이, 죄로 말미암아 이 가정의 운명은 물론, 지구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그 죄의 결과로 이들은 천국같은 낙원에서 ‘강제추방 이민’을 떠나야 했다. 비행기도, 자동차도, 신발도 없던 시절, 맨발로 걸어서 전혀 생소한 황폐하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많은 땅을 걸어야 했다. 님을 버리고 떠난 길도 아닌, 님과 함께 떠난 길이지만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났다. 이전에 낙원에서는 수십 리를 뛰어다녀도 아무렇지도 않던 발이 가시에 찔리고, 물집이 생겼다. 관절관절마다 욱신욱신 쑤시고, 도무지 더 이상 못걸을 것같았다. 그래도 신께서 이민 떠날 때 가죽옷을 입혀주셔서 추위는 어느 정도 견딜만했다.   

피곤하고 지친 이 불쌍한 부부는 생면부지의 땅에 정착하여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낙원에서는 모든 것이 생각하는 대로 손에 잡히고,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민생활에서는 지역 정보, 생활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모든 것은 직접 밭 갈고, 씨 뿌려 수확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아담은 생전에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야 했다. 날마다 이마에 땀을 팥죽처럼  흘리며 흙투성이가 되어서 집으로 들어왔다. 섬섬옥수. 여성의 손 못지않게 부드러웠던 그의 손엔 굵은 못이 박혔고, 가시도 박혔다. 상처도 아물 날이 없었다. 

신께서 만들어주신 가죽옷도 땀 냄새에 절여있다. 입에는 단내가 배어있고, 발 고린내도 흉악하게 났다. 집에 오니 임신 9개월이 되어 배가 산만큼 부른 하와는 피곤하다며 잠만 자고 있다. 화가 난 그는 버럭 소리쳤다.  

“여자가 잘난 척하고 나서서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지 않았어! 왜 그때 그걸 따먹고 나한데 가져왔어? 뭐가 잘났다고 잠만 자고 있어! 난 힘들어 죽겠는데!”

남편의 소리에 번쩍 귀가 열려 자다 깬 하와가 이래저래 미안해서 변명한다. 

“미안해요. 내가 안 그랬어야 했는데. 나 때문에 당신 고생이 말이 아니네요!”

이쯤 되면 남자가 참아야 하는데, 영 남자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전에 소유한 지성과 향기로운 언어는 어디로 증발했는지, 이제는 아내의 고통도 헤아리지 못하는 졸장부로 변해 있다. 
“미안하다고 하면 다야? 이제 앞으로 우리 어떻게 살 거야? 난 도저히 이대로는 못살겠어!”
항상 죄책감에 빠져 사과만 하던 부인은 계속 긁어대는 ‘남자의 바가지’에 그만 ‘뚜껑’이 열렸다. 

“아니, 벌써 몇 번째에요? 남자가 치사하게 툭하면 그때 일을 들먹이고……. 당신도 그때 잘 먹었잖아요?”

부부싸움, 그 이후
이제 본격적으로 부부싸움이 시작되었다. 원래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했는데, 이 부부의 싸움은 칼로 물 베기가 아니라, 칼로 살 베기가 되든지 목 베기가 될 판이다. 아담이야 이미 농사일로 팔 힘도 만만찮았지만, 하와도 죽기 살기로 덤비니 강적이었다. 돌멩이를 집어다 아담을 향해 던졌다. 아담이 피했는가 했더니, 그만 벽에 부딪힌 돌멩이가 튀어서 아담의 심장을 맞혔다. 가인을 밴 이후로 태교한다면서 천사같이 참으며 신만 묵상하던 하와가 늑대처럼 돌변한 것이다. 아, 이때 신의 음성이 또 들렸다. “아담아, 아담아!”     
       
돌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던 아담은 미칠 것같다. 참으로 오랜만에 자기 이름을 부르시는 소리가 들렸다.     

(고통스럽게)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너희가 지금 뭘 했느냐?” “뭐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와장창 와장창 가구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쨍그랑 쨍그랑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창밖으로 저렇게 많은 걸 던져버렸느냐?”

“아, 그건 우리가 가정 예배드릴 때 어떤 악기에서 가장 좋은 소리가 날지 테스트 하는 소리였고, 마음에 안드는 것은 바깥으로 던져버린 것입니다.”  

이전에 한번 신을 기만하고 나니 두 번째는 상당히 대담해졌다. 부부싸움을 가정예배 준비라고 변명하면서도 얼굴색 하나 바뀌기는커녕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을 정도이다. 거짓말에 상당히 익숙해졌다. 놀랍게도 신은 모르는 척 해주셨다. 그 대신 신이 한마디 하셨다.

“아담아, 아담아, 이제부터 네 이름을 새롭게 정의해 주겠다.” “예, 신이시여! 말씀해 주옵소서.” 
“아담의 이름은 앞으로 아름다운 여자를 보아도 담담한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신이 자기편을 들어주는 것같아 기분이 좋아진 하와가 신께 여쭈었다. “제 이름은요?”
“그래, 하와는 하늘같이 남편을 받드는 와이프란 뜻이다.”    
신의 음성이 사라진 후 하와가 아담을 보았다. 자기가 던진 돌에 맞아 심장을 붙들고 있는 남편을 보니 마음이 아프고 쓰려왔다. 아무리 부인해도, 순전히 자기 탓으로 낙원에서 쫓겨난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여보, 이제부터 당신을 하늘같이 받드는 와이프가 될게요.” 
“그래, 나도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그냥 담담해질게.”
“정말이에요? 이제부터 당신이 잠들었을 때 당신의 갈빗대를 세지 않아도 되겠네요.”
“내 갈빗대는 왜 세었어?” 
“내 못된 성격에 당신이 너무 실망해서 나대신 또 다른 여자를 와이프로 창조해달라고 신께 부탁드리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서 매일 세었어요.” 
그날 솔직한 대화를 나누면서 부부는 껴안고 울었다. 서로에게 맺혔던 감정이 봄눈 녹듯 녹았다. 아담의 못박히고 상처난 손을 붙잡고 하와가 말한다.  
“죄송해요, 나 때문에 당신까지 이 고생을 하게 되었군요’”
“아니야, 그때 내가 끝까지 당신을 지켜주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야. 오늘 내가 너무 힘들어 당신에게 화낸 것 미안해, 그나저나 우리 아이도 뱃속에서 우리가 부부 싸움하는 것 다 들었을 테인데 괜찮을까?”
아담은 만삭된 하와의 배를 쓰다듬으며 의미 깊은 웃음을 지었다. 
“글쎄, 나도 걱정되네요. 내가 당신한데 돌멩이질 한 것 우리 아기가 배웠을까 걱정되네요.”(계속)

송기태 (상담학박사, 채스우드 두란노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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