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가게 옆에 바짝 붙어 있는 꽃집과 캔디가게는 이맘때면 하루 장사를 끝내고 슬슬 문을 닫기 시작하지만 카페, 쿠링가이는 이제부터 저녁장사를 한바탕 치러내야 하기 때문에 모두들 마음을 다잡는 시간입니다. 저 청이, 에이프런을 고쳐 매며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가로등이 켜진 사탕단풍나뭇길로 토마스 목사가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시네요. 카페 앞마당 너도밤나무에 자전거를 기대 세운 후 안으로 들어오신 토마스 목사는 셰프가 다니는 트리니티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세요. 트리니티 교회는 쿠링가이역 마을묘지 근처에 있는데 세워진 지는 100년도 넘었지만 신도 수는 목사님 가족을 포함해서 스무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교회입니다.

토마스 목사는 지난 크리스마스에 셰프와 함께 소망트리를 만들어놓고 카페를 찾아오는 손님들한테 선물을 기증받아 혼자 사시는 노인들한테 전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성당에 나가시는 워니 사장님과는 이따금 종교 논쟁을 하시기는 해도 두 분 사이는 아주 좋으세요. 토마스 목사는 어젯밤 시내에 있는 킹스크로스에 가서 홈리스들과 보냈더니 몹시 피곤하다며 홍차에 우유를 잔뜩 넣어 달라고 하시네요. 이 말에 사장님은 피로회복에는 뭐니뭐니해도 인삼차가 최고라고 드셔보기를 권했지만 인삼향이 자기한테 익숙하지 않아 거북하다며 그냥 홍차를 달라고 하십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카페, 쿠링가이에서 인삼차를 팔고는 있지만 서양 사람들 입맛에는 맞지 않는지 찾는 사람이 거의 없네요. 저 청이 홍차에 우유를 잔뜩 타서 들고 가자 토마스 목사는 노숙자들로부터 받은 거라며 마들렌 과자 한통을 테이블에 올려놓으시며 저보고도 먹어보라고 하시네요.  

“매일 밤마다 시드니 시내 한복판 킹스크로스에는 집 없는 사람들이 모여든단다. 그들 중에는 온몸에 문신을 한 채 불룩 나온 배를 퉁퉁 두들겨가며 드럼을 치는 원주민이 있는가 하면 임신한 장애인, 마약 중독자, 가출 청소년도 끼어 있지. 또 갈색 종이봉투에 와인병을 담아 연신 들이키는 주정뱅이와 틈만 나면 성경책을 들고 떠들어대는 종말론자, 허무를 노래하는 음유시인 등이 분수대 주위에 둘러앉아 쌀쌀한 밤을 보낸단다.” 토마스 목사는 도저히 그들을 못 말린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합니다. “경찰이 그들의 안전을 위해 구호센터나 근처 교회에서 운영하는 보호소로 보내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분수대로 다시 모여들어 밤을 지새우기 일쑤이지.”
   
이들은 때때로 이들의 표현을 빌려 그대로 말하자면 ‘시궁창 철학’이라고 하는 토론의 시간도 갖는데 지난주에는 비트켄슈타인 철학에 대해서 아주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들 중에는 전직 교수나 석사학위를 소유한 자도 있었고 가까운 친척이나 가족 중에 큰 부자인 사람도 있었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 밥 정도는 먹을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남루한 차림으로 술에 취해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때문에 그게 누구인지 골라내기는 참으로 어렵다고 하네요. 

신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토마스 목사님은 이 자리에서 설교나 믿음을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들의 처지를 위로하려고 들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단지 이들의 아픈 사연이나 주장을 조용히 들어주고 기회가 오면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고 합니다. 이따금 외투나 신발을 벗어놓고 맨발로 집에 오는 경우는 있지만 현금이나 구호품을 들고 가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토마스 목사님은 아웃백에도 찾아가 원주민을 대상으로 봉사활동도 펼치신답니다. 응급조치 자격증을 소지한 그는 한밤중에 문이 부서져라 두드리는 원주민의 구원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바로 조기 바오밥 나무 아래에 부인이 아파 누워있다”는 말만 믿고 길을 나서면 이튿날 정오께나 되어야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이미 상황은 끝이 나서 그로서는 전혀 손을 쓸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 부인 시신 앞에서 엉엉 울고 있는 원주민 친구의 시뻘건 눈망울을 바라보는 게 가장 힘들다고 하시네요. ‘회오리 벌판’에서 처음 만나 20여 년을 함께 살아온 부인이 늘 해오던 대로 야생꿀을 따기 위해 별로 높지도 않은 나무에서 떨어진 것뿐인데 그게 죽음에까지 이르렀으니 원주민 친구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하겠냐는 거예요. 아웃백에는 그런 슬픈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에요. 송신탑 꼭대기에 달아놓은 피뢰침을 떼내서 만든 작살로 거북이를 잡아 어깨에 둘러메고 숙소로 찾아와서 함께 구워 먹자고 깨울 때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고 하는군요. 

“청이야, 나는 어렸을 때 숨은그림찾기를 잘하지 못했단다. 늘 엉뚱한 곳만 뒤졌지. 찾아야 할 사발시계는 책상에 있지 않고 굴뚝에 얹혀 있었으며 전화기나 주전자는 사과나무 잎사귀 속에 숨겨져 있었고 연필이나 칼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에 놓여 찾을 수가 없었던 거야. 그런 경우 대개 거리를 두고 그림을 바라보면 그때야 사발시계나 전화기 등이 눈에 들어 왔지. 하나님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습관처럼 찾아가는 그곳, 다시 말해 당연히 계실 거라고 믿는 곳에 그분은 계시지 않는단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토마스 목사님은 교회보다는 시내 중심부에 있는 분수대 주위에서 혹은 저 멀리 떨어진 아웃백 황무지에서 하나님을 찾고 계신지도 모를 일이네요. 목사님이 차를 거의 다 마셔갈 즈음이었어요. 홀을 돌고 있던 양 마담이 자꾸 힐긋힐긋 쳐다보며 눈치를 주시네요. 얼른 가서 테이블 세팅하는 것을 도와드려야겠어요. 이제 카페, 쿠링가이가 본격적으로 바빠질 시간이거든요.

박일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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